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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Nov 17. 2020

움막의 흰 연기

   


 움막의 흰 연기 / 그림모든


   떡갈나무들이 섬섬히 박혀 있는 중리 마을의 야산 아래 농막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들판 사이 시멘트 포장길의  끝자락에 닿아 있는 움막이었다. 나무 연기가 채워진 농막 안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깡마른 얼굴의 중년의 남자가 블루스 락을  커다랗게 틀어 놓고 창밖으로 멀거니 들판을 보고 서 있었다. 멀거니 보는 그 시야가 나는 궁금했다. 나무 타는 냄새와 흰 연기 그리고 움막과  빈 들판으로 번져가는 음악이 잘 어울렸다. 내심 움막의 내부가 궁금했지만 침범하지 않았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산 아래 움막 짓고 음악 들으면서 마른 들판을 보는 심경은 무엇인가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이십오 년 동안 직장 생활하다가 넌덜머리가 나서 다 때려치우고 이리고 왔다 했다. 그저 주구장창 일만 하다 그만 존재의 물음이라는 그물망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 대한 물음 다음에 그는 이곳을 택한 것이었다. 들판은 휑했다. 추수가 끝났고 겨울의 메마른 바람이 휩쓸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할 때는 실존의 물음이 생기는 법이다. 그의 심경을 말해주듯 머릿결은 푸석했고 관리가 되지 않은 장발 상태였다. 얼굴은 햇살에 그을려 까무잡잡했다. 눈자위만 웅숭깊었고, 회한이 가득했다. 진절머리를 이겨냈는지, 진절머리에서 쫓겨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릿결은 헝클어져 있었다. 머릿결 단장도 진절머리에 속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넌덜머리의 삶을 끝낸 것도 아니었다. 말의 어투 안에 강한 어조들이 여전히 그가 아직 그의 지난한 삶의 괴로움을 등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움막은 연기는 다소 지나치다 싶게 뿜어졌다. 떡갈나무의 수분이 덜 빠진 상태였다. 나는 빈 들판으로 손을 뻗치며 혼자 있으면서 음악을 왜 이리 크게 틀어놓았나 물었다. 그가 답했다. 여럿이 같이 들으라고..., 그가 ‘여럿이 같이’라고 했지만 움막 근처엔 인기척은  없었고 지인도 없었고 개 한미 지나가지 않았다. 다만 움막을 덮고 있는 겨울나무 그늘 뿐. 다만 철망에 갇힌 토종닭 몇 마리와 텅 빈 겨울 들판 뿐.  음악을 멀리 퍼트리는 건 넌덜머리났던 지난날들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라고 할까. 회포라 할까. 같이 들을 사람을 찾기라도 한다면 음악 이야기로, 흰 연기에 대한 이야기로, 빈 들판에 대한 이야기로도 한 겨울을 날 수 있겠지만. 굳이 다 부정할 수 없고 굳이 다 외면할 수 없기에. 흰 연기와 블루스 락으로 빈 들판을 채우며 저만의 내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려니 했다.  누구에게나 한 때의 위기 혹은 흔들림의 주기가 찾아오는 법. 실존의 물음이 짧게 왔다가 가는 이도 있고 나 같은 이는 평생을 사춘기 앓듯 앓는 이도 있는 터. 빈들에 흰 연기 깔리고 블루스 락으로 다스려보려는 마음.  흰머리에 흰 연기 피우는 움막살이가 그리 평온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바. 나는 나대로의 움막에 흰 연기 피는 것 다시 한 번 그윽이 감상하려 자리를 멀리 떠나서 본다. 존재의 물음에 답이라고 됐을라나, 흰 연기의 피우는 장작 난로의 열기와 겨울 창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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