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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Sep 05. 2020

틱낫한

* 틱낫한은 구름과 달팽이와 무거운 기계 부속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다리이다.


* 내가 매즈리츠의 랍비를 만나러 간 것은 그에게서 율법을 배우려 함이 아니고, 그가 신발끈을 매는 것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 나는 미소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민들레가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니.


* 그대 자신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눈을 갖고 있으며, 그대의 얼굴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이 먼 곳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얼굴 씻는 행위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 마음이 평화는 지금, 여기 있다. 우리는 단지 그것과 만나기만 하면 된다.


* 기적은 땅 위를 걷는 것이다. 


* 우리는 이미 도착했다.


* 그대가 '매화 마을'에 오는 목적은 그대 안의 고통받는 아이를 껴안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다. 그대 안에 있는 굶주린 영혼, 소란스런 원숭이를 껴안기 위함이다.


*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본성과 자기 자신의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 일단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옥수수 낟알 / 닭


* 파도는 역사적 차원이고, 바다는 궁극적 차원이다. 역사적 차원에서는 늘 소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타자와의 비교 경쟁으로 인해 시기와 질투심을 일으킨다.


* 파도는 파도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바다의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 이미 존재하는 것은 태어날 수 없다. 명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이다.


* 시간이 지나면 꽃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꽃은 다만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 조건이 갖춰지면 몸이 나타난다. 그러면 우리는 몸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는 몸을 인식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절대세계란 곧 모든 관념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 나는 매화 마을을 느낄 때, 유럽과 아시아 모두를 느낀다.


* 깊은 자각 속에서 어떤 것을 만날 때 그대는 곧 모든 것과 만나게 된다.


* 이곳에 있는 흙을 만질 때, 그대는 저곳에 있는 흙까지도 만진다. 지금 이 순간을 만날 때 그대는 과거와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 시간을 만날 때 그대는 공간을 만나는 것이다. 이른 봄 레몬 나무를 만질 때, 그대는 서너 달 뒤에 나무에 달릴 레몬을 만지는 것이다.


* 우리는 꽃과 조약돌, 새와 구르는 천둥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


* 자신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흡을 하는 것이다.


* 그대는 무서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그것을 끄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 깨어 있는 삶을 살 때 그대는 자신의 주인이 된다.


* 그대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디서나 기적을 볼 수 있다.


* 깨어 있음의 빛 속에서 더 많이 주의를 쏟고,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할 때, 그대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더욱 사랑스런 존재가 된다.


* 세상의 풍경과 소리들은 그대의 '적'이 아니다. 그대의 적은 잊어버리는 것, 곧 깨어 있지 않은 마음이다.


*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마음을 관찰하고, 마음이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관찰하는 일이다. 마치 하나의 물건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대의 마음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라.


* 인간의 고통은 실체를 잘못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난다.


* 하나의 씨앗이 우리의 표면의식에 등장할 때, 그것은 언제나 ㄷ욱 강해져서 창고로 돌아간다. 우리의 삶의 질은 잠재의식 속에 있는 씨앗들의 질에 달려 있다.


* 깨어 있는 마음은 그대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대를 보살펴주는 어머니와 같다.


* 꽃을 깊이 바라볼 때, 우리는 꽃이 피어 있도록 도와주는, 꽃 아닌 요소들을 본다. 구름과 대지, 정원사와 흙이 그것들이다.


* 한 송이 꽃을 깊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것이 꽃이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햇빛, 비, 흙, 거름, 공기 그리고 시간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속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그 꼿이 거름이 되어가는 중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꽃이 썩어갈 때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 반대로 거름을 깊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것 역시 꽃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꽃과 거름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꽃과 거름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유기 비료를 쓰는 정원사는 결코 거름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거름을 금잔화와 장미 등 다양한 꽃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꽃과 쓰레기를 함께 본다. 우리는 저마다 분노와 미움, 우울증과 인종차별 같은 많은 종류의 쓰레기를 안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원사가 거름을 꽃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듯이, 우리 또한 분노와 미움, 우울증과 인종차별을 사랑과 이해로 탈바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상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고통의 씨앗들은 언제나 밖으로 나오려 한다. 만인 그것들을 억압한다면 그대의 마음속 흐름이 막힐 것이고, 그 결과 병이 날 것이다. 깨어 있는 수행을 한다면, 그대는 거실 문을 활짝 열고 고통이 들어오게 할 만큼 강해질 수 있다. 깨어 있는 마음이 고통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고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행복해지고 고통을 덜 받는 방법에 대해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 깊이 바라보라. 그러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싫어하는 것과 마주치는 것 속에도 그 자체의 경이로움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존재의 소중한 측면이다. 그것이 없다면 그대는 존재할 수가 없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결코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미소 짓는 것이다.


* 한 남자가 개에게 돌을 던졌다. 심한 고통을 느낀 개는 돌을 향해 짖어댔다. 그 개는 고통의 원인이 돌이 아니라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나는 더 이상 내 감작에 자극을 주는 현상에 무관심하지 않다. 나뭇잎과 아이의 목소리는 모두 우리 삶의 보물이다. 그런 기적들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받기 위해, 나는 깊이 보고 깊이 듣는다.


* 깊이 바라보면 그대는 타인과 자신의 약점 속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공중을 나는 법을 알 때, 그대는 지도가 필요 없다. 그대의 언어는 구름과 바람과 꽃의 언어이다. 만일 그대가 철학적 질문을 받는다면 그대는 시로 대답할 것이다. 아니면 그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침을 먹었나요? 그럼 설거지를 하세요." 


* 우주 안에서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현상은 없다. 나비의 날갯짓에서 별들의 운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우리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 모든 현상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말은 우리가 숲과 강 그리고 오존층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우리는 난초와 달팽이 앞에서 깊이 머리를 숙여야 하고, 제왕나비와 목련나무 앞에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야 한다.


* 참나무 참나무다. 참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참나무가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면, 우리 모두는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다.


*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그대가 거기 있다.


* 죽음은 생명 속에 있다. 왜냐하면 죽음이 없다면 생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환영하라. 덧없음과 자기 아닌 것들을 환영하라. 덧없음과 자기 아닌 것들 덕분에 우리는 시인들이 찬양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갖게 된다.


* 마음이 실체를 나눌 때, 마음이 판단하고 구별할 때 천국은 사라진다.


* 햇빛을 꾸짖지 말라. 맑은 시냇물과 봄날에 지저귀는 작은 새들을 야단치지 말라.


* 고요해지려고 더 많이 노력할 때, 더 많이 불안해진다. 노력 자체가 하나의 억압이다.


* 우리의 느낌과 생각들은 강물처럼 흐른다. 만일 강물의 흐름을 막으려고 노력한다면, 물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물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더 좋다. 그래야 원하면 방향으로 강물을 흐르게 할 수 있다.


* 강물은 흘러가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흐름을 따라가지만 하면 된다. 그리하여 그 강으로 흘러드는 모든 실개천들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 느낌, 감각들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태어나고 지속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때 저항감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 거기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지만,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깨어 있음이라는 햇빛 속을 흘러가고 있다. 그 깨어 있음의 태양이 우리 안에서 언제나 빛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모든 개울물과 모든 조약돌, 강의 모든 굽이들을 환히 비추게 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 명상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세세한 것들을 지켜보고 깨어 있는 것이다. 물론 강은 여전히 거기 있고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주인공임을 안다.


* 사실 진정한 마음과 거짓된 마음은 하나다. 어느 한쪽을 거부하는 것은 다른 한쪽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한쪽을 거부하는 것은 동시에 다른 쪽을 억압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곧 우리의 자아이다. 우리는 그것을 억압할 수 없다. 존경심을 가지고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 우리는 우리의 자아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의 자아에 깨어 있음의 빛을 비춰 그것을 밝음 속에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직접 들여다보는 일이다.


* 깨어 있음의 빛 속에서는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신성해진다. 그 빛 속에는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경계가 없다.


*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날 때, 그것들이 그대의 호흡과 함께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라. 그대가 호흡을 따라가고 있다는 신호로서 평소보다 좀 더 깊이, 좀 더 천천히 숨을 쉬도록 하라.


*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긴장이 되어 호흡을 따라갈 수 없을 때는 호흡을 세도록 하라.


* 내 몸은 단지 진리를 닦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이다. 내 몸은 사원일 뿐만 아니라 성자이다.


* 명상은 마음을 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한다. 사색하거나 해석하지 말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오직 순수하게 주목한다는 뜻이다.


* 명상이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언젠가 그대는 안과 밖이라는 말이 단지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것은 안에 있다. 하나는 여럿이다.


* 사랑받기 위해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붓다는 고통에 대처하고 고통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소 지을 수 있었다.


*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 굶주린 아이, 정치범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까지 명상하라. 그리고 하나의 잎사귀와 이슬방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까지 명상하라.


* 그대가 진정으로 존재할 때, 그대와 말을 하고 있는 상대방도 진정으로 존재한다. 그 순간 삶이 진정으로 존재한다.


* 먼저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하라.


* 그대는 호흡을 통해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대의 호흡은 일종의 수레다. 그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레를 올라탄다.


* 그대의 진정한 집은 그곳에 있다.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 원숭이를 다룰 줄 알고, 달리는 일을 멈출 수만 있다면!


* 명상은 무엇보다 자신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멈춰서 쉬기 위한 수행이다. 그것이 '사마타' 즉 멈춤의 의미이다.


* 모든 발걸음마다 하나의 도착이 되게 하라. 그대는 신의 왕국에서 걷는 것처럼 걷는다. 바로 지금 그대는 신의 왕국을 걷고 있다. 그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 숨을 들이쉬는 수행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그 순간 갑자기 그대에게 돌아갈 집이 생긴다. 그때 그대는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창조할 수 있다. 그대는 도착한 것이다.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기 있다는 뜻이다.


*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대의 마음이 몸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대의 진정한 주소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지금, 여기이다. 그대에게는 어떤 우편번호도 필요 없다. 그것은 신의 주소이며 조상들의 주소이다.


* 정원에는 지저분한 낙엽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꽃이 피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퇴비 만드는 법을 안다면, 그대는 낙엽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 깨어 있는 마음에서 에너지를 얻는 법을 배우라. 깨어 있는 마음이란 감싸 안고, 실어 나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배'이다. 만일 그대가 배를 가지고 있다면, 그 배는 수백 킬로그램의 돌을 실어도 물 위에 뜰 것이다.


* 일몰을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조건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한 번만 깨어 있는 마음이 되면 충족된다.


* 붓다가 되려고 노력하지 마라. 다른 누군가, 다른 어떤 것이 되려고 노력하지 마라. 그대 자신이 돼라. 그대가 서 있는 자리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으라. 생각하지 마라. 존재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의 진정한 집이 되려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 집으로 가라. 그러면 그대는 볼 것이다.


* 그대는 행복을 나중으로 미룬다. 하지만 나중에도 결코 행복은 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대가 따라야 할 원칙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 궁극의 차원이 곧 그대의 진정한 집이다. 그곳에는 탄생도 죽음도 없고,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없고, 위와 아래도 없다. 그곳에서 그대는 절대로 안전하고, 어떤 두려움도 없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그대는 그곳으로 갈 수 있다.


* 우리는 모든 관념과 생각을 소멸시킬 수 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다.


* 붓다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나려면 우리의 몸을 깊이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 영원한 삶은 죽음을 포함하는 삶이다. 사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은 불가능하다. 영원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 물 위나 불타는 석탄 위를 걷는 것이 기억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따라서 자신의 발로 걸을 때마다 기적을 행하라. 그러면 그대는 멈춰 서서 매 순간 삶을 깊이 사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 '종이'는 '종이 아닌 요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空이란 그 자체 존재로서는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분리된 자아로서 텅 비어 있다는 말은 결국 모든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 그대의 생일이란 그대가 '계속 존재하게 된 날'이다.


*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대, 나는 내가 전생에 구름이었음을 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고학이다. 나는 왜 내가 전생에 구름이었다고 말하는가? 나는 지금도 구름이기 때문이다.


* 그 어떤 것도 태어날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죽을 수 없다.


*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 생각 속에는 인간은 매우 가치 있는 존재이고, 흙은 전혀 가치가 없다는 차별의식이 담겨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까지도 먼지 입자 하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 우리가 먼지 입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모험이다.


* 잎새 하나가 나무의 어머니이다.


* 태양은 우리의 두 번째 심장이고, 숲은 우리의 두 번째 허파다.


* 우리의 몸은 피부의 경계선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한 순간이라도 지구를 덮고 있는 공기층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생명은 끝날 것이다.


* 우리가 '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머릿속에 '의자'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마다 실체는 반으로 갈라진다. '의자'와 '의자' 아닌 것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리는 너무 지나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하기까지 하다.


* 깨어 있는 사람은 의자를 바라볼 때, 의자 아닌 요소들을 생생히 바라본다. 그리고 의자를 다른 것과 분리하는 경계선이 없으며, 의자에는 시작도 끝도 없음을 깨닫는다. 의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우주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 시인 타고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 전체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대와 나 또한 존재할 수 없다. '태어남' 때문에 타고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때문에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 내가 여기 있는 것은 그대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실체는 존재와 비존재, 태어남과 죽음의 관념에 의해 한계를 가질 수 없다.


* 만일 관념을 통해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대는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없다.


* 각각의 파도는 태어나고 죽는다. 하지만 바다는 태어남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다.


* 태어남과 죽음은 단지 우리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일 뿐이다.






* 당신의 첫사랑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당신의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도 아니고 맨 나중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사랑이다. 그것은 모든 것과 함께 있는 사랑이다. 


*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태어나는 척, 죽어가는 척하는 것이다.


* 이 이야기는 45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만인 [금강경]의 눈으로 살핀다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지금 여기서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선정 속에서 꽃을 본다면, 그 한 송이 꽃을 통해 태양과 온 우주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꽃 한 송이가 시들어 갈 때 우리는 울지 않는다. 그것의 덧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덧없음에 대해 깨어 있기를 수련할 때, 우리는 덜 괴롭고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사물이 덧없는 것임을 알면,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 어떤 사물을 보아도 우리는 그것 안에 존재하는 본성을 볼 수 있다. 자아는 비자아의 요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것에서 우주를 보게 된다.


* 우리는 결코 실재를 경험하지 않는다. 다만 관념을 갖고 있을 따름이며, 그 관념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 '사람' 또한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하나의 관념이다. 사람은 사람 아닌 요소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우리는 실재를 포착하기 위해 관념과 개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즉 실재 그 자체와는 부합되지 않는 실재의 모양을 만들어 세우는 것이다.


* 만일 참된 공이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면, 공관념에 사로잡혀 뱀한테 물릴 것이다. [라트나 구경]에서는 공 관념에 빠지는 것보다 존재 관념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모든 관념은 공 관념으로 치료될 수 있지만, 자칫 공 관념에 빠지게 되면 치료 불가능이 된다.


* 우리는 만사가 무상하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시 보라고 말씀하신다. 무상함이 없다면 생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사가 무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의 고통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의 귀여운 딸아이가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겠는가. 어떻게 세계의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사회의 정의와 희망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무상함이 필요하다.


* 우리가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사물이 무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물이 무상하지 않고 영속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꽃 한 송이가 시들어갈 때 우리는 크나큰 슬픔에 젖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꽃이 무상한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무상함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죽으면 아주 큰 고통에 빠지게 된다. 만약 우리가 무상함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해 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무상함에 깨어 있을 때 우리는 적극적이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지혜로워진다.


* 무상은 좋은 소식이다. 무상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무상함으로 말미암아 변화의 문이 열린다. 덧없음 불평하는 대신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한다. "무상 만세" 무상함은 우리의 해탈을 위한 도구이다.


* 부처님이 우리에게 열반을 가르치신 것은 우리를 무상과 무아라는 관념에 대한 집착에서 풀어주시기 위해서이다.


* 그 사람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 인생의 흐름에서 나온 '그 사람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나의 조상들이 이미 그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나의 '첫' 사랑은 이미 거기 있었고, 늘 거기 있다. 그 사람은 시작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훨씬 더 힘 있는 어떤 존재로 바뀌었다.


* 여러분이 만일 "그 뒤에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자아가 자아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졌음을 망각한 것이다. 여러분이 거기 있기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여러분한테 달려 있다.


* 여러분의 첫사랑을 돌이켜보라. 여러분의 첫사랑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끝없이 변모하고 있는 무엇이다.


* 세 가지 해탈의 문: 공문, 무상문, 무원문.


* 해탈의 문인 공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수행이다. 모든 사물을 깊게 들여다보라. 그러면 공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분별지를 여의고,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할 것이다.


* 우리의 마음은 실체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칼과 같고, 그렇게 해서 실재의 조각이 다른 조각들과 별개의 것인 양 여기고 행동한다.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볼 때,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자기가 만든 정신적 개념들 사이의 칸막이를 치우고 나서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가 여럿 안에 있고 여럿이 하나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서로 안에 있는 존재의 참된 본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관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 아버지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아버지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아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아버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를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보인다. 모든 사물도 마찬가지다.


* 부처는 부처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진 분이다. 깨달음은 깨달음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고, 법은 법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살은 보살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곧 해탈의 두 번째 문인 무상문을 닦는 길이다. 


* A의 A 아닌 본성을 본 뒤에야, A의 실체에 닿게 되는 것이다.


* 세 번째 해탈의 문은 '무한'이다. 바라는 것이 없고, 목적이 없는 것이다. 추구할 것이 없으며, 얻거나 성취할 것도 없다. 우리는 이미 도달했고, 더 이상 나아갈 필요가 없으며, '이미 여기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평화와 기쁨을 준다.


*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하면 추구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미래에 있고, 우리는 결코 그것에 닿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미 정토에 있다. 우리는 이미 부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다만 깨어 일어나, 우리가 이미 여기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르마'는 지금 이 순간에 연결되어 있다. 다르마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다르마를 수행하고 다르마에 따라 살아간다면, 행복과 평화는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다르마를 받아들이자마자 치유가 이루어진다.


* 역사적 차원에서 보면 깨달아야 할 무엇, 실현해야 할 무엇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행복과 평화는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다르마를 받아들이자마자 치유가 이루어진다.


* 역사적 차원에서 보면 깨달아야 할 무엇이 실현해야 할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相이 있는 곳에 속임수가 있다.


* 부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여래如來'라 부르셨다. 그 말은 여여如如에서 오는 이, 또는 如如에로 가는 이, 또는 아무 데서도 오지 않고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 이라는 뜻이다. 如如는 오고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동시에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다. 이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라도 사람들은 우리와 접촉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조금도 구애되지 않는다. 모든 곳에 침투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다.


* 내가 꽃을 만질 때마다 나는 해를 만진다. 그런데도 손가락을 대지 않는다. 나는 꽃을 만질 때마다,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고도 구름을 만진다. 꽃을 만질 때 나는 나의 의식과 여러분의 의식 그리고 도구라는 행성을 함께 만진다. 이것이 화엄세계이다.


* 우리가 진정으로 꽃 한 송이를 깊게 만나면 우주를 만지는 것이다. 우주는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다. 하나를 만지면 여럿을 만지고, 여럿을 만지면 하나를 만지는 것이다.


* 우리의 눈길, 우리의 웃음, 말 한마디는 우주에 두루 미쳐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접촉하고 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침투하고 있다. 그것이 화엄세계이며, 또한 우리들의 세계이다.


* 모든 것은 유래가 없다. 저자도 창조자도 없다. 그것이 실재의 본성이다. 태어남과 죽음, 만든 자와 만들어진 것의 개념을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물을 만지고 경험할 수 있다.


* 우주란 정신적 구조물이다.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번뇌와 미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번뇌와 미망의 세계에 사는 것이고, 마음이 정념, 자비,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면 화엄세계에 사는 것이다.


* 우주는 크고 우리는 작다는 생각 자체가 하나의 관념일 따름이다. 꽃잎 하나가 꽃 전체이고 우주 전체이다. 우리가 이렇게 명상하면 크니 작으니, 하나니 여럿이니 하는 관념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 [금강경]에서 우리의 자아와 비자아,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 수명과 비수명의 분별을 지워버렸다. 이제 화엄세계에서는 이른바 생명 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본다. 생명 있는 것들이 생명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는 것이다.


* 그냥 지금 있는 곳에 있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깊게 만나고, 마음을 모아 걸으며, 온몸과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라. 이것이 수행하지 않는 수행이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은 장애만 자꾸 만들어낼 뿐이다. 머리를  쓰지 말고 깊게 귀를 기울이라.


* 실재는 언어나 관념으로 서술될 수 없다. 열반은 무엇보다 관념의 적멸이다.


* 화엄세계로 들어갈 때 여러분은 부처이다. 자기를 미래의 부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 여러분이 물을 접할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결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물결은 언제나 물이다. 물이 아니라 물결만을 접하고 살아간다면, 생사와 많은 번뇌들로 괴로워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아 자기가 물임을 깨닫는다면, 모든 두려움과 번뇌가 사라질 것이다. 물을 접하면서 여러분은 또한 물결을 접하는 것이다.


* 화엄세계에 들어가 비로자나를 뵐 때 여러분은 또한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있는 석가모니를 뵙는 것이다.


* 봄에 피어난 잎들은 여름 동안 가지에 붙어 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떨어진다. 그 잎들은 죽은 척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척하면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어머와 아버지는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 우리의 해탈은 그분들의 해탈이다. 우리 자신의 변화를 위해 무슨 일을 하면 그것은 그분들의 변화를 위한 일이며, 우리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변화를 위한 일이다.



* 그대의 왼손이 위로와 사랑을 받을 때 그대의 오른손 역시 위로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는가. 누군가 고통받는 사람을 보았을 때, 만일 우리가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과 접촉하다면, 그는 우리의 위로와 사랑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위로와 사랑을 받을 것이다.


*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 우리는 오직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만 자각한다. 그래서 걱정과 격렬한 감정들로 우리의 감정을 더욱 힘들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평화와 기쁨을 가로막는다. 


* 우리는 고통을 자신과 세상을 돕는 지혜로 바꿀 수 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는 생생히 살아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 평화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단지 그것과 접촉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진정 살아 있을 때, 우리는 나무가 천국의 일부이며 우리 역시 천국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바다가 교묘히 가라앉기를 원한다고 해서, 바닷물을 모두 펴내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에 분노와 두려움, 흥분이 있음을 알아차릴 때 우리가 그것들을 내다 버릴 필요는 없다. 단지 호흡을 자작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하면 된다. 


* 우리의 둥치, 우리의 중심은 배꼽 아래에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 곳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이다.


* 그대는 감정 이상의 존재이다. 감정은 생겨나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감정의 본성이다.


* 우리는 진리를 얻기 위해 다른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다. 단지 고요 해기지만 하면 된다.


* 정원사가 거름을 꽃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듯이, 우리 또한 분노와 미움, 우울증과 차별심을 사랑과 이해로 탈바꿈할 수 있다. 명상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만일 그대가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 보기를 겁낸다면, 그대는 그 두려움에 압도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두려움을 조용히 맞아들여 깨어 있는 마음으로 미소 짓는다면, 그것은 힘을 잃을 것이다.


* 꽃을 깊이 바라볼 때 우리는 꽃이 피어 있도록 도와주는 꽃 아닌 수많은 요소들을 발견한다. 구름과 대지, 정원사와 흙이 그것이다. 우리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볼 때, 우리는 고통이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 짜증이 나서 아이에게 거칠게 말할 때, 우리는 아이 속에 있는 고통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아이가 다시 거친 태도로 반응할 때, 아이는 우리 안에 있는 고통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고통은 점점 더 커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 우리가 이미 목적지에 도달했고 더 이상 여행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가 '이미 지금 이곳에 있음'을 깨달을 때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앞으로 태어날 모든 세대들이다. 그 아이를 돌보는 최선의 방법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를 잉태하기도 전에 그 아이는 이미 거기에 있다.


* 대지를 안식처로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무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 서둘러 그곳으로 가려하는가? 


* 우리는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내면에 꽃과 쓰레기를 함께 가지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우리의 수행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꽃에 물을 주고, 더 많은 쓰레기를 가져다주지 않는 일이다.




* 모든 느낌에는 수명이 있다. 느낌은 태어나고, 잠시 머물다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 명상은 나 안에 있는 나 아닌 요소들을 발견하기 위해 장벽과 한계, 차별을 제거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 명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이다. 우리는 생일 축하 노래 대신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조차 계속해서 이어지는 날이다. 어머니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살아계시는 것이다.


* 그대는 어머니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관념은 역사적 차원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 차원에서 어머니를 만날 때, 그대는 어머니가 여전히 그대 곁에 존재해 계심을 깨달을 것이다.


* 그대의 어머니 또한 놀이를 하고 있다. 그분은 그대의 어머니로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 이제 어머니는 그대의 성장을 돕기 위해 이곳에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면 몸이 나타난다. 그러면 우리는 몸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을 때 우리는 몸을 인식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그대가 그대의 손, 그대의 얼굴, 그대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매우 깊이 바라본다면, 어머니가 그대 안에서 미소 짓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깊은 명상이고, 또한 깊은 차원의 치료이다. 


* 절대의 세계란 모든 관념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탄생과 죽음, 있음과 없음, 나타남과 사라짐을 포함한 모든 관념의 소멸을 뜻한다. 절대 세계는 삶의 궁극적인 차원이다. 고요와 평화와 기쁨의 상태이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야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다.


* '전체적으로 바라보라'는 말은 궁극적 차원을 만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물을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지혜롭고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우리는 조그만 상황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전체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많은 실수를 피할 수 있고, 삶과 행복에 대해 더욱 심오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 전체적으로 생각할 때, 나는 나 자신이 단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서 있음을 안다. 왜냐하면 자두마을 느낄 때, 유럽과 아시아 전부를 느끼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지 내 발밑의 작은 땅이 이어진 곳에 있을 뿐이다.


* 깊은 자각 속에서 어떤 것을 만날 때, 그대는 모든 것과 만난다. 이것은 시간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그대가 활짝 깨어 있는 상태로 한순간과 만난다면, 그대는 모든 순간과 만나는 것이다.


* 지금 이 순간을 만날 때, 그대는 현재가 과거로부터 생겨났으며, 또한 미래를 창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현재를 만날 때 그대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만나는 것이다.


* 보살들은 궁극적 차원에 접촉한 뒤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하기 위해 역사적 차원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바다의 삶을 살지만 파도의 삶도 산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준다. 


* 나의 형제이자 나와 함께 수행하는 그대들은 탄생과 죽음에 빠지지 않고, 탄생과 죽음의 파도를 타는 보살들이다. 우리는 끝없는 슬픔을 겪었고, 슬픔과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수행을 했고, 그것을 통해 약간의 통찰력과 자유를 얻었다. 이제 우리는 모든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 우리는 더욱 잘할 수 있을 것이다. 


* 명상이란 우리의 몸과 느낌, 마음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머물 때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바로 우리 눈앞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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