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김보라, 2018)
끝의 반복이더라도 우리는 삶을 사랑한다
우리는 학교, 직장, 또래, 애인, 친구 등 내가 속한 사회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던 이들에게서 버림받고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은 하나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이 씁쓰레합니다.
영화 <벌새>는 중학생 ‘은희’를 중심으로 한번 무너진 관계 후에 찾아오는 또 다른 만남이 주는 희망에 관해 이야기힙니다. 1초에 90번의 날개짓을 하는 벌새처럼 끈질기게 이별로 생긴 상처를 만남으로 지우다 보면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 성장 영화를 본 일 년 전의 저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있던 와중에 또다시 사람의 힘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해 서울, 중학생 은희에게 세상이란 미국 월드컵도, 한여름에 38도까지 올라가는 이상 기후도, 김일성 사망 소식도 아닙니다. 콩가루 가족과 남자친구, 학교 친구가 은희의 세상 전부입니다. 하지만 극 중 초반 은희의 담임 선생님이 얘기하듯이 모든 관계는 은희 모르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안다고 열 길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처럼 남자친구 ‘지완’, 단짝 ‘지숙’, 후배 ‘유리’는 모두 은희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인사도 없이 떠나죠.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다.'
극 중 은희 담임의 말
당신의 세계는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의 사랑을 갈구하려고 애써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건 처연한 일입니다. 가까스로 이어진 인연이 서툴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바라보면서 은희는 상실과 좌절을 배웁니다. 은희는 물론, 우리 역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겁니다. ‘인생은 끝과 이별뿐인데 어째서 힘을 내서 살아야 하냐고’ 요. 여기서 다시 한번 담임 선생님의 말을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다.’
이 문장 뒤에 이어질 말들이 바로 은희와 우리가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되어줄 겁니다. 우리의 인생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질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내 희망을 갖는 게 바로 삶이라고 영화는 말해줍니다.
그 희망이라는 건 새로운 관계를 뜻합니다. 은희가 한문 학원에서 만난 ‘영지 선생님’은 수많은 유한한 만남 속에서 무한한 힘을 주는 새로운 세상으로 묘사됩니다. 그동안 인스턴트 같은 만남에 익숙해져 있던 은희가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까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건 축복입니다. 덕분에 다시 혼자가 되더라도 추억의 힘으로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 인사도 채 나누지 못한 채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 영지 선생님이지만 은희의 마음속에는 평생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처럼, 다시 힘들어질 때면 누군가를 만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지 선생님의 편지 중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유는 사람과 사랑이 있기 때문인지라 저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말의 인류애를 찾아 헤매는 중입니다. 그 속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은 하루하루 살아갈 힘이 되어주곤 하죠. 제가 관계 속에서 얻은 희망을 여러분에게도 공유하고 싶어 사람과 사랑에 관한 편지를 씁니다.
가히 당신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난 적 있으신가요? 그 사람 자체가 내가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만남. 관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 여운은 영원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나날을 살고 계신다면 그 사랑이 무한하기를 기도합니다.
2022년 5월 29일
5월의 끝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