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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Jun 21. 2018

영화 <마녀> 쫓기는 걸까, 쫓는 걸까

강력한 통제와 끈질긴 생존 욕구가 만났을 때 상황은 전복된다.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 사이]

#movie 13. <마녀> *영화 홍보사 초대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구독자분들의 댓글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마녀 (2018)

The Witch : Part 1. The Subversion, 2018



줄거리 10년 전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은 ‘자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자신을 거두고 키워준 노부부의 보살핌으로  씩씩하고 밝은 여고생으로 자라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을 돕기 위해 상금이 걸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윤,  방송이 나간 직후부터 의문의 인물들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자윤의 주변을 맴돌며 날카롭게 지켜보는 남자 ‘귀공자’, 그리고 과거 사고가 일어난 시점부터 사라진 아이를 찾던 ‘닥터 백’과 ‘미스터 최’까지. 그들이 나타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네이버 제공)




서정적인 전반부

고조되는 흐름



강렬한 예고편과 이미 전작들을 통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액션신을 선보였던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상 깊은 인프로와 오프닝 이후에 진행되는) 영화 <마녀>의 전반부는 놀라울 만큼 서정적이다. 의문의 시설에서 의문의 사람들로부터 도망쳐온 어린 자윤. 그런 자윤을 사랑으로 보살펴준 노부부와 소박한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자윤은 한적한 마을의 오래된 풍경처럼 익숙하기만 하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자윤은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그녀를 쫓는 알 수 없는 존재들로 인해 분위기는 서서히 반전된다. 모든 상황의 중심이 되는 자윤은 알 수 없는 불안에도 차분히 일상을 지켜내고자 하지만 몸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부호처럼, 떨쳐내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쫓거나 혹은

쫓기는 사람들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작은 산골마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자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건 귀공자. 축 쳐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눈은 빛도 없이 공허하고 날카롭다.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자윤 앞에 등장했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윤을 이해할 수 없는 그. 그러나 자윤의 순진무구한 눈망울 너머의 모든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 그는 꼬마 마녀 아가씨, 자윤을 포기할 수 없다.


배우 최우식은 영화 <마녀>에서 여전히 소년스러운 장난기는 그대로이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 난폭하고 잔인한 인물 귀공자를 완벽히 연기했다. 이전에 그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보여줬던 순수하고 귀여운 소년의 이미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전혀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입은 그는 영화 속에서 단연 매력적인 모습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윤을 쫓는 이들은 귀공자뿐만 아니다. 닥터 백의 지시로 자윤을 쫓기 시작한 귀공자, 그리고 미스터 최. 닥터 백은 의문의 시설의 주인 격이 되는 인물로 배우 조민수를 통해 어마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많은 대사나 행동이 없이도 가만히 지켜보는 눈빛과 호흡만으로도 관객들을 얼려버릴 만큼.


닥터백과 함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으로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미스터 최는 자윤에게 맺힌 게 많은 인물이다. 자윤이 도망치던 그때부터 사라져 버린 지금까지도 "걔는 괴물이에요."라며 경계와 분노를 풀지 않으며 그녀를 쫓는다.




전복 : 생존에 대하여



계속해서 추적해오는 그들로부터 자신의 일상을 지켜내고자 애쓴다. 그러나 서서히 조여오던 덫이 마침내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버리자 자윤은 잃어버렸다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요한 산골마을 어딘가에 버려진 소녀를 데려다 정성스럽게 키워낸 노부부와 일찍 철이 든 소녀. 그들을 애정 어린 관심으로 돌보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면 영화의 전반부는 중반부를 지나자 전혀 다른 장르로 전복된다. 어리숙하고 귀여운 소녀 자윤의 모습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들어가며 인물의 정체성 역시 전복되고 만다. 영화 <마녀>의 부제 Part 1. The Subversion처럼 말이다.




완전히 반전된 후반부는 (박훈정 감독의 작품을 통해) 기대되었던 것처럼 화려한 액션이 이어진다. 눈을 깜빡이지 않을 수 없는 강도 높은 액션과 더불어 정교한 CG까지, 조금 느리게 진행되었던 서사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만큼의 쾌감을 선사한다. 또한 비주얼적인 장면의 전환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자윤의 모습까지 마지막까지 잠시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도록 흡입력 있는 전개가 이어진다.


자윤과 의문의 사람들의 대치된 장면을 통해 영화는 "생존"이라는 것이 지닌 위협적인 힘과 동시에 두려움을 시사한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자 시작된 것이 과연 인간을 완전하게 했는가, 또한 그로 인해 그 누가 자유로워졌는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고민될 의문점을 남긴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의 의미가 있다. 


극의 결말에 다다를 때엔 새로운 전개를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이어진다. 이는 영화 <마녀> 속 이야기는 이대로 막을 내리지 않고서 속편으로 이어질 거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비록 속편이 예정된 채로 제작된 것처럼 무엇 하나 속 시원한 설명을 내어주지 않고 있는 것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것이 한 편으로는 다음 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후일담



영화 <마녀>는 전체 관람 전에 푸티지 시사 상영을 먼저 다녀오게 되었다. 가끔 영화 홍보사에서 리뷰 작성을 위한 초대 메일이 오곤 한다. 흥미 있는 영화가 아닐 경우에는 고사하는데 이번 영화는 제목에 이끌려서 찾아보게 되었다. 네이버 영화 정보를 확인하고서는 정말 놀랐다.


영화 <마녀> 속 구자윤 역을 연기한 신예 김다미 배우가 바로 내 학교 후배이자 이전에 함께 사진 촬영을 한 적이 있는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교를 마치며 오래 끊어진 연락을 다시 잇게 됐다. 연기를 전공하는 아이였고 순하고 착한 친구였기에 항상 잘 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큰 영화에 주연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의 시간들을 보냈을지는 미처 알 수 없지만 진심으로 축복하고 축하했다.


정말 열심히 촬영했다던 다미. 푸티지 상영회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하고 응원도 해주고 돌아왔다. (배우 조민수 님과는 전날 타 영화제 기자로서 인터뷰를 했기에 다음날 재회해서 다시 반갑게 인사도 드리고. 이번 영화 <마녀>는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밝고 예쁜 아이. 이번 주 시사 상영을 통해서 이렇게나 연기를 잘하는 친구인지 몰랐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놀랐다. 처음은 다시 오지 않으니 즐기라고 했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의 시선과 이야기들을 모두 안아줄 수 있는 배우가 되기를.









가랑비메이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2015),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2017),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2018) 세 권의 책을 펴냈다.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는다. 언제나 그럴듯한 이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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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imyourgarang@naver.com (기타 제안)

인스타그램 @sentenceandscenes / @garangbimaker / @scenesofgarangbi

블로그 https://imyourgarang.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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