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고준영의 딸, 고아라
나의 아버지, 당신에 대하여
21명의 자녀들이 이야기하는 나의 아버지
나는 그런 것들이 고맙기보단
아팠고 미안했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였다.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을 꾸역꾸역 씹어본다.
내가 지나온 마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제때 꺼내먹지 못해 굳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매일 같이 말랑한 사랑을
가져다주셨던 아빠의 퇴근길.
아빠에 대한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완성되지 못한 글들만 늘어간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 기억 속에 아빠는 항상 우리를 향해 있었다. 모든 것, 모든 삶이 전부 우리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면서도 우리의 끼니를 걱정하고 17년을 매일 같은 회사, 똑같은 얼굴들을 보면서도 매일 다른 표정과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냈다.
군것질과 먹는 걸 좋아하면서 매일같이 회사에서 나오는 우유를 집으로 가져오던 아빠. 언젠가는 떡을 가져왔다. 랩에 싸여있는 둥글고 긴 떡이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먹어야지 하면서도 먹지 못했던 떡은 굳어버렸다.
아빠는 그걸 보며 속상해하셨다. 회사에서 간식으로 나온 떡을 안 먹고 딸들 주려고 퇴근까지 기다린 아빠였다.
나는 그런 것들이 고맙기보단 아팠고 미안했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였다.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을 꾸역꾸역 씹어본다. 내가 지나온 마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제때 꺼내먹지 못해 굳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매일 같이 말랑한 사랑을 가져다주셨던 아빠의 퇴근길.
이제는 아빠와 함께 살진 않지만, 때때로 늦게 집에 들어올 때면 언제나 부엌 불을 켜 두고 잠드시던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그립다. 테이블 위 아빠의 구불구불 메모가 그립다. 냉장고 속 아빠의 우유, 떡이 먹고 싶다. 꼭꼭 씹어 내 안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싶다.
언제쯤 나는 사랑이 사랑이라는 걸 늦지 않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쯤 당신을 기다리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자식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당신에게 밝은 미소로 달려가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우리 모두에겐 유년시절이 있다. 어릴 적 사진을 꺼내보며 까르르 웃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옛 사진을 보며 마음 한편이 저릿한 때가 왔다.
어릴 적 나에게 시선이 머무는 게 아니라, 저기 저 젊은 청년에게 더 오래도록 마음이 머무는 지금. 아빠에게 한 줌이던 내가 이제는 아빠와 나란히 걷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아빠를 이겨먹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왈칵 눈물이 났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부모에게 지려는 자식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는 잔뜩 쥔 힘을 풀고 부모에게 언제고 질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수영 못하는 아빠와 나, 해수욕장에서
1994, 어느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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