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즈피자

구석에 처박히기

- 구석은 나의 처소이다

by 일뤼미나시옹


구석은 나의 처소이다. 구석에 가면 나는 고양이가 된다. 구석은 더듬더듬 찾아 헤매는 도피처가 아니다. 구석은 당연히 나의 공간이며, 구석은 나를 위해 있는 공간이다. 나는 구석에서 본다. 구석에 가기 위해서는 중앙을 포기해야 한다. 구석을 위해, 전부를 포기해야 한다. 구석을 사랑하려면 중앙을 경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구석이 아름다운 곳이란 걸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은 먼지가 몰려들고, 낱낱의 종잇장과 낙엽이 몰려든다. 구석엔 부서진 가구가 버려지는 곳. 그러나 내게 구석은 안식이며. 혼자 킬킬거리고, 혼자서 상체를 끄덕끄덕 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은 이미 오래 전에 내가 예약해 둔 성소다. 구석에 가면 나는 달이 된다. 달이 되어 나는 둥글고 희미한 잠을 잘 수 있다. 구석은 쓰다. 과일의 썩은 부위다. 하지만 이 구석으로 누군가 찾아오면 나는 구석을 버린다.(Floating/ Ketil Bjornstad/Emar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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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삶의 마지막 해의 일이다. 카프카는 그의 애인 도라와 함께 베를린에서 매일 오후가 되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느 날 어린 계집아이가 울고 있었다. 카프카가 울음의 이유를 묻자. 아이는 인형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러자 즉시 "네 인형은 떠난 거란다."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고 아이가 묻자 "네 인형이 나한테 편지를 써서 보냈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그 편지가 있냐고 묻자, 카프카는 잊어버리고 가지고 오지 않다며, 내일은 꼭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카프카는 곧장 집으로 가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음 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 주었다. 편지 속의 인형은 매일 같이 편지를 써서 제가 하는 일을 모두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카프카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편지를 썼다. 아이에게 인형과 영원한 이별을 맞아들일 시간을 벌기 위해 3주일 동안을 그 일을 계속했다. 마침내 인형은 결혼을 하고, 인형이 오랫동안 사귄 친구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편지를 카프카는 매일 밤 자신의 손으로 편지를 썼다.


이 이야기는 밤을 지샌 겨울 하룻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이야기 한 카프카의 실화다.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삶의 시기에 일어난 에피소드지만, 위대한 작가의 삶과 글쓰기가 얼마나 닮았는지. 한파의 겨울 밤. 외풍이 심해 이불 밖으로 내민 손등이 시린 밤. 카프카의 밤을 지샌 편지 쓰기를 생각하며 베개 위에 머리 누이고 모로 눕는다.(Return To Forever/Chick Corea/E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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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것이란 무엇입니까? 그대의 삶, 욕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고 갈등과 투쟁으로 가득차 있으며, 의미 없고 기쁨도 없는 그 삶이 정상적입니까? 그대의 몸에 대해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그것이 정상적입니까?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은 그 소유자에 의해 거의 인식되지도 않은 채 살아갑니다. 어쩌다 가끔씩 아픔이나 괴로움을 느낄 때만 그것들은 (그 소유자에게) 주의를 기울여 주고 깊이 살펴봐 달라고 요청합니다. 왜 전체적인 개인적 삶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그것을 자각의 초점 안으로 끌고 올 필요 없이, 잘 그리고 충분히 반응하면서 제대로 움직여 나갈 수 있습니다. 자기절제가 제2의 천성이 되면 자각이 그 초점을 더 깊은 존재와 행위의 수준으로 옮겨갑니다.―「I AM THAT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와의 대담」 중에서(Alone Again/임달균 Quintet/Tak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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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지나갔다. 한파 몰아치는 날이다. 윤기 잃은 털은 헝클어져 곤두섰고,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눈에는 공포와 절망의 빛이 서려있다. 어디서 누가 버린 것인가. 벌써 이 동네를 몇 번이나 돌았는가. 한 때 주인으로부터 사랑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인가. 사랑 받은 기억의 힘으로 이 겨울을 버티는 것인가. 이 겨울, 버려진 개들을 생각하니, 버려진 개들의 동사를 생각하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들을 위해 누군가는 울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개는 창밖에 던져진다. 던져진 개의 사체가 사차선 도로 위에 붉은 내장을 드러낸 채 조금씩 조금씩 바퀴에 으깨어진다. 시골의 빈 들길에 버려진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저 도시 사람들이 와서 버리고 간 개들이다. 차라지 도심에 버려 두면 쓰레기라도 뒤지고 살 것을. 이 빈 시골에서 어떻게 살라고. 차라리 잡아 먹어버리지. 그러면 제 몸의 일부로라도 남아 있기라도 할 것을. 어쩌자고 이 추운 시골바닥에 저 어린것들을...개들 버린 이들에게 불행이 있기를..그래,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좀 울어야 했다. 펑펑 울어주진 못하지만 조금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울음이 그치고 나면 내 몸에 침묵이 찾아오고, 이 침묵은 기력이 쇠한 개의 몸이 겨울 논바닥에 고꾸라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지금 버려진 개들이여, 이 겨울을 이겨내기를. 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와서. 양지에서 따뜻한 잠을 자기를. 얼어붙은 몸이 녹는 잠을 자고, 그렇게 잠을 자면서 죽음을 맞기를. 전신이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기를.(TRIO/Simple Acoustic Trio/E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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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밥 먹을 때마다. 내 귀는 자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가 쏠린다. 이런 버릇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버릇이라 쉬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오늘도 두 여자 마주 보고 앉아 밥 먹으면서 그 자리에 없는 한 여자를 ‘씹고’ 있다. 밥 먹으면서 누군가 욕하는 거. 나도 아주 많이 했다. 왜 그럴까. 밥 먹으면 누군가를 욕하는 거. 등뒤의 두 여자도 한 여자를 무참히 짓밟는다. 한 여자가 씹고 나면 또 한 여자 맞장구로 되씹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대체로 밥 먹을 때, 함께 하지 않은 누군가를 분명히 욕하면서 밥 먹는다. 옷 입은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일상사까지.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를 밥 먹으면서 '씹는다'. 나는 등뒤의 두 여자가 말하는 내용이 미운 것이 아니라. 왜 몸에 밥을 떠 넣으면서 욕하는가. 왜 거룩한 식사시간에. 왜 우리는 욕하며 밥 먹는가. 이 시간 누군가가 나를 밥 먹으면서 '씹고' 있다는 생각해 본다.(Jazz Giant/Bud Powell/V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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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한물 갔다. 한량의 시절은 가고 없다. 목욕탕 구석에서 때를 밀고 있는 그의 등에는 나비 문신만이 그의 과거 전력을 보여준다. 화려했던 호기의 시절은 어디로 가고 등의 문신은 쭈글쭈글한 피부 위에서 기형적으로 일그러진다. 몸은 휘어졌고 팔의 움직임도 굼뜨다. 야윈 팔의 근력은 등의 때를 밀기도 힘겹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눈에는 과거의 노기와 혈기가 숨어 있다. 무엇을 바라보던 그의 눈은 항상 그렇게 보아왔던 터. 그러나 등의 나비 문신은 그를 어디로 데리고 왔는가.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제 성기에 비누칠을 하고 때 수건으로 문지르며 상체를 수그릴 때, 나비 문신은 순간 얼마나 화려하게 날개를 펴는지. 그 날개는 이제 그만 그의 몸에서 떠나려는 기세다. 화려했던 호시절은 갔으니, 이제 나비 문신도 그의 몸을 떠날 기세. 하지만 늙은 몸은 완강히 나비의 문신을 놓아주질 않는다. 자리를 뜨고 일어나 휘청휘청 걸어갈 때, 나비 문신은 주름진 그의 등에 붙어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A Blown' Session/Johnny Griffin/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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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브레히트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Jazz Concerts 2003/ Lars Moller/STUNT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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