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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31. 2020

우포



  우포, 회색과 먹빛의 새 떼들이 흑갈색 우포의 적막 안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세 떼들은 겨울 한철을 기거하고 떠난다. 우포의 물은 중년의 외투 같이 오래 되었다. 내가 우포에 도착한 시각은 해질녘. 새 떼들은 하나 같이 태양을 향해 거룩하고 경건한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태양을 향해 가슴 열어놓고, 장엄한 종교행사를 치르듯 한결 같이 단정한 몸가짐이라 우포의 고요가 한층 더 깊다. 우포는 거대한 사원. 이 새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낮에는 태양을 바라보고 날갯짓 했고, 밤에는 별자리를 보고 날갯짓했고, 흐린 날에는 머릿속 철분을 이용해 나침반으로 사용했다. 또 어떤 새들은 지난 해 그들이 몸담았던 물의 소리와 감촉을 기억하며 찾아왔다. 이곳에서 새들은 동안거하듯 흠집 없는 삶을 살다 떠날 것이다.

   돌연, 몇 마리 새들 물을 차고 우포를 떠난다. 미련 없다는 듯이 산을 넘는다. 왠지 시시껄렁한 웃음 같은 날갯짓 소리를 내며 새들은 노을진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선홍빛 노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검은 발자국 같다. 나는 묻는다. 어디로 가느냐고. 나도 머릿속 철분으로 남이나 북, 어디든 방향 잡을 수 있다면, 내게도 물의 기억이 있다면, 내게도 별자리를 바라보고 가 닿을 오래된 사원이 있다면…, 선홍빛 노을 속으로 점점이 걸어 들어간 발자국들 끝내 빛 속으로 사라지고, 저 발자국들 꾹꾹 밟으며 따라 잡을 수 있다면. 발 아래 자갈길을 밟을 때마다 우포의 적막이 잘근잘근 고통스럽게 씹혀진다. 뒤꿈치를 들고 이 사원을 빠져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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