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발톱은 숨어 있다. 혓바닥은 잔가시 돋은 나뭇잎처럼 까칠하다. 녀석의 몸은 느리고 부드럽고 요부스럽고 나른하며, 예민한 감각이 봄기운처럼 스며 있다. 사시사철 녀석은 느리거나, 갑작스럽거나, 양지 볕에 엎드려 몽상에 잠겨 있다. 녀석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민감한 감각을 생의 무기로 삼고 있다. 먹이를 찾아 쓰레기봉투를 뜯어 헤치는 고양이일지라도 하나 같이 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고양이는 아슬아슬하다. 느닷없이 자동차 밑으로 뛰어든다. 아스팔트 위에는 고양이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어떤 녀석은 자동차가 달려오는 속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걸은 탓에 차에 치였고, 어떤 녀석은 자동차 불빛에 자극 받은 성질 때문에 미친 듯 달려든 탓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몽크는 강이 바라보이는 집에 수 십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몽크뿐만 아니라, 재즈 연주가들 중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유는 고양이 몸 전체의 어떤 감각과 변덕스러움, 민감한 동작들이 재즈 연주가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즉흥연주에 있어 영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연주가들의 연주 모습이나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고양이의 모습과 닮은 곳이 많고, 재즈 피아노 연주곡을 몰입하여 듣다보면 고양이의 몸에 서린 민감한 감각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Monks dream/Thelonious Monk Quartet)
담벼락에 붙어 서 있는 저 해바라기 왜 저리도 추워 보이나. 노란 해바라기 왜 저리 추워 보이나. 혓바닥을 늘어뜨린 개가 헉헉거리며 지나가는 여름 한낮. 담벽에 붙어 서 있는 해바라기 왜 저리 추워 보이나. 점심 식사 후 담벽에 기대서서 족구하는 사내들의 몸동작 보며 서 있는 여공들의 하얀 얼굴처럼, 지금 담벼락에 붙은 해바라기는 그렇게 달달 떨며 여름날 자기에게로 쏟아지는 햇살 모두 받아먹고 도 도무지 체온이 오르지 않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어쩌자고 이곳에 태어난 거지’라고 낙담하듯 서 있는 해바라기. 그러나 그 처녀들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왜 그리도 달콤한지. 왜 그리도 가슴 아린지. 나도 어느 길모퉁이 담벽에 그렇게 서서 한참을 쓸쓸한 어깨로 서성거렸던 기억 있는가. 그런 기억 탓에, 내가 여름 대낮에 고개 숙인 해바라기의 옆을 떠나지 못하는 것인가. (Gosts/ Dave Liebman, Jean-Paul Cela, Wolfgang Reisinger)
유로낚시터의 물은 갇혀 있다. 폭우가 내려 범람하지 않는 한 낚시터의 물은 둑에 막혀 꿈쩍 할 수 없다. 물을 가운데 두고 수많은 낚시꾼들이 물을 둘러싸고 있다. 춘삼월 햇살 받고 있는 물에게 낚싯대를 찔러넣고 있다. 바깥에서 길러진 물고기들이 물 속으로 풀어진다. 이곳의 물은 물고기를 키울 수 없다. 이곳에 풀어진 물고기들은 살이 찌고, 느리고, 탐욕스럽게 길러졌다. 낚시바늘에 달린 미끼를 보면 식욕에 상관없이 물도록 길러졌다. 바깥에서 길러진 물고기들은 커다란 덩치에 비해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멕아리 없이 물밖으로 달려나온다. 운명적으로 이곳의 물과 물고기들은 관리되고 양식된다.
춘삼월 햇살 맑은 날. 겨우내 무거워진 몸 햇살에 내맡기고 낮잠자기 좋은 날. 둑방 위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묵은 피로 풀어지는 날. 유료낚시터의 사람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물의 수면도 긴장으로 인해 당겨진 천처럼 팽팽하다. 물은 흘러야 하거늘, 모난 돌에 찢어지면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하거늘, 물고기들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모험을 하고,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는 기고 긴 유랑의 생을 살아야 하거늘, 사방이 막힌 물은 늙은 창부의 자궁처럼 산 그림자를 껴안고 시커멓게 벌어져 있고, 낚싯대들 그 속을 휘젓고 있다. (ORBIT/ Tore Brunborg)
커트 로젠윈클의 데뷔 음반을 듣는다. 그의 첫 앨범은 클럽공연이다. 그러나 마치 빈 의자들 앞에서 연주하는 듯하다. 관객 속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뿐더러 박수 소리조차 없다. 음반 소개서에 클럽공연 앨범이라는 정보가 없다면, 그냥 레코딩 작업실에서 녹음 한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의 첫 앨범은 이후에 다른 앨범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바흐의 무한 변주 같은 흐름이 느껴진다. 그의 기타의 맛은 장난스러우면서도 다분히 내면을 향해 있다. 베이스와 드럼의 정갈한 인터플레이와 함께 흐느끼는 듯한 그의 기타는 텅 빈 의자들에게 무어라 주절주절 이야기 건네는 듯하며, 서해바다 여린내기파도 같은 비밥의 어법에서 재즈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East Cast Love Affair/ Kurt Rosenwinkel)
프리재즈는 1960년대 오넷 콜맨, 세실 테일러에 의해 시작했다. 미리 정해진 코드 진행이나 템포에 얽매이지 않는 즉흥연주를 프리재즈라고 보면 된다. 프리재즈는 기존의 관습적인 재즈 연주 방식을 거부했다. 멜로디, 박자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임프로비제이싱. 프리재즈 연주에 있어 코드 진행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피아노가 다소 제약을 받기도 했다. 오넷 콜맨의 색소폰을 들어보면 최고의 음역인 알티시모에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이 날카로운 소리를 듣게 된다. 다급하고, 급진적이며, 비명을 지르는 듯하며, 거칠고, 쉰 듯한 톤.
프리재즈의 특징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악기들의 연주방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동시다발적으로 연주되는 집단 연주 같다. 또한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의 민속음악들이 재즈와 결합하게 되는 실험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오넷 콜맨, 돈 체리, 폴 블레이 등이다. ( Shape Of Jazz To Com/ Ornette Coleman)
소낙비 퍼붓는 날 큰 물 흐르는 냇가, 잎 넓은 나무 아래 차를 세워두고 잠에 빠져든다. 자동차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잠을 청한다. 뻘물 흘러가는 광경 오랫동안 바라보다 잠을 청한다. 퇴행적으로 몸을 웅크린 쓸쓸한 동물처럼 빗방울 소리가 만들어주는 마음의 고요에 귀 기울이며 잠을 잔다. 잠든 동안 내 몸에 체적 된 피곤한 기운들이 비릿한 이파리 몇 장으로 피었다 사라지거나, 내 꿈의 일부가 나비로 환생해 날아가는 잠을 잔다. 조금만 눈 붙이고 일어나려던 것이 얼마나 잤는가. 얼굴엔 개기름이 끼어 있고, 비 그친 뒤 쏟아지는 햇살 받는 나무들 빗방울 털어내는 키 큰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먼데를 바라보고, 내 몸에도 자고 일어난 아이 같은 쓸쓸함이 베어 있어, 나는 ‘허방’ 같이 뚫린 마음의 공허를 껴안고 한동안 물길 따라 걸어간다. 휘청휘청 잠 덜 깬 걸음으로.( Romantic Rhapsody/ Richie Beirach)
술 취한 사내가 자고 있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술 취한 사내는 그야말로 쿨쿨 자고 있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사내는 신작로 옆에서 자고 있다. 나도 술에 취하고 싶다. 술 취한 사내는 모내기가 끝난 무논 곁에서 자고 있다. 나도 그처럼 길바닥에 엎어져 잠들고 싶다. 술 취한 사내의 숨소리 곁으로 나비가 날아간다. 나는 술에 취할 용기가 없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토사물 게워내고 하늘 보고 펑펑 크게 울어 볼 것이다. 술기운으로 길을 걷고, 술기운으로 달을 보고, 술기운으로 거리에서 욕하고, 술기운으로 나무를 껴안을 것이다. 순전히 술기운으로 꼬꾸라져 색소폰처럼, 거리에서 웅크리고 잘 것이다. 해가 빠지도록 거리에 꼬꾸라진 채 잠자고 일어나면 세상의 것들이 어떻게 보일까.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언젠가 내가 만취한 몸으로 거리에 쓰러져 토사물 곁에 누웠다 잠 깰 때, 거리의 고양이가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쓸쓸한 고양이 눈과 벌겋게 충혈된 내 눈이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 Detail/ Marc Ducret)
여성 재즈 피아니스트 마릴린 크리스펠의 음반 『Amaryllis』에서 소개된 크리스펠 자신의 글이다.
게리와 폴 그리고 나는 이번에 우리들 각자의 곡으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이 중에 일부가 이번 앨범에 녹음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연주는 만프레드(ecm 레이블의 장업자 겸 프로듀서)가 약간 느리면서도 자유로운 곡들을 연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으로 뜻밖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결과로 나오게 된 것이 이 앨범에 실린 몇 곡의 가장 아름다운 곡들이다. Amaryllis, Voice, M․E, Avatar 같은 곡들은 ‘작곡’된 것이 아니라, 마치 이러한 곡들이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들린다. 깊은 공감과 보기 드문 세밀함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주 ‘내밀한 공간’이다. 어쨌든 이번 곡들이 보여주는 바는 자유가 즉흥 음악이라는 한 특정한 스타일만을 위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번 음악은 과거의 확장이자 새로운 시작이다.(Ballade/ Marilys Crispell)
빈센트 밀레이의 글쓰기 작업실
캐들린에게
-빈센트 밀레이
아직도 시인은 자고로
휑하고 추운 불모의 다락방에서
굶주리고 떨면서, 꽃과 노래와 그대와
같은 그러한 것들에 맞게 시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자고로 시인의 존재는,
아름다움의 이름에 굴복해야만 한다.
꽃과 그대와 노래가 있는 한 죽지 않을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살 수 있는 동안에는.
(La Pas du Chat Noir/ Anour Bra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