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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ul 07. 2021

낙서를 할 바엔 웹툰을 그리라고!

창업만화 그리게 된 만화












첼시와 나는 아주 오래된 사이다. 15년 전 첼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스물다섯 살, 첼시는 여덟 살이었다. 첼시 어머니가 내일새싹학교 선생님이었고,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안학교에 참여한 때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는 약 3개월 정도 첼시네 집에서 얹혀살았다. 첼시 어머니가 한 시간 먼저 출근하면, 내 역할은 첼시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같이 학교로 가는 것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는데, 8차선 도로도 있고 횡단보도 여러 개를 건너야 하는, 조금 위험한 길이었다.


선생님, 제 손 절대로 놓으시면 안돼요?!


첼시는 매일 아침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내 손을 꼭 붙들고 등교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얼마 후 나는 봉화로 왔고, 첼시는 약 7년 뒤 봉화의 내일학교 본교 진학했다. 꼬마만두같았던 첼시는 어느새 쑥 자라서 왕만두가 되어 있었고, 다시 만났을 땐 사춘기 소녀 특유의 시크함으로 나를 보고 인사 하지 않고 슥 지나가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후 몇 년간 있었던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첼시는 내일학교에서 정원 수업을 하다가 정원 전공을 택했다가 정원디자이너가 되었고, 나는 내일학교의 자람도우미를 하다가 첼시를 포함한 내일학교의 졸업생 & 재학생과 함께 창업을 하게 되었다.

 

첼시와 함께 지낸 몇 년간, 나는 첼시가 틈만 나면 종이에다가 뭔가를 끄적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소싯적 만화책 좀 들이팠던 나의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었다. 알고 보니 첼시는 한때 웹툰 작가를 꿈꾸었던 그림쟁이로, 나와 만나지 않았던 시간 동안 상당한 덕력을 쌓은 숨은 인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년에 걸쳐서 '그렇게 낙서를 할 바엔 진짜 웹툰을 그려라'라고 닦달을 했는데 첼시는 그것을 그냥 빈말로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만화를 무지하게 좋아했지만 그림에는 도무지 재능이 없어서 만화가가 될 생각은 일찌감치 작파했건만, 첼시는 자신의 재능을 고작 회의록 가장자리에 낙서하는 데에 소모하고 있다니! 이런 문화적 낭비가 있나!라고 매번 한탄했다.


위토피아를 창업하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마케팅을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여느 때처럼) 첼시가 회의 중에 그림을 그려서 표현하는 것을 보았고, 다들 그걸 보고는 '그냥 차라리 웹툰을 그려!!'라고 일갈했다. 그제야 자신의 재능이 어떻게 쓰일지를 비로소 받아들인 첼시는 웹툰을 그리기로 했다.


보통은 내가 텍스트로 시나리오를 쓰고, 첼시가 러프하게 콘티를 그려오면 다른 멤버들이 함께 세부사항에 대한 피드백을 한 후 최종 확정을 하는 식이다.




첼시 캐릭터가 만두인 이유는... 그냥 첼시를 만나보면 다들 안다. '아, 니가 그 만두구나!'


내가 왜 다람쥐인가 하면, 도토리를 땅에 묻어놓고 잊어버리는 다람쥐처럼 나는 물건이나 먹을 것을 모아두었다 까먹고 방치하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사과나 옥수수를 먹는 모습이 다람쥐와 비슷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대표인 지나의 캐릭터는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래떡이다', '아니다, 손가락이다'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사실 이것의 모티브는 개업한 상점 앞에 세워놓는 풍선인형이다. 민진하는 워낙 우월한 기럭지를 가지고 태어난지라 이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다들 박장대소하면서 동감을 표했다. 당사자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지만, 작가의 예술적 영감에 따라 창조된 캐릭터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외에도 스타트업 위토피아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펼쳐내자니 믹서기가 된 개발자조류가 된 미디어팀과 식품이 된 내일학생들과 다른 자람도우미 선생님 등등... 주요 캐릭터만 일곱 명에 전체를 다 합치면 이삼십 명은 넘어서는... 대하 서사 비즈니스 웹툰으로 진화 중이다.




그렇게 어릴 적 꿈꾸었던 웹툰 작가가 된 첼시의 소감은 이러했다.

혼자 끄적일 땐 그림 그리는 게 즐겁고 좋았는데, 마감을 맞춰야 하니까 힘들어요...


나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 "인생이 그래"로 심상하게 응수했다. 마감에 맞춰서 일정한 퀄리티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하는 일이 항상 재미있기만 할  만무하다. 그래도 뭐,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힘든 것보다는 좋아하는  하면서 힘든 게 더 낫지 않을까.


어쨌든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서, 웹툰의 시나리오 작가와 그림 작가로서 나와 첼시는 15년 전 그때처럼 여전히 손을  잡은 채 함께 걸어가는 중이다. 



글 / 김가람,  그림/ 첼시(권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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