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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un 07. 2021

#2 태초에 학교가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

후아의 창업 멤버들은 내일학교와 그 전신인 하늘새싹자람터에서 만난 사이다. 각자 만난 시기에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만난 지 대략 17년에서 27년 정도 되었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창업을 하다니,
이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잖아요!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심사위원으로 만난 한 교수님은 눈을 반짝이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글쎄, 그분이 어떤 스토리를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실제와는 좀 다른 상상을 하신 것 같다. 제도권에서 쫓겨나 좌절하고 방황하던 청소년을 내가 개심시켜서 창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 반대에 더 가까웠다.


이 이야기는 대표 민진하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민진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다. 하루 종일 책상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하다니!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고 하라는 대로 다 해야만 하다니! 심지어 잘못했다고 매를 맞기까지! 지도도 없이 빨치산처럼 집 주변 산간 지대를 타고 놀던 민진하에게 학교란 너무나 큰 컬처쇼크의 현장이었다. 민진하는 싫어하는 학교를 반년간 꾸역꾸역 다녔고, 그러다가 그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보통의 부모라면 어떻게든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도록 애써보고, 달래보고, 을러볼 것이다. 애가 무슨 우울증이냐고 황당해하며 웃어넘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진하의 아버지, 민영주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토록 싫은 학교라면 가지 말라고, 봄날 야생화처럼 생생하던 애가 학교에 가더니 시들어 죽어가는 화분처럼 되었다고 아빠와 함께 홈스쿨링을 하자고 했다. 지금이야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가 제법 흔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 홈스쿨링을 하면 경찰이 집에 찾아와서 학교에 보내라고 종용하던 시절이었다.


민영주 선생님은 당신의 사업을 위해 고쳐 쓰고 있던 폐교에 민진하를 위해 작은 아동도서관을 만들어주었다. 민진하가 그 책들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볕이 잘 들고 푹신한 쿠션들이 많아서 구글 사무실 같던 그 도서관은 낮잠을 자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자다가 좀이 쑤시면 언제든 밖으로 나가 산속을 쏘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민진하는 다시 행복해졌다.


by Midjourney(AI)


그런데 민진하와 그 부친인 민영주 선생님의 공통점이 있으니, 뭘 해도 혼자 하는 법이 없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민영주 선생님은 당시 성인을 위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엄마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은 주말마다 아동도서관에서 뒹굴거리다가 이내 산으로 들로 뛰어나갔다. 민진하는 아이들을 몰고 토끼를 쫓거나 산딸기를 따먹는 등 원시인과 유사한 수렵채집 활동에 열중했다. 주말 내내 산속을 뛰어놀며 행복했던 아이들은 월요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기들도 학교가 아니라 여기 아동도서관에서 책 보다가 질리면 민진하처럼 수렵과 채집을 하고 싶다고 부모를 졸라댔다.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그래서 학교가 자연발생하였다. 그 이야기도 한 보따리지만, 지금은 학교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니 일단 접어두자. 아무튼 그 학교에 이현, 강희원, 권지민이 입학했다. 민진하의 동생인 민진영도 함께였다. 나도 할 수만 있었다면 기꺼이 입학하고 싶었지만 그들을 만났을 때 이미 대학을 졸업할 지경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교사를 하겠노라고 자청했다. 하지만 내가 뭘 가르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늦깎이로 들어온 만학도 같은 입장이었는데, 배움이 참 오래 걸렸다. 사람 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는 뜻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민진하는 어쩌다 보니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를 졸업하고 유펜 대학원에서 교육학 전공을 하게 되었다. 이현은 실리콘밸리의 SJSU(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개발자가 되었고, 강희원과 권지민과 민진영은 정원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는 내일학교를 하면서 닭 삼천 마리를 기르고 온갖 잡다한 법인 업무와 회계를 처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졸업시켜야 할 학생 열 명과 막막한 앞날이 있었다. 애초에 대학은 곧 무너질 거라고, 입시만 바라보며 살지 말라고 가르쳤다. 취업을 하느니 창업을 하라고 말했고,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많은 과제를 주고 여러 프로젝트를 했다. 전문성을 갖춘 프로페셔널이 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인재 양성의 딜레마가 있다. 누구든 초짜일 때가 있고, 모종의 과정을 거쳐 뉴비는 중견이 되고 리더가 되는데, 대부분은 그 초짜를 한 사람 몫으로 만들어주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일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찾거나 창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독수리도 처음 날아오를 때에는 낮은 절벽부터 시도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창업 시뮬레이션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가상의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여 정말로 사업을 하는 것처럼 발전시켜 보면 좋은 훈련과 배움의 과정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하늘의 조화였는지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터졌고, 유펜에서 석사과정을 잘 밟고 있던 민진하는 갑자기 대학으로부터 3일 안에 기숙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현 역시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강희원과 권지민은 봉화에서 열심히 식물을 키우며 정원을 만들고 있었고, 민진영은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 최하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경북 봉화의 내일학교에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인 것이다. 코로나 덕분에 갑자기 봉화는 홈커밍데이 현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가상의 창업 아이템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이럴 바에는 진짜 창업을 하자'라고 이야기가 나왔고, 정말? 우리 정말 창업하는 거야?라고 서로 묻다가 모두가 점점 진지해졌다. 


우리가 최초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약 3개월간의 과정 동안 어떤 평지풍파와 롤러코스터를 겪었는지는 다음 편부터 이야기해보겠다. 아무튼 태초에 학교가 있었고, 거기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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