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 브런치 프로젝트] 어린 날의 허기증

박완서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오마주 에세이

by 가랑비메이커

내 글의 시작은 어린 날의 허기증으로부터


2021년. 해가 바뀌고 나는 어느덧 오롯한 5년 차 작가가 됐다. 맨 처음 내 몫으로 놓인 얄팍하던 하얀 책을 받아들고서도 목구멍까지 울렁이는 마음에 함부로 펼쳐보지도 못하던 때가 벌써 다섯, 아니 여섯 해 전이라니 그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나는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 됐다. 가까스로일지는 몰라도 여전히 나는 이십 대 작가이다.

스물셋, 이른 나이에 책을 낸 덕이라고 해야 할까, 탓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적정선이라는 게 무의미해진 제각각의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세상이라 스물셋이 이르다는 나의 생각이 공감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시간이 흐르고 쓰는 문장이 늘고 펴낸 책이 쌓여 갈수록 아무래도 너무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문장들의 값을 낮게 보기에 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책을 펴낸다는 게 단순히 글을 쓴다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세계로의 편입이라는 것을 조금 더 실감한 후에 결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땐 내 문장을, 그안에서 출렁이는 감정과 머물러 있는 시간들을 세상과 공유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어린 날의 허기증 같은 것이 내게 글을 쓰게 했다. 허기를 해소하며 그만이었지, 내게서 시작한 문장들이 나를 떠나, 내가 알 수 없는 어디론가에 도착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가족들 몰래 그 일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평생 나만의 일을 가졌다는 것과, 가족들에게 비밀을 가졌다는 것으로 매일매일 아슬아슬하리만큼 긴장했고, 행복했고, 그리고 고단했다.”

- 박완서 ‘중년 여인의 허기증’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쓰는 삶을 살아가는 내게 이 당연함이 낯선 먼 꿈처럼 느껴지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건 박완서 작가의 10주기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속 오래된 에세이였다.

마흔에 ‘아무튼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박완서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중년 여인의 허기증’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 없이 별안간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허기가 한국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쓰는 삶의 시작이었다.

1,200장의 원고를 빼곡하게 채운 첫 소설이 단번에 문학상을 받은 천재적인 문학성에 감히 비할 수는 없겠지만, 불붙듯이 찾아온 글에 대한 허기와 그를 채우며 느끼는 아슬한 긴장감과 행복, 그에 비례하는 고단함이라는 복잡하고 오묘한 만족과 기쁨은 1970년 봄, 마흔의 전업주부에게도 2015년 가을, 스물셋의 국문 학도에게도 세월과 세대를 넘어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으리라 확신한다.


“이제부터라도 문학이라는 고통스럽고 고독한 작업에 모든 것을 걸어보느냐, 아니면 다시 일상의 안일에 깊숙이 함몰할 것인가를 놓고 나는 고민을 되풀이 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작가로서의 창조적 능력에 대해서도 회의를 거듭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썼던 이야기들이 첫 책이 되어 나왔 때 느꼈던 감정은 포만감은커녕이전보다 더 큰 허기였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책을 처음 펼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페이지 위 활자들을 제대로 마주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누가 고쳐 쓴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낯설었고 고심하며 고른 단어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없던 일로 무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 책 하나가 아직 쓰이지도 않은 앞으로의 글들을 단정 지을까 겁이 났다.

더 잘 할 수 있는데 아니,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다시 긴 시간을 한자리에 붙어 앉아서 고요하고 고독한 시절을 견뎌야만 한다는 게 겁이 났다. 그러나 쓰지 않는 삶으로 걸어나가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한번 터져 나온 내 어린 날의 허기를 조금이나마 채워나갈 수 있는 건 글쓰기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나는 복학과 함께 예정되어 있던 실습도 취업도 마다했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다른 대안의 삶을 포기했다고 해서 쓰는 삶이 당장에 선명해지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더 큰 허기를 느끼기도 했다. 내적인 허기뿐만 아니라 삶의 궁핍의 위기도 몇 번 안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썼다. 가난한 시절에는 가난을 재료 삼아 쓰며 추억이 되어 희미해질 날을 기다렸고 뜻밖의 풍요가 찾아오면 야금야금 잊지 않고 오래 머금기 위해 썼다. 가진 것은 원래 없었고 할 수 있던 선택지도 뜯어버린 내 젊은 날이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쓰는 것뿐이었다. 조금은 불쌍하게 들리진 않을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절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글을 쓸 때만큼은 진심으로 진실로서 나아왔다고 조그맣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처럼, 그 열심히라는 게 언제나 재능 부족, 끊임없는 허기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내 부족함이 싫지 않다. 어린 날의 허기가 젊은 날의 허기로 이어진 게 고맙다. 그리고 부디 그 허기가 중년 여인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모래알 프로젝트>

본 에세이는 박완서 작가님의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X 브런치 작가 10인 모래알 프로젝트 참여 에세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글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작가님의 섬세하고 다정하고도 위트 있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가 2021년의 첫 다정한 포옹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애정을 담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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