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직접적으로 묻는 분들도 있고, 에둘러 묻는 분들도 있고, 묻지는 않지만 궁금증 가득한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는 분들도 있다. 왜 사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 질문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망할 수도 있는데) 왜 창업을 했어요?
왜 (서울도 아니고 경북 봉화에서) 창업을 했어요?
(경영학이나 컴싸 전공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창업을 했어요?
(원래 교육하던 분들인데) 왜 창업을 했어요?
(IT 기업에 다녀본 경험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창업을 했어요?
(돈 벌려고 아등바등할 관상이 아닌데) 왜 창업을 했어요?
등등...
이런 질문을 종합해보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IT 창업을 하는 인물이란 서울에서, 경영학이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네카라쿠배같은 IT 기업이나 베인앤컴퍼니 등의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가, 시장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식견을 가지고 무슨무슨밸리를 하산하여 강남 오피스에서 자기 도장을 여는 무림고수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든 분야가 그렇듯 스테레오타입과 현실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다. 그리고 실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픽션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상황도 비일비재한 법이다.
우리에게 왜 창업을 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왜 학교를 시작했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강원도에서 시작해서 경상북도로 이주하여 대안학교를 했던 과정이 사실상 스타트업을 했던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미디어에서는 IT 관련 혁신기술이나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이 스타트업의 핵심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사전적 정의는 '지금까지 하지 않던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20년간의 대안학교 경험은 (기술을 뺀) 교육 스타트업의 역사였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내일학교 아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네일아트요?'라고 반문할 테니, 우리가 그리 성공한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길러내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이 통과의례처럼 겪는 온갖 삽질과 각종 좌절을 종합선물세트로 맛보았다는 것이다.
기술 스타트업과 교육 스타트업의 가장 큰 차이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일 것이다. 기술 스타트업은 빠르면 1년, 늦어도 3년 안에는 어느 정도 결판이 난다. 하지만 교육은 적어도 5년, 보통은 10년이 지나야 결과가 나오는, 초슬로우 비즈니스다. 우리의 첫 시제품이라 할 수 있는 내일학교 1기생들은 거의 10년 만에 최초의 성과를 냈는데 컬럼비아, UC 버클리, 유펜으로 요약되는 그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물론 유학을 보내려고 학교를 한 것은 아니었고 그 대학조차도 그들이 가는 길에 놓인 징검다리 중 하나였으니 사실 우리의 시제품은 아직도 테스트가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시제품' 1기생들의 성공 이후의 시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1기들의 부모님은 '넌 죽어도 학교에서 죽고 살아도 학교에서 살아라'고 결연하게 아이들을 밀어 넣었지만, 2기 이후의 학부모 및 학생들은 마음이 그렇게 두텁지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부모들은 일이 년 안에 획기적인 결과가 나오길 바랐다. 어떤 학생들은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 없이 학교 안에 있기만 하면 뭔가가 저절로 되기를 기대했다. 우리는 처음 학교를 시작할 때부터 '대학입시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고, 청소년기에 입시에 들일 노력의 에너지를 창업이나 전문성을 갈고닦으면 훨씬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밝혀 왔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런 노력 없이 쉽게 된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그 부분에서 시각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중도포기생만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2기 이후에도 유학뿐만 아니라 '정원' 분야의 성공작들이 도출되었고, 그것 역시 또 한 보따리의 이야기지만 여기에서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일단 넘어가겠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에서 최연소로 수상을 하거나, 정원업계 관계자들이 내일학교 모르면 간첩이 될 정도의 성과가 눈에 보이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만 언급하겠다. 이놈의 교육이란 말 그대로 묘목 심으면서 숲을 그리는 수준의 빅픽쳐를 요구하는, 정말 오지게도 인내심이 필요한 공정이다.
우리가 창업을 한 이유는 곧 우리가 학교를 시작한 이유와도 같았다. 우리는 다니고 싶은, 우리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만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돈을 벌고 싶은, 기꺼이 참여해서 노동을 하고 싶은 회사가 없었기에, 혹은 그런 회사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기에 직접 만들어서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해야 했다.
물론 세상에 멋지고 좋은 회사는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 환경을 파괴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면서, 누군가의 밥그릇을 빼앗거나 노동력을 쥐어짜지 않고, 기존에 없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졸업생들도 그랬고, 학교를 하는 자람도우미들도 그랬다. 교육에는 돈이 든다.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돈도 거절해야 한다. 게다가 학교란 돈 먹는 하마와도 같아서 어디에선가는 돈을 벌어서 끊임없이 때려 박아야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동안에는 농사를 짓거나 닭 3천 마리를 키우거나 굴삭기로 땅을 파거나 집을 팔아치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 획기적인 접근법이 필요했다.
학생들에게 창업을 권한 것도, 당사자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월급 받는 삶,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명확한 삶보다는 더 보람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창업이란 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상태로 뛰어들기란 너무 어렵고 위험한 분야라는 것이다. 세상에 도움받지 않고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있다 한들 그 길을 가라고 우리 아이들을 무작정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시밭길을 함께 가기로 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학생들이 선배가 창업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부딪혀 간다면, 창업이라는 과정에 환상 내지는 공포를 갖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들이 안 가는 길에 앞장서는 팔자를 타고났음에 분명한 민진하가 대표로 총대를 맸다. 개발자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턴을 갓 마친 이현은 본인 생각보다 좀 더 빠르게 창업의 현장에 던져졌다. 학교와 연관된 법인의 각종 페이퍼워크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는 이 실체 없는 조직에 회사의 몸을 만드는 미션을 받고 부대표가 되었다. 물론 재무행정법무 외에 서비스 기획, 사업계획서 작성과 UX UI 디자인까지 하게 된 건 뭐, 스타트업 창업 멤버의 숙명이려니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왜 (학교 하던 양반들이 겁도 없이) 창업을 했어요?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학교를 만들면서 산을 만나면 산을 넘었고 강을 만나면 강을 건넜고 벽에 부딪히면 벽을 부숴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야 하는 길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었다. 학교를 계속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대학을 가지 않아도 성공적이고 사회적 기여도도 높은 삶을 살 길을 마련해주어야 하고, 그들의 성공을 통해 주저하는 예비 학부모들에게 밝은 미래를 보여주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품은 최초의 뜻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그 낭떠러지 말이다.
잠시 망연자실하던 우리는 이내 깨달았다. 돌아갈 길은 없고, 멍하니 기다린다고 누가 우리를 건네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러니 지금은 다리를 만들든 암벽등반을 하든 패러글라이딩을 하든 시도를 해야 하는 때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들이 받지 않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창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창업을 하기로 했다. 2~3년간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하고. 말 그대로 배수진을 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