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인생 19화-동료에 관하여
애니메이션 <은혼> 속 긴토키와 카구라, 신파치 해결사 삼인방 혹은 <진격의 거인> 속 리바이 반 같은 동료를 만나는 것은 내 반쪽 찾는 일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나이도, 출신도, 배경도, 꿈도, 역할도 다른 이들이 돈이라는 목적 하나로 모인 회사에서 환상적인 동료애를 바라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생일대의 운이 발생해 기적의 확률로 제법인 동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료 덕분에 억울한 감정을 삭이기도, 퇴사를 보류하기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버티곤 합니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고, 일이 뭣 같아도 사람 힘으로 버티지만 사람이 뭣 같아지는 순간 직장은 불신지옥으로 탈바꿈합니다. 출근 지하철이 장의차로, 출근송이 장송곡으로,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관짝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죠. 입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극심한 번아웃에 시달리며 엘리베이터에서 소리를 지르고 멀쩡하다는 듯이 일하기를 2주 반복하자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새벽, 내가 이 회사에서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시스템, 인력 운영, 업무 강도 항목으로 나눠 조목조목 쓴 뒤 (무슨 패기인지 모르겠으나) 대표님께 전송하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놓아주시는가 했는데 결국 또 추노꾼에게 바짓가랑이를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놈의 바짓가랑이 다 잘라서 불태워버리던가 해야죠. 이틀 휴가 (남은 연차)를 줄 테니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라는데, 확 서랍 안에 있는 사표를 던지고 퇴사하고 싶어 지다가도 동료들 얼굴을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제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게 누군가의 생각 없는 말이나 사소한 행동이었듯, 일으켜 세워준 것 역시 동료들의 작은 말 한마디였습니다. 현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첫 직장이었던 간사이 공항에서부터 직전 직장까지, 동료들의 힘이 없었다면 경력이 쌓이기도 전에 도망치고 말았겠죠.
시니어리티 (항공업계 용어; 일명 군기) 문화와 부서 내 따돌림에 찌들어 다른 사람들 수다 떨 때 분쇄기 앞에서 홀로 보관 기한이 지난 서류를 파쇄하고 있던 제게 ‘야, 너네 부서 사람들은 왜 너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라고 말 걸어주며 무릎까지 오는 서류를 다 갈아 없앨 때까지 옆에 있어주던 여객 부서 언니나, 본인 카톡 읽었으면 답을 하라고 닥달하던 전 대표의 말에 키보드를 던지며 우는 제 어깨를 다독여주던 AD님이나, 버스에서 울면서 가는 중이라니까 츤데레처럼 치킨 사줄 돈은 있다며 기프티콘을 보내는 후배님이나, 전날 갑자기 짐 싸들고 나간 제게 아무도 괜찮냐고 물어봐주지 않는데 괜찮냐고 한 마디 해주는 후배님 2이나… 동료가 없었다면 그냥 무너졌을 순간이 많습니다. 저는 울음 많은 개복치니까요.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동료였느냐
저는 그들에게 어떤 동료일까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움은 받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그게 어떻게 제 맘대로 되겠습니까? 그냥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직급이 주는 괴리감에 괜스레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 경위서 쓸 정도로 중대한 실수가 아니면 하하호호 웃어넘기고 노래 들으면서 즐겁게 놀멍 쉬멍 일하는 게 좋습니다. 일은 제대로 하되 쓸데없이 혼나거나 혼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왜냐, 나와 내 동료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딸이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어느 회사를 가든 처음부터 동료들과 친해진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과도 어떤 계기로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뭣 같은 회사를 다니며 뭣 같은 상사들에게 함께 까이다 보니 없던 동료애도 저절로 생긴 게 아닐까 라는 합리적인 가설 말이죠.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루 꼬박 8시간, 혹은 그 이상 얼굴을 맞대며 서로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피부로 느끼는 동료들이 사라진다면 정말 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말이죠. 사람 하나 없다고 해서 회사가 망하거나 업무가 마비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회복은 생각보다 빨라 남은 동료들끼리 더 똘똘 뭉쳐 서로를 지탱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떠난 이와의 인연이 다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정말 좋은 동료였다면 매일 얼굴을 맞댈 수는 없을지라도 동료애는 끊이지 않을 겁니다. 퇴사하고 나서도 일하기 싫을 때마다 밥 먹듯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될 것입니다. 퇴사했다고 해서 그 회사랑 헤어진 거지 동료들끼리 구애인 취급할 건 없지 않습니까.
신입 시절에는 회사란 일하는 곳이라는 개념이 강해 회사 업무 중 업무 사적인 일로 메신저를 보내거나 퇴근 후 연락해 무언가를 같이 하거나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커피 한잔하자는 상사의 말이나 쉬엄쉬엄 하라는 동료들의 말을 (의도치 않게) 무시하고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기계처럼 일만 하다가 혼자 소리 빽 지르고 퇴사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십 대 후반이 되니 내가 시급 같은 월급을 받으며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그리고 왜 꼭 일로 만난 사이라고 해서 일 얘기만 해야 하나, 나는 왜 그렇게 갑갑한 사고방식으로 일을 하며 나 자신을 쉬이 지치게 만든 것일까라는 회의감에 젖게 되더군요. 오히려 그런 생각을 내려놓으니 분위기가 몰캉몰캉해져서 일도 더 잘 되고 커뮤니케이션도 수월해졌습니다. 적어도 우리 동료들 사이에서는 말이죠. 회사를 안주삼아 일 끝나고 기울이는 술 한 잔도 동료들 사이 찐한 윤활제가 되어주곤 하죠.
이렇게 동고동락하는 사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 떠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라고 여기며 찢어지게 웃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함께 하는 시간이 덜 괴로웠으면 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