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무엇도 아닌 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2013)

by 가람

To. 오롯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을 위해


*해석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만의 것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보고 노트북 앞에 앉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홀로 일어설 힘이 필요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홀로 일어설 힘이란 돈을 뜻하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의 독립에 관해 이렇게 말했죠.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여행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상상하며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 속에 드리울 만큼 충분한 돈을 갖기를 바랍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저/박혜원 역, 더스토리, 2017. 199-200pp.


진정한 독립이란 무엇인가 아직도 그 답을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도, 자취 생활을 해봐도, 직장을 얻어 밥벌이를 해봐도, ‘나는 언제쯤 진짜 독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떠나질 않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선 홀로 일어설 힘이 필요했습니다. 의존하지 않고 홀로 빛나기 위한 그런 힘이 말이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것. 취하지 말 것. 일기를 매일 쓸 것.”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2013)


자유와 독립을 꿈꿔왔지만 막상 홀로 서야 할 시기가 오니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영화 속 ‘해원’도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해원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배우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한국에 남은 유일한 가족인 엄마는 캐나다에 이민을 떠난다고 합니다. 이제 해원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꿈을 키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 닥친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그 일들을 일기에 쓰고 이따금 꿈을 꿉니다.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한국에 홀로 남게 된 해원의 일기와 꿈과 만남과 대화의 반복입니다. (어디서부터가 꿈이고 현실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남지만요) 저는 잠시 그녀의 일기장을 엿보고 대화를 엿들으면서 ‘진정한 홀로서기’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엄마, 교수, 낯선 남자, 아는 언니와 함께 걷던 해원이 홀로 걷기까지의 기록. 이하 이미지 출처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2013)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 <북촌방향>에서 성준이 술집 여주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이런 말을 하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것. 취하지 말 것. 일기를 매일 쓸 것.” 나 같은 지질한 놈은 잊어버려라.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정신을 기르고, 하루하루를 기록해 더 나은 내일을 그리라고 말해주는 것 같네요. 술김에 일을 저지른 사람이 한 말치고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꽤 쓸모 있는 충고입니다.


해원이 ‘누구의 딸도 아닌’ 독립된 인격체가 되는 데 필요한 것도 성준의 충고가 아닐까요. 마음이 외롭다고 학과 교수님과 불륜을 저지르고, 습관처럼 ‘술 한 잔 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현실을 잊기 위해 꿈속으로 도망치는 해원의 모습은 너무나도 설익어 보입니다. 본인의 생활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은연중에 자격지심을 내비치지만 앞으로 나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의식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일기를 쓰고 꿈을 꾼다

하나. 결핍과 의지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 속의 욕구라고 말하죠. 즉,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강한 욕망이 꿈이라는 가상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실에서는 남자에게 의지하고 별 다른 재능도 없는 해원이지만 꿈속에서 만큼은 다릅니다. 짧은 낮잠 중 꾸는 달콤한 꿈에서 해원은 본인이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처럼 말하고 행동하죠. 영화는 해원의 일기와 꿈, 현실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해원이 첫 번째 일기를 쓰는 모습 위로 나래이션이 흘러나오고, 첫 번째 꿈속 내용이 이어집니다.


2012년 3월 21일. 어제 아침 열한 시에 5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너무 일찍 나가 한참을 기다리다 식당 방에서 혼자 잠이 들었다. 엄마는 캐나다로 가서 거기서 살기로 하고 안 돌아올 모양이다. 오빠와 함께 지낼 건가 보다.



엄마를 기다리다 식당 방에서 잠이 든 해원은 꿈을 꿉니다. 서촌으로 가는 길을 묻는 외국인 여성과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해원. 대화를 들어보니 외국인 여성의 딸은 배우이고 해원은 그 배우의 팬인 모양입니다. 따님을 무척 사랑한다는 해원의 고백을 들은 외국인 여성은 해원에게 ‘당신 참 내 딸과 닮아 예쁘다’ ‘영어를 무척 잘한다’ ‘번호를 줄 테니 언제 파리로 놀러 와 연락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해원은 꿈에서 깹니다.


꿈에서 깨 내일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와 대화를 하는 해원. 현실에서는 해원이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 들을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마음대로 살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와 데이트를 하는 해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불안한데 모든 걸 내려놓고 해탈한 듯이 얘기하는 엄마가 밉기도 할 겁니다. 멜랑꼴리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해원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하죠.


인간은 죽음에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존재이기에 시간을 현명하게 쓰고 자신을 아끼라고 충고하는 엄마. 실존주의 철학이 떠오른다.

“사는 건 죽어가는 거야. 하루하루 조금씩 죽음을 향해서 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나처럼 살지 말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아직 깨닫지 못한 해원은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냉소적으로 대꾸합니다. ‘너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는 대사의 이면에는 <북촌방향>에서 성준이 했던 충고와 비슷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나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원하는 것을 이루라는, 그런 뜻에서 엄마는 해원에게 이런 말을 한 게 아닐까요.


그러나 이런 뜻을 헤아리지 못한 해원은 잘못된 방식으로 마음을 위로합니다.


“비가 내린다. 엄마와 헤어진 후,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고맙게도 와준다고 했다. 아직 완전히 헤어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란 불륜 상대인 교수입니다. 이 교수라는 사람은 해원을 끔찍이 아끼는 척 하지만, 가정은 돌볼 줄도 모르고 학생들에게 관계를 들킬까 안절부절못하는 찌질이의 정석이지만 해원이 듣고 싶은 달콤한 말만 해줍니다.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어 자신이 미친 것 같냐고 물어보는 해원에게 “아냐 아냐. 너 너무 예뻐. 너무 예쁜 것 같다 진짜.”라고 사탕발림을 하는가 하면, ‘오늘만 같이 있어 줘요. 내가 좀 힘들어서 그래요’라는 해원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해 기어코 둘이 술을 마시러 갑니다.


막막한 상황에서 해원이 했어야만 하는 일 첫 번째는 수업에 참가하는 일입니다. 머릿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한 문장밖에 없어도 졸업을 목표로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따야 했습니다. 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껄끄럽다면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을 찾았어야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것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정신력과 경제적 능력을 길렀어야 합니다. 해원에게 필요한 시간은 내면을 단단히 다지는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그녀는 외적 요소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게 진짜 위로가 아닌, 결국은 자기 자신을 더 상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말이죠.





둘. 자각과 홀로서기


없느니만 못한 남자에게 의지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관계에 마음만 다친 해원이지만 또다시 그 남자를 만납니다.


2012년 3월 27일. 어제 그 사람이 보자고 해서 나갔다.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했고, 내가 몸이 불편하면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 신사역에서 만나 그 사람 차로 남한산성을 갔다.

교수와의 만남은 해원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습니다. 일례로 남한산성에서 돌담을 보며 한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죠.



-이 교수: (돌담을 바라보다가) “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거야.”


-해원: “나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이 교수: “그래. 아니다, 그래도 세 갠 남겠다. 내 새끼하고 내 영화하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기억?”


-해원: “많이 남기네요.”


-이 교수: “그게 많아?”


-해원: “많죠”


-이 교수: “아니야 너도 똑같이 남길 거야. 사람들이 널 기억할 거고. 그러고 나중에 네가 결혼하면 애도 낳을 거고.”


-해원: “안 남길 거라니까요... 선생님 혼자 많이 남기세요.”


이 둘의 미래에는 서로가 없습니다. 교수라는 사람은 자기 가정과 작품만 생각하는 주제에 해원의 미래를 응원하는 척 이야기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겁니다.






달콤하지만 위태로운 관계의 끝은 어디일까 해원도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잘못된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는 혼자 일어설 힘이 없어 자꾸만 교수의 속삭임에 넘어가죠. 과연 해원은 이 관계를 끊고 홀로 설 힘을 기를 수 있을까요? 그녀의 세 번째 일기로 시작되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꿈인지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어디까지나 제 해석이지만 저는 영화의 마지막 30분 전체가 해원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4월 3일. 어제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수업시간에 너무 늦게 도착해 그냥 도서관에 들어갔다. 영어책들이 있는 열람실에서 잠을 잤는데, 이상하게 도서관에서는 잠이 너무 잘 온다.


도서관에서 잠이 들었다 깬 그녀는 책장 앞에서 한 남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학교 앞 중고 책방을 서성입니다. 그곳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교수를 한다는 남자를 만납니다. 이 낯선 아저씨는 해원에게 차 한잔하자며 책방 안으로 그녀를 안내합니다. 결혼할 좋은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 아저씨는 해원이 바로 그가 찾던 좋은 사람이라고 하죠.



-낯선 남자: “해원 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거 같은데, 안으로는 사실 제일 용감한 사람인 것 같아요. 뭔가 힘이 너무 강해서 계속해서 부닥치면서 되게 아프고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 부닥칠 것 같아요.


-해원: “그래요?”


-낯선 남자: “그래야지 자기가 누군지 알 것 같으니까 계속 부닥치는 거지. 알고 싶은 거죠. 자기가 누군지. 근데, 그 부닥침의 강도나 지속이 대단할 것 같아요. 글쎄 뭐랄까, 어떤 절대적인 진실 같은 거를 살아있는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체험하고 싶은 거? 그런 거 아닌가?”


저는 이 낯선 남자가 해원이 만들어 낸 그녀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낯선 남자는 해원이 동경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교수 일을 하고 있으며 감독과 유창한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합니다. 그리고 해원을 처음 보지만 그녀의 인생을 꿰뚫어 본 듯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주기 때문이죠.






낯선 남자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해원은 또다시 남한산성으로 향합니다. 남한산성에 있다는 해원의 말을 들은 교수는 해원을 찾아오는데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용기를 얻은 덕분일까요? 해원은 용기를 내어 교수에게 끝을 선언합니다.


-해원: “헤어져요. 헤어질 것도 없겠지만, 선생님은 하나도 포기 안 하려고 하시잖아요. 저도 잘살고 그냥 그럴래요.”



대사가 끝난 후에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거칠게 클로즈업합니다. 드디어 해원은 누구의 것도 아닌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꿈속일지도 모르지만, 편지의 초두에서 얘기했듯이 꿈은 무의식 속 욕망이 강렬한 이미지로 재생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 나쁜 관계에 마음을 갉아 먹히고 있었지만, 진짜 그녀가 원하는 것은 시원하게 이별을 선언하고 홀로 서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제 해석이 틀려 이 상황이 현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외롭고 슬프다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가는 인생인데 무엇이 두려우리


저도 해원처럼 매일 기록하고 꿈을 꿉니다. 그리고 <북촌방향>의 조언처럼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취하지 않고 매일 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쓸모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서 좋은 사람이 다가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니까요. 해원이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앞으로 나아갈 용기 부족 때문이 아닐까요.


이 영화를 처음 접한 후의 저녁, 저와 많이 닮은 해원에게 연민을 느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잠을 청한다면 해원처럼 달콤한 꿈속에 빠져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내가 보고 싶은 사람만 보며 잠시 도망칠 수 있지만 꿈을 깨면 다시 외롭고 슬프다가 무서워 질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전에 안 간데 까지 걸어가 보았다."


진정한 홀로서기란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혼자서 두려운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엄마의 대사를 다시 인용하자면 ‘사는 건 죽어가는 것’입니다. 해원도 죽음을 향해 걸어가다가 부닥치고 깨지며 깨달았을 겁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아픔도 있음을, 어떤 만남은 자기 자신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그래서 혼자가 되는 길을 택했겠죠.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홀로서기에 한 발짝 가까워진 해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해원을 닮아 오롯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모두에게도요.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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