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새학기가 찾아오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
삼월이라 하면 자연히 새 학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요즘 한창 뜨거운 이슈로 인해, (잊고 싶었으나 결코 잊을 수 없던) 나의 학창 시절을 자주 떠올렸다. 낡고 깊은 주머니 속에 가라앉아 있던 날카로운 기억을 만지작거릴 때면 여린 손끝에 깊은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굳은살이 밴 건지 이제 더는 새로운 피와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됐다.
그러나 세세하게 거슬러보기에는 여전히 서글퍼서 짧게나마 이야기를 해본다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1-2학년 두 번의 따돌림을 당했다. 아무 이유 없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두 눈으로 다가왔던 어제의 친구들이 희미한 이유를 던지며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 보던 수많은 오늘이 괴로웠던 나의 열일곱과 열여덟.
팔짱 낀 아이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 위해서,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했는지. 커다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울지 않기 위해서, 외롭고 멋쩍은 특별활동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기 위해서, 그 시절의 나는 태연한 표정을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무표정한 나의 외로움과 서글픔 앞에서 더러는 모른 척하고 더러는 적극적으로 돌을 던졌다. 그 시간을 견디며 사람을, 친구를 믿지 않기로 했던 시절이 있었다.
두 번의 왕따 모두 곤란한 누군가를 두둔하려 했던 것이 시작이었기에 다시는 누구를 돕지 않겠다는 서글픈 다짐을 하기도 했다. 두 번의 따돌림을 모두 지켜보며 늘 힘이 되어주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도 “애라야, 이제는 다른 친구들 생각해 주지 않아도 돼.” 라 하셨지만 사람은 잘 달라지지 않는지, 교복을 입지 않게 된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구태여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됐다.
때때로 그런 내 자신이 버겁기도 했지만, 그 시절로부터 조금 더 멀어지고 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으로 사람을 기대할 수 있어서,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더는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질 수 있어서 도리어 감사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분명 그 외로움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내 학창 시절이 조금은 더 밝고 가벼운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미련과 아쉬움은 짙게 남아 있다.
자랑은 아니라 여기저기 떠들지는 않아도, 그 시절이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따금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을 만날 때면 용기를 내 이야기를 꺼내고는 한다. 같은 상처가 있다고 응답하는 일에는 같이 슬퍼하자는 게 아니라, 오직 같이 이겨내자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짧은 글로나마 털어내는 이야기에 생략된 수많은 긴장과 불면의 어린 날들은 여전히 나만의 몫, 여전히 깨끗하게 지워내지는 못한 미움과 상처가 남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조금씩 나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주고받으며 늦게나마 그 시절의 나를 조금 더 안아주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그 시절의 무리 진 그림자들을 용서해보고 싶다. 지나온 시간에 오늘의 마음을 묶어두고 싶지 않기에 절망의 수도 꼭지를 꾹 잠그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그들이 지난 시절 자신들이 남겨둔 상처와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며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상처들이 이제 그만 멈추는 바람이다. 괴로운 시간 속에 웅크린 어린 마음이 완전히 구겨져 버리기 전에 우리는 모두 움직여야 한다.
매일 글을 쓰고 가끔 사진을 찍어요.
에세이스트, 가랑비메이커
@garangbimaker (인스타그램, 클럽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