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이라는 숫자를 혀 위에서 가만히 굴려본다. 아무래도 착 붙지는 않는다.
평소에 나이를 그다지 의식하고 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한국이 나이에 따른 생애 주기가 비교적 강하게 드러나는 문화라고도 하지만, 특별히 신경이 쓰이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내 주변 특성상 그렇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기도 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내 나이의 무게를 실감했던 건 일터에서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있다는 것을 처음 명확하게 느꼈을 때. 함께 자유롭게 의견들을 내놓다가도, 마지막 순간에 모두가 나의 결정을 기다리던 순간들을 만났을 때. 어려움을 겪고 있던 누군가가 감사하게도 나를 찾아왔을 때. 내가 지금까지 그랬듯,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어디가서도 말 못 할 가장 큰 솔직한 감정은 어쩔 줄 모르겠음,이었다. 나는 그냥 언제나와 같은 나일뿐인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왔을 뿐인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최종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더 이상은 천방지축 하고 싶은 대로만은 할 수 없는 나이였다. 난 어른 프로 맥스가 아닌데.
그렇게 삶의 무게를 배워가나 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책임이고 무게고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학생이 되어 있다. 이 나이에(!), 내가 나만 책임지면 되는 현실이라니. 복도 이런 복이 없다. 어떤 책임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묘한 가벼움을 느낀다. 특히 다문화, 다인종, 다양한 삶의 맥락이 섞여 있는 이곳에서는, 내 나이는 그 다양한 색깔들의 혼합 속에 섞여들어 더욱 희미해진다. 교실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교수님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을 수도 있는 학생들도 여럿 있고, 다들 각자의 삶에서 가져온 배움을 스스럼없이 풀어놓는다. 이곳에서는 더욱,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더 자유로워지나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 나이를 다시 또렷하게 의식하게 된 순간은 글을 쓰면서였다.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쓰던 며칠 전, 문장 하나를 몇 번이나 고쳐 썼다. "다시 학생이 되었다"라고 썼다가, "40대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라고 고쳤다가, 다시 백스페이스를 눌렀다가. 그렇게 안 쓰고 싶은데, 뭔가 나를 설명하는데 나이를 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최종 문장을 써 놓고서도,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을 들여다봤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는데, 왜 현실에서는 의식하지도 않는 나이가 자꾸 머리를 들이미는 걸까.
어쩌면, "그렇게 안 쓰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단서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쩌면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내 나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재단하고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써 아닌 척, 신경 쓰지 않는 척, 쿨한 척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이 나이에"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떤 가능성 앞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 싫어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속일 만큼 절박한 마음이라니,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였던 걸까.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나이를 이유로 뭔가 새롭게 배우는 것을 포기한 적도, 지원을 망설였던 적도, 시도하지 않았던 선택도 없다. 적어도 아직은. 그때마다 당당하게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나이가 어때서, 나이 핑계 대지 마.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나이를 무언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나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척해 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어쩌면 앞으로 나도 모르게 나의 가능성을 조금씩 옭아매는 그물이 될지도 모른다. 나이는 차곡차곡 먹어갈 테니. 그리고 사실, 나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좋다. 자고 나면 하루는 더 어른이 된다는 잔나비의 속삭임처럼, 어른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가 하나 더 쌓인 내가 되는 게 좋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힘들어하는지, 힘들어할 때 뭘 먹여주면 되는지, 뭘 들려주면 되는지를 조금 더 잘 안다. 그래서 앞으로 나를 더 잘 게 될 내일의 내가 기대가 된다.
적어도 한 가지는 조금 더 분명해진 것 같다.
나는 내가 믿어왔던 것보다,
조금 더 스스로를 제한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안에 쌓이는 시간의 결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이 나이에"라는 말을 쉽게 떠올리기보다, 혹은 그 말을 떠올리기를 애써 거부하기보다,
그냥, 해 보기로 한다.
적어도 가능성 앞에서 한 발 물러서는 사람은 되지 않기로.
그 가능성들이 현실에 쌓여 만들 내일의 나를 기대해 보기로.
아.. 쓰다 보니 기억난 사실 하나 더.
생각해 보니 사실 요즘엔 신체적 변화 때문에 다른 의미로 나이를 절감하고 있긴 하다..
회복이 느려..
근육이 빠져...
변화는 어쩔 수 없고,
살 길은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