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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r 26. 2018

영화 <레이디 버드> 알을 깨고 나와, 날아볼래

내가 나로 홀로 서기 시작할 때, 그렇게 어른이 된다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 사이]

#movie 12. <레이디 버드> *브런치 무비 패스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구독자분들의 댓글과 좋아요는 아주 큰 힘이 됩니다.



레이디 버드 (2018)

Lady Bird, 2018



줄거리 I am LADY BIRD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 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네이버 제공)





내가 지은 내 이름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는 크리스틴이 스스로 정한 그녀의 이름이다. 이 다섯 글자를 별칭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건 레이디 버드에게 단단히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만 불러줄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자신을 부르는 부모에게도, 학교 회장 선출에 참여할 때조차 그녀는 자신의 본 이름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이 오직 "레이디 버드"로만 존재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지은 이름'이 있다는 점에서 레이디버드, 그녀에게 강렬하게 끌렸다. 나 역시 그녀처럼 교복을 입고 다녔을 때부터 내 이름 세 글자보다도 가랑비메이커 라는 여섯 글자가 더욱 가깝게만 느껴졌다. 그건 아주 오래도록 내 것이었으나 내가 결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을 보내온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 부모의 결정에 따라오게 된 성모여고, 원하는 대로 지어주지 않은 이름, 무능력한 부모와 마음에 들지 않는 오빠와 새언니. 권태로운 모든 일상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레이디버드는 스스로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고 훨훨 날아가고 싶었을 거다. 그 점에서 나는 레이디버드와 나의 강한 교집합을 찾았고 그녀의 삶에 깊게 몰입하게 되었다.





조금씩 멀어지는

나의 맨얼굴



레이디 버드, 그녀는 자신의 세계가 분명했고 당돌했으나 여전히 위태로운 여고생이었으니.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지만, 모든 게 서툴고 어리숙했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자신의 본모습과도 멀어져 버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연극수업에서 알게 된 대니와 이제는 시시해진 단짝 줄리, 그리고 새롭게 알아가고 싶은 무리들과의 시간들. 레이디 버드에게는 새 이름에 걸맞은 것들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오히려 더디게 나빠지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짜 레이디 버드가 아닌 한 커풀씩 새로운 옷과 가면으로 스스로를 가리기 시작했다. 아직 그녀는 알을 깨고서 온전히 자신의 맨 몸을 바라보기엔 많은 것들이 어리숙하고 부족하기만 하다.


시시하고 권태로운 것들에게서 레이디 버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것만이 유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사춘기 시절, 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현실과는 다른 것들을 꾸며대곤 했으니까. 그 시간들을 지나왔기 때문일까, 레이디 버드가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매력적인 취향과 빛을 숨긴 채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조금은 귀엽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더 멀리 날기 위해선

내가 가진 날개를 믿어야 해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으로부터 미친 듯이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리 가지는 못한다. 많은 사연과 변명들이 있겠지만, 레이디 버드는 멀리 갔다. 자신의 힘으로 대학이라는 탈출구를 붙잡고 마침내 그간의 모든 삶을 고스란히 새크라멘토에 두고서 뉴욕으로.


'구리고' 낡은 집, 잔소리만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는 것만 같은 엄마와 늘 안쓰럽게만 보이는 아빠를 두고 떠난 레이디 버드는 어땠을까. 환호성을 지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뻔한 예상과는 조금 빗나간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자신을 가두고만 있었다고 생각했었지 따스하게 보호하고 안아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닫게 된다. 그녀에게 최선의 모습을 기대하는 엄마가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었는지를, 본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취향과 생각이 얼마나 근사한지를.


레이디 버드, 가 되지 않아도 샌프란시스코처럼 누구나 다 알 법한 곳이 아닌 새크라멘토,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크리스틴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곳을 떠나게 돼서야, 그 얼굴들을 멀리 두고 와서야 알게 되는 거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본인 스스로에 대한 증명을 하기 위해 급급하고 가면을 씌워서라도 초라한 맨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하며.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처럼 조금 더 멀리 두고서 바라보았을 때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정겹고 사랑스러운지를 알게 될 거다.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멀지 않은 곳에, 시치미를 떼고 있을 뿐이다.


거울 앞에 마주하고 있는 바보 같아 보이는 우리의 모습도 그렇다. 반드시 무엇이 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 자체로 날마다 알을 깨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일 거다.  







<책장과 극장 사이>는 가랑비만의 분석 / 해석 이후 쓰여집니다.


가랑비메이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2015),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2017),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2018) 세 권의 책을 펴냈다.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는다. 언제나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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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imyourgarang@naver.com (기타 제안)

인스타그램 @sentenceandscenes / @garangbimaker / @scenesofgarangbi

블로그 https://imyourgarang.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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