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람 Jun 14. 2021

#3 아이템만 가지고는 창업이 안 된다고요?

나한테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왠지 어릴 적 주변에서 먼 친척이나 옆집 아저씨가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분이 드는 듯한 이 대사는, '사업병 환자'의 전형적인 증상인 것 같다. 흔히 어떤 사업이 성공하면 아이템이 좋아서라고들 생각한다. 쿠팡이 성공한 건 로켓 배송이라는 아이템이 좋아서, 당근마켓이 성공한 건 지역기반 직거래라는 구도가 좋아서, 트위터가 성공한 건 140자 제한의 짧은 글이라는 아이디어가 좋아서였다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창업을 시작하면서 읽은 책, 기사, 블로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만나본 창업자들까지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아이템은 하나도 안 중요해요. 팀이 더 중요하죠.

처음에는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아이템이 없고 팀만 있다고 사업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니 뭔가 무공비기겠거니 하고 귀 기울여 들어보니, 압축해보면 대략 이런 메시지가 되었다.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하는지가 중요해요. 아이템이 좋다고 저절로 굴러가는 사업은 없어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길고 힘겹고, 그걸 버텨내려면 팀워크가 있어야 해요.


머릿속에서 떠올렸을 때 끝내준다고 느껴지는 아이디어는 당대의 기민한 사람들 수천 명의 머릿속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는 것 같다. 그 아이디어를 사업적 실천으로 옮기는 몇십 명의 적극적인 사람들이 있고,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 시장에 안착하여 결국은 지배적인 위치 내지는 2~3인자에 오를 때까지 버텨내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일단 세상에 출현한 좋은 아이디어는 독점되기도 어렵다. 페이스북 전에도 후에도 꽤 훌륭한 SNS가 여럿 있었고, 트위터도 몇몇 경쟁자가 있었으며, 이커머스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좋은 서비스가 등장하면 카피캣은 우후죽순으로 등장한다. 가끔은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추월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 때도 있다. 어찌 됐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된다.


문제는 그렇게 살아남아 시장을 지배 내지는 일부라도 차지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생각할 때에는 아이디어나 돈이 문제일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 입을 모아 말하기를, 사람이 문제라고 했다. 특히 창업 초창기의 팀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따라서 실패한 사업병 환자가 될지 유니콘 창업가가 될지의 향방이 갈릴 수도 있다.




길게 얘기했지만 아이템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그냥 바로 이해했다. 학교를 하면서 20년간 죽도록 많이 겪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마음과 부푼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작은 난관에도 노력하기를 포기하고 쉽게 돌아서는지, 사람이 얼마나 작은 이익에도 밑바닥을 드러내며 함께하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지, 십수 년을 가족처럼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돌변할 수 있는지를 차고 넘치도록 겪었다.


이것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당시 학생으로 함께했던 구성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직 이십 대인 아 창업팀의 내면은 어떤 의미로는 거의 두세 번째 인생을 사는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했다. 겉으로 보기엔 청년인데 사실은 3사이클쯤 되는 환생 루트를 돌고 온 영혼들이랄까. 남들은 몇십 년쯤 살아야 경험할 고난을 압축적이고 집중적으로 겪었다는 뜻이다. 사실상 그것이 그들의 청소년기였으니, 어찌 보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조기교육을 매우 빡세게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학교 시작의 원흉이었으므로 가장 어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짬밥이 가장 많은 민진하는 그만큼 인간관계로 인한 고난을 많이 겪었기에 사람 보는 눈이 매우 예리했다. 민진하는 대표로서 가져야 하는 많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다른 점에서 모두 무능하고 사람 보는 눈 하나만 가지고 있었더라도 대표를 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원래 교사와 학생으로 만났던 사이였으니 남들 보기엔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민진하가 대표를 하고 내가 일종의 보좌역인 부대표를 하는 것에 아무런 심리적 저항감이 없었다. 사실은 어떤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대표는 일종의 세일즈맨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다양한 정보를 취합하고 경청하되 중요한 순간에는 큰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민진하는 그 대표를 하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실무형 인간이었다.


부대표로서 나의 역할은 대표에게 부족한 재무와 법무, 행정적인 역량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개발자의 언어와 경영의 언어가 상호 소통되도록 통역을 하고, 그러는 와중에 경영진의 구상이 사업의 모든 영역에 말초신경까지 면면히 퍼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CTO인 이현도 마찬가지였다. 내일학교 시절부터 개발자가 되겠노라고 마음먹은 이 친구는 마치 경주마 같아서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주변의 시야를 까맣게 물들이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개발자로서는 꽤 괜찮은 재능일 것이다. 하지만 대표를 하라고 하면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그는 개발 외의 번거로운 일들을 민진하와 내가 전담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서로를 표적으로 다트를 던질 만큼 괴롭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을 보면 그럭저럭 팀워크가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옹기종기한 팀워크 상공에는 항상 민영주 선생님이라는 거대한 지붕이 있었다. 동문수학한 사이라는 것은 그런 장점이 있다. 어설프게 자기를 내세우며 치받고 싸우다가는 스승의 죽비에 머리통이 남아나기 어렵다. 물론 진짜로 얻어맞는 것은 아니고 상징적인 차원에서의 얘기다. 다행히도 우리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치고받고 싸운 적은 없고, 대부분 선생님이 나서실 때는 우리가 창업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바라봐야 할 비전과 미션이 흐릿해질 때였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알 수 없었던 것은 또 있었다. 아이템보다도, 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이 사업을 하는지', 즉 비전과 미션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것도 뼈저린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삶의 중요한 문제를 맞들게 되면, 빠르든 늦든 고난이 오면 반드시 그 관계는 무너진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아프게 무너진다.


사실상 비전이란 사업의 시작이고 끝이며, 여기에서 합의를 하지 못한다면 최대한 일찌감치 갈라서는 것이 좋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해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 태초에 학교가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