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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4. 2020

풀빛 여관에서




 풀빛 여관에서 / 그림모든


 먼 곳에서 당신이 걸어오는 동안, 당신의 옷은 관념적으로 해지고, 신발도 닳고 닳아 발가락과 뒤꿈치에  굳은살이 박이고, 그렇게 걸어오는 동안 정신은 몇 번이나 흐리마리 해지고, 얼굴은 그을리고 거칠어져 진흙 빛이 되었고, 머릿속에는 날짜의 관념도 거리의 관념도 흐려지는 즈음, 심경에 경전 같은 것이 들어찼는지  문 앞에서 문을 두드려놓고, 혼잣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문을 열어 보잘것없는 실내로 당신을 들이고 물과 딱딱한 빵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연거푸 물을 몇 잔 마시고 숨을 한숨 돌린 후 빵을 씹을 때, 나는 당신의 추레한 몰골과 진흙 빛 얼굴을 통해 당신 심경의 이야기를 텔레파시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마지막 물 잔의 물을 비우고 입술을 닦고 일어나며 내게 악수를 청할 때, 나도 내 심경의 이야기를 오래되고 낡은 신발의 사연처럼 텔레파시로 들려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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