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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23. 2020

흘러온 흘림 흘러갈 흐림

 



흘러온 흐림 흘러갈 흐림 / 그림모든



  이 풍경이 종교라면 집 근처를 떠도는 길 잃은 풍경이라면 어느 소녀의 창에서 내던져진 풍경이라면 쇠백로 떼 이동에 묻어온 풍경이라면 아파트 담벼락에 버려진 거울 속에 살고 있는 풍경이라면 마분지 상자 물에 젖은 것처럼 겹겹이 쌓인 회색 속에 숨어 있는 초록 곰팡이 같은 거라면 오늘 태어나서 오늘 사라지는 구름의 일생이라면  백발노인 둘이서 술친구가 되는 대리석 계단의 냉기라면 버스에 실려 흘러간 너의 얼굴을 살짝 가렸던 스웨터의 소맷자락이라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주고 간 수수께끼라면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씨를 뿌리는 채마밭이라면 담 너머에 있으나 넘어오지 않는 풍경이라면 유통기한이 다 된 흘러갈 풍경이라면 세탁소 처마 아래 매달린 물 빠진 청바지 같이 주인이 없는 풍경이라면 돌아온 풍경이 흙바람벽 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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