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시급 인생 16화- 실수에 관하여

by 가람

나는 실수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고 발생 원인 중 80%는 Human Error (인간의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공항 트레이닝에서 배웠습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준사고(incident)가 모여 돌이킬 수 없는 재해(accident)를 불러온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12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커뮤니케이션 부족
2. 자기만족 (자신 과잉)
3. 지식 부족
4. 주의 산만
5. 팀워크 부족
6. 피로
7. 리소스 (기재) 부족
8. 프레셔
9. 자기주장 결여
10. 급성/만성 스트레스
11. 인식 부족
12. Norms (규범적 행동)


위 리스트를 마음에 새기고 반면 교사 삼아 일에 임한다면 실수 따위 저지를 터가 없겠죠. 하지만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제가 공항에서 근무하던 짧은 기간에도 수많은 사건사고를 목격했습니다. 신입은 질문하기 겁나서, 혹은 본인 상식 선에서 처리할 수 있겠다는 착각을 바탕으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사고를 냅니다. 경력직은 반복되는 작업에 타성에 빠져 응당 확인해야 할 것을 빠뜨리고 넘어가는 근자감이나 업무 압박에 시달려 순간 욱하는 마음에 실수를 저지르곤 하죠.


이는 비단 공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수가 무서워서, 권태가 와서, 절차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해서, 수면 부족 때문에…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 실수 때문에 우리네 직장은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목표는 Near Miss를 줄이는 것

near miss (아차사고);

(항공) 비행 중인 항공기가 다른 항공기에 접근하여 공중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 즉 '근접비행사고'를 말한다.

(산업) 항공 용어에서 파생되어 산업현장에 작업자의 부주의나 현장 설비 결함 등으로 사고가 일어날 뻔하였으나 직접적인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리킴. 대형 산업 재해의 전조 증상으로 인식된다.


일을 한다는 것이란 실수하지 않기 위한 일련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전 새로운 업계나 직장에 적응하는 동안에는 퇴근 후 몸이 필요 이상의 피로에 짓눌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골아떨어지곤 합니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한 제일의 방법은 규칙과 매뉴얼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신입 입장에서는 기존 매뉴얼이나 선배들이 하는 조언을 납득할 수 없어 모든 게 레드 테이프 (관청식의 번거로운 형식주의)나 꼰대짓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간혹 정말로 형식을 위한 절차도 있지만, 업계/기업 내에서 일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노하우를 납득가능하게 문서화한 것이 바로 ‘매뉴얼’입니다.


운항 관리 부서의 바이블, AHM


1~3년 차 주니어 입장에서 매뉴얼의 타당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옳은 매뉴얼과 그른 매뉴얼을 구분하는 것은 더더욱이고요. 그 정도 참눈을 지녔다면 트레이닝을 받는 게 아니라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지 않을까요. 모르겠을 때 매뉴얼을 찾아보는 건 일절 부끄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믿어서, 혹은 물어보기 귀찮아서 위에서 언급한 12가지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하며 이런저런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인간의 판단 미스로 '아차'할 사이 발생하는 아차사고는 공항이나 공사장 뿐만 아니라 사무실 내에서도 일어나 모이고 모여 대형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차 할 때가 가장 늦었다


운항 관리 부서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항공기 입항 및 출항관리입니다. 서류에 편명과 기본 정보를 미리 써 놓은 뒤, 항공기가 간사이 공항에 착륙하면 정확한 도착 시간을 적어 입항-출항신고서 순으로 세관에 제출합니다. 순서를 틀리면 안 되는 이유는 출항신고서를 먼저 보내면 공항에 들어오지도 않은 유령 항공기를 출항시키겠다는 말이 되므로 꼭 입항-출항 순서로 제출해야 한답니다. 수정하려면 직접 세관까지 찾아가 도장을 받아야 하고요. 몰래 넘길 수 없는 실수라 모든 요원들이 입출항 서류 제출 전엔 긴장하곤 했습니다.


출항 신고서를 먼저 제출하는 실수, 저는 해낸 적 있습니다. 당시 입사 6개월 차 햇병아리. 이제 공항 돌아가는 거 대충 알겠고 후배들도 들어와 어깨가 우쭐해있던 것도 있었지만 혼자서 항공기 6대 모니터를 하라고 방치한 선배들도 나빴습니다. 한쪽 귀는 항공 라디오, 다른 한쪽 귀는 무전기, 한쪽 눈은 항공 레이더, 다른 한쪽 눈은 제출 서류에 집중한 채 일하다가 급한 마음에 입항 버튼 대신 출항 버튼을 눌러버린 것입니다. ‘X 됐다’ 하고 세관에 전화를 거니 왜 너네 사무실은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냐며, 저에게 관리자를 데려와 사과를 하라고 하더군요. 정말 좆됐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출처는 앤디 위어의 장편 소설 <마션> 첫문장


다음 날 짤리는 거 아닌가 싶어 세관에 사과를 하고 돌아온 과장님과 슈퍼바이저에게 엉엉 울며 사과를 했지만 상냥한 코마츠 상과 니시무라 상은 본인들 잘못도 있다며 오히려 저를 다독여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요원들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슈퍼바이저는 아무런 경고 없이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제가 실수를 한 건 맞지만 그날 업무량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관리자가 이전 실수를 묵인하고 어물쩍 넘어간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업무 들어가기 전에 형식상 리포트만 하나 써서 제출하라는 말에 세상 쿨함을 느꼈습니다.






실수는 반성문에 새기세요

실수를 했으면 뒤처리를 해야겠죠? 여러분이 저지른 실수는 상사 입장에선 한숨 나오지만 귀여운 수준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보다 해결 능력이 뛰어난 상사에게 찾아가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솔직하게, 포장 없이 얘기합니다. 빠르게 보고 하는 것만으로도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답니다.


경위서를 쓰게 될 수도 있는데 ‘잘 못 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런 말은 초등학교 반성문에나 쓰는 말로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잘못은 했지만 100% 내 탓이 아니라는 미사여구도 필요 없습니다. 비록 사실일지언정, 경위서는 말 그대로 경위서는 일의 경위를 적는 문서이지 변명을 늘여 놓기 위한 문서는 아니니까요.


잘 쓴 사과문에는 다음 요소가 꼭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소연은 일 끝나고 술자리에서 하고, 경위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꼭 들어가야 할 내용만 씁니다.


1. 나는 누구인가
2. 언제 어디서 무슨 잘못을 어떻게 저질렀는가
3.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가
4. 실제 상황과 다르게 알려진 사실은 무엇인가
5. 얼마나 반성하는지
6.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수를 하고 혼나면 풀이 죽게 됩니다. 상사나 동료들에게 업무 능력을 의심받게 되어 그게 또 다른 실수를 유발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고요. 완벽주의자인 저는 실수를 하면 자책을 하게 되는 성향이 있어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을 하곤 합니다. 업무가 끝난 뒤에는 반성문을 적는데요, 거창하진 않지만 하루 끝, 업무 일지에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을 적어 놓는 것만으로도 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답니다. 차곡차곡 쌓인 반성문은 나의 평판을 다져주는 입지가 되어줄 것이고요.


과거 업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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