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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인가 그때, 거기인가

영화 <미 비포 유>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by 가랑비메이커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 사이]

#movie 4. <미 비포 유>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미 Me

비포 Before

유 You


(네이버 제공) 줄거리 6년 동안이나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는 바람에 백수가 된 루이자는 새 직장을 찾던 중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였던 전신마비 환자 윌의 6개월 임시 간병인이 된다. 루이자의 우스꽝스러운 옷, 썰렁한 농담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얼굴 표정이 신경 쓰이는 윌. 말만 하면 멍청이 보듯 두 살짜리처럼 취급하고 개망나니처럼 구는 윌이 치사하기만 한 루이자. 그렇게 둘은 서로의 인생을 향해 차츰 걸어 들어가는데...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 선

우리의 이야기



영화 <미 비포 유>는 이미 관람했다면 알겠지만 단순히 남녀의 애정을 다룬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존엄사'에 대한 논쟁을 뜨겁게 다루며 사회적 이슈에 주력한 영화라고 이해하기에도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윌'과 '루이자' 이 두 남녀가 이끌어가는 110분 간의 장면들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고자 했을까.


윌과 그의 간병인이 된 루이자


어쩌면 영화는 사랑스러운 두 남녀를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선 우리에게 서로 다른 방향에 대한 길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촉망 받던 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던 어느 날


윌은 어느 날 당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장애를 얻게 되면서 촉망받아오던 그때, 거기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넉넉한 환경과 진심 어린 케어에도 그리고 '내일 아침 눈을 뜨고 싶어 지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버린 루이자의 존재조차도 그런 윌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받아들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남자친구 패트릭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루이자


반면, 루이자는 스물여섯의 삶을 살아오기까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성실이 일을 했고 남자친구에게는 마음 넉넉한 여자친구로 자리해오면서 지금, 여기의 현실 속 자신의 위치에 그 어떤 불만을 가질 틈도 갖지 못한 채 특유의 낙천적인 기운으로 살아왔다.


'되고 싶은 삶, 하고 싶은 일' (그때, 거기의 이상)에 대해 묻는 윌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한 채, '패션'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처음으로 고백하게 된다. /이 장면이 내게는 그 어떤 장면 보다도 슬펐다. 이상을 생각해 볼 틈 없이 달려온 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떠나, 이상을 향하여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윌과 루이자는 이상에 닿기 힘든 (장애, 경제적 부양) 장애물을 안고는 현실에 놓여 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윌과 루이자가 가까워지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더 희망적으로 변해감을 느낄 수 있다.



좁혀지는 관계에 따라 약속되었던 윌의 6개월 이후의 선택 (존엄사)에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은 스크린 속 그의 부모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 위태로운 윌을 바라보던 모든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윌이 추구한 이상을 향하여, 변함없이 전개된다.


약속된 시간이 찾아오기 전, 마지막 여행


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루이자의 앞에 "루... 난 정말 내 삶을 사랑했어요." 라 고백하는 윌은 결국 어떤 것에도 자신의 이상적 끝을 위한 결정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역설적이게도 윌은 루이자가 이제는 가족이 아닌, 다름 아닌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기를 그리고 주어진 삶에 대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기를 바랐고 그의 시선과 이야기로 루이자는 자신의 시선과 삶을 조금씩 바꿔나간다.



루이자는 윌의 선택을 바꾸기 위해 삶의 아름다운 경험들을 느끼게 해주고자 했지만 결국, 그 경험들로 인해 변화된 건 윌이 아닌 루이자 자신의 삶이었다. 그 곁에서 그녀를 북돋아주던 윌의 이야기와 손길을 기쁘게 받은 루이자가 있었기에 그녀의 삶이 조금씩, 누구도 모르게 이상을 향해 가게 되었을 것이다. /윌의 사고 이후 곁을 떠나게 된 그의 전 연인 엘리시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움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이 어쩌면 윌과 루이자의 차이었는지도 모른다./




REVIEW

지금, 여기인가

그때, 거기인가


그녀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소울메이트 윌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이 착잡해지고 말았다. 결말이 정해진 전개였음에도 그 누구보다 서로의 필요를 잘 알던 윌과 루이자였으나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6개월이라니.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루이자의 고백에도 자신의 삶을 더 이상은 비참하게 내버려둘 수 없어, 예정대로 끝내려 했던 윌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관람 이후 일주일이란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누구도 다른 누구의 이상,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을까ㅡ하는 생각이 들었다.


윌이 죽고, 그녀에게 남겨둔 편지와 서포트를 통해 루이자는 꿈을 향해 간다.


가치 판단의 문제가 되는 '존엄사'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조금 더 크게 이 영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윌이 떠난 것은 죽음을 사랑해서도, 생명을 우습게 알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루에게 했던 말처럼 그는 그의 삶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녀를 두고 그때, 거기의 이상을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다.


남겨진 루에게 남겨둔 그녀의 꿈을 위한 지원. 그리고 한 장의 편지 그 속의 "대담하게 살아요, 끝까지 밀어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 이 문장이 그녀를 향한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지만, 그의 마지막 편지에도 루이자의 마지막 얼굴을 우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건 그녀의 아버지가 남겼던 말처럼 윌의 그런 선택까지도 모두 존중하고 사랑하기로 한 결심이며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게 될 자신의 이상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이든 그때, 거기이든 한 개인이 꿈꾸던 이상에 대한 방향과 열망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되어야 할 가치가 있음을 사랑스러운 두 남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정하기에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수없이 많은 이상적 가치들 앞에서 얼마나 흔들리고 휘둘리게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쥐고 있는 이상은
지금, 여기인가ㅡ 그때, 거기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일지.


가랑비 <책장과 극장사이> 노트 222-225p


부디 우리의 삶이 당장의 오늘이 아닌

내일을 꿈꿀 틈을 허락해주길





imyourgar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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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집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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