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 회색과 먹빛의 새 떼들이 흑갈색 우포의 적막 안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세 떼들은 겨울 한철을 기거하고 떠난다. 우포의 물은 중년의 외투 같이 오래 되었다. 내가 우포에 도착한 시각은 해질녘. 새 떼들은 하나 같이 태양을 향해 거룩하고 경건한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태양을 향해 가슴 열어놓고, 장엄한 종교행사를 치르듯 한결 같이 단정한 몸가짐이라 우포의 고요가 한층 더 깊다. 우포는 거대한 사원. 이 새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낮에는 태양을 바라보고 날갯짓 했고, 밤에는 별자리를 보고 날갯짓했고, 흐린 날에는 머릿속 철분을 이용해 나침반으로 사용했다. 또 어떤 새들은 지난 해 그들이 몸담았던 물의 소리와 감촉을 기억하며 찾아왔다. 이곳에서 새들은 동안거하듯 흠집 없는 삶을 살다 떠날 것이다.
돌연, 몇 마리 새들 물을 차고 우포를 떠난다. 미련 없다는 듯이 산을 넘는다. 왠지 시시껄렁한 웃음 같은 날갯짓 소리를 내며 새들은 노을진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선홍빛 노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검은 발자국 같다. 나는 묻는다. 어디로 가느냐고. 나도 머릿속 철분으로 남이나 북, 어디든 방향 잡을 수 있다면, 내게도 물의 기억이 있다면, 내게도 별자리를 바라보고 가 닿을 오래된 사원이 있다면…, 선홍빛 노을 속으로 점점이 걸어 들어간 발자국들 끝내 빛 속으로 사라지고, 저 발자국들 꾹꾹 밟으며 따라 잡을 수 있다면. 발 아래 자갈길을 밟을 때마다 우포의 적막이 잘근잘근 고통스럽게 씹혀진다. 뒤꿈치를 들고 이 사원을 빠져 나가자. (Layers Of Light / Nils Landgren, Esbjorn Svensson)
재즈에도 다양한 형식내용이 있다. 재즈 용어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스윙'과 'B-bob'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본다.
'스윙'은 1920년부터 20년 정도 지속되었다. 이 시기를 스윙시대, 또는 빅밴드 시기라고 한다. 이 시대 음악가로는 듀크 앨링턴과 배니 굿맨이 대표적인 음악가다. 일정하고 안정된 비트의 연속은 '스윙감'의 핵심이다. 지속적인 흥겨움의 연속이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을 때를 '스윙'이라 한다.
영화 <버드>로 잘 알려진 챨리 파커는 'B-bob' 재즈의 대표적인 음악가다. 반음계주의의 태동이 시작되는 시대다. 장, 단조의 7음계의 선율과 화성에서 벗어나, 반음계의 12개 음을 모두 사용하는 방식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또한 2명의 연주가가 동시에 연주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챨리 파커의 색소폰은 절규에 가까운 감정이입과 직언을 내뿜는 듯한 연주를 했으며, 자기 내부의 이야기를 색소폰을 통해 발화하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이 시기의 표현양식은 스윙시대의 진부성에서 벗어난다. 집단적인 연주에서 소규모 캄보(3-6의 연주자 모임)스타일의 연주가 이루어진다. 템포는 스윙보다 빠르고, 오리지널 곡의 키로부터 더 많은 전환을 하여 즉응연주에 있어 보다 복잡해지는 양식을 취한다. 재즈의 수명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힘은 바로 Bob적 양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청자를 위한 음악이기에 앞서 연주자 자신의 내적 표현이 우선되는 시기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듣기 거북한 미학'의 시작이다. 이 시기의 음악가로는 실로 대단히 많다. 챨리 파커, 덱스트 고든, 오스카 페트슨.......(Ballads/Dexter Gordon)
구멍가게 앞에는 조그만 게임기 두 대가 놓여 있다. 한 대의 게임기 앞에는 목욕탕용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아이가 게임에 빠져 있다. 오른손은 스틱을 움켜잡고 상하좌우로 흔들어대고, 왼손은 빨간 버튼을 탁탁탁 치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좁장한 어깨의 상체는 순간순간 어떤 격력한 에너지를 토해내듯 움칫하기까지 한다. 바람 불어 마른 먼지 일고 비닐봉지가 회오리친 바람에 휘둘린다. 모래먼지가 가게 앞 어묵 국물 위로 흩날리는, 대구에서 변두리이 매천동 소래실 이 후미진 골목, 아이는 잔뜩 흥에 돋아 모니터 속에 머리를 집어넣을 듯한 뒷모습으로 화면 속 근육질의 무사에게 자기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주는 스틱과 버튼을 움직이고 두드린다. 하지만 뭔가 뜻대로 화면 속 적을 무찔러내지 못한 분개인지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마지막 버튼을 '탁' 치더니 다시, 감색 점퍼 주머니 속에서 백동전을 꺼내 오락기 구멍 속으로 찔러 넣고는 버튼을 '탁' 친다.
해는 기울어 어둑한 기운이 골목에 번지는 때, 학원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시작한 오락은 그렇게 한참 진행되고 마지막 동전이 떨어지고 나서야 아이는 일어선다. 오늘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이 시각쯤이면 아이는 또 이 자리에 앉아 모니터 속에 머리를 집어 넣은 뒷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집 나와 어디 갈 곳 없어 보이는 뒷모습으로. ( Groovy/ Red Garland )
나는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보는가? 나는 예상하지 않고 하는 여행 동안에 주문과 마법의 이미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장소로 이끄는 그 무엇의 이미지들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음악의 의미는 주문과 정말 다르지 않으며, 찾고자하면 찾을 수 없는 그 어떤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왜냐하면 음악은 항상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빠른 움직임 속에 이탈로 칼비노가 직관적으로 이해했던 '전이(轉移) 없는 순간적 추론'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항상 나에게 즉흥성의 예술을 잘 묘사해주는 것 같다.( 「지중해의 매혹」앨범 속 Paolo Damiani의 텍스트 일부, 번역: 김창민)
프랑스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의 「지중해의 매혹」은 오케스트라 형식을 취한 재즈 연주다. 재즈이 표현양식에 있어 무한한 실험성과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우리 국악의 양식도 군데군데 느껴지고, 집단적 광기와 춤판, 고대 어느 부족의 축제 같은 재미가 있다. (Charmediterraneen/ Orchestre National de Jazz)
카톨릭 피부병원 화단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나는 병원 밖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간을 잘못 맞춰 오후 진료 시간이 되려면 족히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기에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나는 정원에 건강한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휴가 나온 군인처럼 푸르고 싱싱했다.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죽어 저런 나무 밑에 묻힌다면, 지금 저 햇살 받는 나무의 기분을, 가을나무의 기쁜 몸을 한번 느껴 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머니가 "그 나무 한번 잘 생겼다." 하신다. 눈 앞 가을나무의 건강한 어깨에 반해, 손마저 올려놓기가 미안스러울 정도로 힘이 약해진 어머니. 모처럼 가을나들이 나선 기분이 드시는지 "짬뽕 한 그릇 할래" 하시는 말씀 듣고, 그래 나도 모처럼 가을소풍 나온 기분으로 "좋지" 라고 응답하였다. 머잖아 내 어머니 이렇게 푸른 가을 햇살 모두 쏟아지고 난 밤, 야픔을 틈타 흰 비단 옷 입고 밤하늘 휘휘 날개 젓는 새처럼 나도 무르게 세상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어머니 옆을 따라 걷는다.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갑지만 중국집이 좀 먼데 있기 바라면서. 가을 햇살이 어머니 등에 스민 통증을 씻어내길 바라면서. (Citede la Musique/ Dino Saluzzi)
재즈를 들을 때 자주 만나게 되는 제목 중에 하나가 바로 Cycles.
이 제목에 걸맞는 시가 있어 한번 읽어 본다. 앨범 표지 그림에는 강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있다.(Cycles/David Darling)
내 육체는, 내 마음은
풀잎과 구름과 염소와 당나귀와 바람과 꽃과 안개와 소의 뿔과…
이런 것들의 살로 된 게 아닐지
그렇지 않고서야 내 마음이 어찌 이토록
그들을 아는 체 한단 말인가
새벽 거리엔 어제의 슬픔 가득 떠올라 안개 자욱하다
내 마음에는 안개 자욱히 일어난다
그들의 살들이 날 자욱히 채워오듯
내 죽으면 내 살들이 그들의 얼마쯤을 채우리라
웅크리다 돌이 되어버린 마음들,
안에서 바깥으로, 길을 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오늘 아침,
강을 헤치고 번쩍거리며 떠오른다
-류시원, <희미한 다리>-
조 마네리 사중주의 음악을 들으면 그들 상호간의 소통은 다분히 분절된 음들의 교환으로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모르스 부호로 소통하는 듯하다. 분절되고 건조해서 어디 한 곳 여리거나 물렁한 구석이 없다. 나무인형이 걸어가는 형국이다. 나무인형의 뼈마디에서 딱딱거리는 마찰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각자 따로 노는 음들끼리의 친화력을 귀에서 연결시켜 듣기가 관건이며 난코스다. 이 음반은 소위 전위재즈에 속한다. 전위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전위가 맹목적인 전위가 아니라, 전위 안에 무엇이 내재되어 있는지 이들 음악에서 한번 맛보길 권하고 싶다. 조 마네리의 색소폰에서 청자는 재즈의 무한한 안과 밖을 만날 수 있다. 재즈의 전통적 흐름과 탈 전통적 흐름을 아우르는 안과 밖. 어느 시점에서는 날카로운 소리의 선들이 난잡스런 장난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낯선 음악 세계의 미학이라 할까. 음악에 있어, 특히 재즈에 있어 직관전 사유는 가장 어려우면서 그 맛에 젖어들면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갖게 한다. 이 직관적 사유의 상태에 빨려 들어갈 때가 진저 재즈의 세계이며, 내가 음악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열망이 이는 때이기도 하다. (Joe Maneri Quartet/ Tenderly)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있다. 집에 있어 봐야 마음만 괜히 심란해서 가방 들고 찾아오는 보건대 도서관 열람실. 취직에 목매단 청년들이 가득하다. 바깥은 일요일. 푸른 쓰레기통에는 자판기 종이컵이 가득하고,휴게실엔 여학생들의 수다가 들끓는다. 바깥은 일요일인데. 겨울 강은 녹아 새 떼들 발목까지 담그고 휴식하는 일요일인데. 귀에서 이어폰을 빼면 종잇장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잔기침의 연속, 황급히 휴대폰을 들고 문 밖으로 퉁겨져 나가는 몸들, 일요일인데. 이어폰에서는 북한을 겨냥해 '악의 축'이라고 발언한 부시 대통령에게 '무지의 축'이라고 풍자한 우울한 일렉트로 재즈의 트럼펫 소리. 일요일에 애인은 더 바쁘고, 청년들은 우울한 뒷모습으로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푸른 바다를 향해 등을 보인 뒷모습의 앨범 재킷과 함께 음악 속에는 911테러 당시의 긴박한 방송 멘트와 강박적이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렉트로 비트의 연속. 아, 바깥이 없다. 희뿌연 먼지의 실내. 온기 낮은 트럼펫 소리. 휴대폰으로 어딘가 문자를 전송하는 매니큐어 칠한 엄지손가락. 화장실 앞 청년들의 입에서는 희미한 트럼펫 소리 같은 담배연기 뿜어져 나온다. 아, 바깥이 없다. (np3/ Nils Petter Molvaer)
'하드 밥'이란 딱딱한 밥이란 의미다. '메인스트림', 혹은 '포스트 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밥 시대보다는 즉응적 표현에 있어 단조로운 선율을 유지하지만 음색이 침울하고 어둡고 무겁다. 또한 거칠고 냉철하다. 전체적으로 대중적인 요소가 사라진다. 재즈적 의미에서 내재성의 심화이면서 동시에 강화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의 강도에서 Bob 보다 강렬하게 뻗어나가는 소리의 직선이 특징이며, 뜨거운 얼음의 맛이 난다. 복잡한 구조에서 탈피해서, 간결하고 투명한 느낌의 지속과 스피디한 맛으로 현대성과 도시적 정서가 배여 있다. 마일즈 데이비스, 호레이스 실버, 케논볼 애덜리, 존 콜트레인이 대표적인 음악가다. (E. S. P/ Mils Davis)
눈이 아름다운 선생이 계신다. 문을 열면 선생께서는 보푸라기 가득 일어난 바지를 입고선 힘없이 등받이 의자에 푹 잠겨 계신다. 언제나 그렇듯, 밤새워 무언가에 골몰한 탈진한 모습이다. 몸의 어디 한 곳 살이 붙어 있을 겨를이 없다. 팔걸이 위에 올려진 두 팔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몇 마디 안부를 묻기도 잠시 선생께서는 컴퓨터에서 프린트 물을 뽑아 보이시며, 당신께서 하시는 공부의 일부를 가르쳐 주신다. 공부라고 해서 거창한 서구문학이론 따위가 아니라, 선생께서 보신 비디오의 내용에서 문학과 관련된 대사들을 정리한 것 등이다. 선생을 찾는 어느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신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나는 선생의 뒤를 잠시 따라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길에서 나는 울음이 가득한 선생의 뒷모습을 보았다. 생이 통째 시에 매달려 있는 탓에 발화되는 후광 같은 것이었고, 시 때문에 지속되는 어떤 괴로움 같은 것이었다. 그 울음은 선생께서 죽을 때까지 떠나질 않을 울음이었다. 나 같은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얻을 수 없는 울음.
에버하르트 베버의 베이스를 들으며 생각한다. 어떤 과녁을 응시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걷고 있는 눈발 날리던 날의 광인을, 칠이 벗겨진 채 악기점 유리문 밖에 힘없이 기대선 첼로의 등을. (Pendulum/ Eberhard We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