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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Jul 10. 2021

재판

볼프강 레틀


Wolfgang Letti - The Trial [1981]





 그림에서 미로는 너무나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미궁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 같이 구두를 신고 있다. 구두를 신은 발들은 무겁게 계단을 디디고 있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는 경우처럼 다시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초현실주의는 전반적으로 미로와 같은 상황을 주로 연출한다. 많은 퍼즐, 많은 질문, 그러나 답변 없음, 출구 없음.

 거울의 집 같은 건축물은 고풍스럽거나 미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흡사 톱니바퀴들이 맞물려진 금속구조물이 한 덩어리로 얽혀 있는 듯하다. 초현실주의는 출구나 희망에 대한 가능성을 두고 있지 않다. 단지 '처해 있음' '난처함' '얽혀 들었음'이다. 비현실적인 희망의 출구를 보여주지 않으며,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열려 있지만 출구가 없다. 아리아드네의 실조차 쓸모가 없다. 구두를 신은 존재들은 누구인가. 카프카의 '심판'이 그림의 이야기를 더해줄 수 있겠다.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생활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바로 내 옆에서 그러하고 내 이웃에서 그러하다. 현실이 비현실에 더 가깝다. 우린 언제나 법의 심판 아래 놓여 있으며, 우리의 심층은 늘 심판과 처벌의 공포에 짓눌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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