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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May 31. 2021

#1 이것은 절대 스포일러가 없는 이야기랍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며


대체, 스타트업이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이 하는 것일까? 어느새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성공 스토리는 말 그대로 신화의 영역에 들어선 것 같다. 창업한 지 불과 10년 만에 세계를 제패한 구글이라든지, 독선과 아집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스티브 잡스라든지, 테슬라와 암호화폐로 떼돈을 벌어 화성을 정복하겠다고 공언하는 일론 머스크라든지. 그리스 로마 신화 따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초월적인 영역에 들어선 양반들 이야기 말이다.


by Midjourney(AI)



나는 얼리어답터로서, 한 명의 열성적인 관객으로서 어릴 적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멀리서 꾸준히 주워섬겼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 "Do you yahoo?" 광고를 보았는데 졸업할 때는 "I googled it"이라는 대사가 나오는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요즘 애들은 야후가 뭔지 모른다. 정말로!) 개인 홈페이지 정도는 끄적이며 만들어보고, 스티브 잡스 평전을 정독하고, 애자일이 뭔지 궁금해서 책도 한번 사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흥미의 영역으로, 닷컴 열풍이 불어오거나 게임업계가 흥하거나 판교에 테크 기업이 들어서며 창업 붐이 불 때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기술창업이나 앱 개발, 플랫폼 구축과 같은 것들은 어찌 됐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이젠 너무 시뻘건 레드오션이라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는 SNS를. 심지어 거기에다 e커머스를 듬뿍 끼얹기까지 하다니. 내로라하는 대기업조차 섣불리 뛰어들면 본전도 못 건지기 십상이라는 그 바닥 말이다.

보통 스타트업의 창업 스토리는 성공한 뒤에 회고하는 형태로 저술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얘기다. 봉황이 될지 닭에 그칠 지 알 수 없는 스타트업 이야기에 누가 출간 제의를 할 것인가. 성공하면 돈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그것으로 남들의 시간을 살 수 있으며, 모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니 책을 쓰는 것은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그런데, 성공한 뒤에 쓰는 성공 스토리에는 하나의 맹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미리 아는 상태에서 초반의 역경을 서술하는 것은 마치 결말을 아는 채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알기에 초창기의 불안과 공포, 좌절을 상대적으로 쉽고 가볍게 여긴다. 고생했네. 힘들었겠어. 근데 지금은 시총 10위 안에 들었잖아. 상장해서 다들 억만장자잖아. 전용 비행기 타고 다니잖아.

문제는 또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그리 객관적이지가 않다. 일주일 전에 먹은 점심메뉴에 대해서도 기억을 믿기 어려운데, 하물며 십 년 지난 일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랴. 팩트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차 체크해서 정확성을 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어떨까? 성공할지 어떨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불확실성을 견뎌야 할지도 모르며, 어떤 재난과 불운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느꼈던 것들이 성공의 달콤한 축복 뒤에도 살아남아 회고록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성공한 사람이 '난 이러저러해서 성공했어요'라고 분석하는 것은 정말 맞는 이야기일까? 결말 보고 범인 맞추기, 답안지 보고 써내는 수학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는 시점에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물론 남들이 왜 이 타이밍에 책을 쓰지 않는지는 잘 알고 있다. 일단 스타트업을 하면 미칠 듯이 바빠서 글 쓸 시간 같은 것은 나지 않을뿐더러,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시점에 창대한 미래를 떠드는 건 아무리 잘 봐줘도 바보스럽기 때문이다. 성공한 뒤에 한때 고생했던 이야기를 꺼내 들면 꽤 멋지고 폼날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는 내가 주연인지 조연인지 엑스트라인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쓰는 것이 우리의 성공신화일지 셀프 부관참시일지는 지나 봐야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대도 뭐 어떤가. 우리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거액의 시리즈 A 투자와 미국 증시 상장과 TED 연설 무대가 아니면 어떤가 말이다. 불확실한 순간을 어찌어찌 헤쳐나가거나 헛발을 디뎌 좌절하는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목표 지점에 언제 도달할지, 아니 그것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지 모른 채로  돛을 올리고 항해를 해야만 하는 순간에는 불확실성의 공포를 견디기 위하여 다들 무엇인가를 한다.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나사를 조이고, 누군가는 술을 마실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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