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클린> 이방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하여도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 사이]
#movie 5. <브루클린>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Brooklyn, 2015)
줄거리 (네이버 제공) 낯선 뉴욕 브루클린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낮에는 고급 백화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서 공부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일랜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다.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에일리스는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에모리 코헨)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점차 독립적인 뉴요커로 변해간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날아온 언니의 부고. 급히 고향으로 날아간 에일리스는 그곳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짐(돔놀 글리슨)과의 만남으로 흔들리는데…
영화 <브루클린>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의 브루클린은 이방인들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희망보다는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과 향수에 잠 못 드는 곳, 브루클린. 영화는 에일리스와 토니 그리고 짐을 통해 당대 이주여성이 느꼈을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혼란, 그리고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통해 '정착, 안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만일 당신이 에일리스를 보며 그저 두 남자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가 담고자 하는 시대적 배경과 그 시간들을 견뎌온 그녀와 같은 숱한 삶에게 큰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는 아일랜드 시골마을에서 언니의 권유에 등 떠밀려 뉴욕에 흘러오게 된 에일리스. 그녀는 제 나름의 삶을 개척해보겠다며 애를 쓰지만 매일 밤 사랑하는 언니와 엄마가 있는 그녀의 고향, 아일랜드를 그리며 잠들지 못한다.
그녀는 다양한 출신의 이주자들이 모인 브루클린에서 그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머물며 생활을 시작한다. 함께 생활하게 된 여성들은 비슷한 나이대로, 백화점 점원 등 에일 리시와 비슷한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가지만 그들 안에서도 에일 리시는 이주자 중에도 이주자.
새 식구가 된 에일리스를 반겨주기보다는 묘한 경계심을 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경계심의 화살은 얼마 가지 않아 (이내 에일리스 보다 더 늦게 이주한) 새 멤버에게 돌아간다.
/모든 게 쉽지 않았던 처음을 잊은냥 차갑게 변해버린이들의 모습에서, 낯선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방인의 모습을 벗기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견뎠을지. 수십 년 전의 그 낯선 얼굴들이 새삼 서글퍼지기도 했다.
에일리시는 집과 직장, 모두가 낯선 시간 속에서 매일 밤 고향 아일랜드와 그곳에 남겨진 식구들을 그리며 무너져야 했지만 자신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언니의 편지와 강인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뉴욕에서의 시간들에서, 차츰 브루클린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그 무렵 신부님의 도움으로 원하던 야간대학에 진학하며 새로운 꿈들을 키워가는 에일리스에게
어딘가 자신과 닮아 있는 듯한 이방인, 토니가 찾아온다.
에일리스는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 함께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커뮤니티 무도회에서 이탈리안 토니를 만난다.
/영화 속, 당시 아일랜드의 경제상황이 최악의 상황이었고 많은 젊은 이들이 배를 타고 뉴욕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브루클린에서 유독 아일랜드 출신의 이주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가장 씁쓸했던 장면은 아일랜드에서 브루클린으로 떠나왔지만 그곳에서 역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정착도, 그렇다고 고향으로 떠나지도 못해- 허름한 모습으로 부랑하는 노숙인들의 모습이었다. 같은 아일랜드인으로서 그들에게 식사 봉사를 하러 온 에일리스는 그곳에서 술 취한 노숙인이 부르던 아일랜드 노래에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눈에 비친 그들은 또 다른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토니는 가족들과 함께 브루클린으로 이주해온 이탈리아 출신 배관공. 그는 아일랜드를 닮은 에매랄드 빛 눈동자의 에일리스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도, 그녀도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온전한 안정을 느낄 수는 없었던 브루클린에서 마침내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치열하고 버거운 시간들을 내려놓고)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만들어간다.
/그와 그녀의 대화와 만남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은 젊은 남녀의 사랑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뉴욕에서 만났지만 누구도 뉴욕을 고향이라 느낄 수 없었던 둘.
긴 시간을 백화점에서 서서, 졸린 눈을 비비며 듣는 야간 수업에서 보내야만 길이 보였던 에일리스. 천진한 모습으로 막히 하수구를 뚫다 왔다는 토니. 그들의 삶이 다른 영화 속 청춘 남녀보다 더 치열했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공감이 되었고 그래서 더욱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토니의 존재도 오랜 향수병을 앓아온 에일리스의 그리움을 지워주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토니의 가족 식사에 초대된 에일리스는 반가운 마음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아일랜드에 남겨진 언니와 엄마의 그리움은 짙어만 갔다. 그의 곁엔 외로움도 기쁨도 함께 나눌 가족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었으나 에일리시에게는 멀기만 했기에.
/토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에일리스에게 청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보다도 안정적인 삶에 가까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에일리스가 미래를 그려보는 토니에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미소를 보일 수 없었던 것은 남겨진 가족들 때문이리라.
토니와의 관계도, 에일리스의 학업에도 조금씩 안정기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부고에 에일리스는 상심에 빠진다.
/수화기너머로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을 듣고 장례마저 자신이 없이 치러졌다는 소식에 극복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에일리스를 보며 다시 한 번, 수많은 이주자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엄마를 위해 아일랜드에 다녀오기로 한 에일리스에게 토니는 혼인을 약속하기를 원하고 결국, 에일리스는 혼인 후, 오랜 그리움의 땅이었던 아일랜드에 돌아온다.
그러나 아일랜드에 홀로 남겨져버린 엄마는 그녀가 다시 고향에 남아 함께 지내며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고 에일리스는 그런 엄마와 언니를 줄곧 챙겨 왔다던 새로운 남자, 짐에게서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에일리스에게 모두가 뉴욕에서의 시간들을 궁금해하지만 그녀는 토니와의 혼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토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남아주기를 바라는 엄마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짐. 짐은 그녀가 없는 동안 그녀의 언니와 엄마를 가까이에서 보살펴온, 젠틀한 모습의 남자였다. 에일리스에게 그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일랜드의 푸른 바다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넉넉한 환경과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에일리스 역시 흔들리게 된다. 브루클린에서는 느껴보지 못했을, 그녀가 그토록 바랬던 안정적인 삶 짐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사이 토니에게서 온 편지들을 읽지 못하는 에일리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과연 누가 에일리스의 입장이 되어도 전혀 흔들림 없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일리스는 자신만의 집이 되어줄 토니가 있는 브루클린으로 돌아온다. 이리저리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녀가 짐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브루클린으로 다시 떠나게 된 계기가 온전히 토니를 향한 마음이었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녀가 브루클린에서 토니와 혼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일랜드 마을 사람에 의해서 보다 확실히 마음을 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녀에게 토니는 낯선 땅에서 유일한 집, 고향 같은 품이 되어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런 그가 있다면 브루클린은 낯선 땅임과 동시에 이전의 아픈 기억들을 잊게 해줄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엔 낯선 환경에 놓인 에일리스라는 여자의 심리 변화, 성장과정보다도 토니와 짐 그 사이에서 흔들렸던 그녀 더 큰 감정을 느꼈었다. 그렇게 토니와 짐이 에일리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고민하게 되었을 때 그녀가 놓여있던 상황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 곁의 토니와 짐으로 대변되었던 이주자에게 남겨진 새로운 시작과 안정된 삶에 대한 혼란, 그리고 스스로의 고향을 개척하기로 한 용기 있던 선택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끔 하였다. 거기에 아일랜드를 담아낸 녹색 눈동자와 영화 곳곳의 색감들이 나로 하여금 아일랜드와 이방인에 향한 묘한 애정을 느끼게끔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오늘도 묻는다.
누군가의 새로운 집이 되어줄 수 있는가.
지난 시간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향한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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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집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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