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 Eleven A.M. (1926) (71,3 x 91,6 cm)
책을 읽고 싶다. 창의 햇살 같은 문장의 책. 그러나 텅 비었다. 마음에 어떤 바람도 없다. 어디서 내가 흘러온 것이냐. 시간의 얼레를 다 풀어버리고 싶어 옷을 모두 벗었다. 유일한 안일 같은 소파에 몸을 두고 소파의 부드러움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일어나고 싶다, 그러나 일어난다 해도 달리 나를 내던지 자리가 없다. 창의 햇살. 까슬까슬한 햇살이 닿는 피부와 같은 책읽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읽는 것이란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인식에 도달하면 그 순간은 깨어난다. 그러나 텅 빈 이 방에서 내가 어떤 인식의 상태를 겪고 있는 듯 하다. 나는 빈 손이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으며 발가벗은 채 오전 11시의 햇살만이 내가 가진 전부이다. 이 고독의 경험치를 어떤 인식의 문장으로 해석할 수 없다. 어젯밤에 지불한 하루치의 방 값에 대한 시간의 유효가 곧 끝난다. 자리에 일어나야 하고, 퀴퀴한 양탄의 냄새는 기억에 한 동안 머물 것이다. 구겨진 옷가지들은 내 마음의 헝클어짐과 다른바 없으며 긴 머리카락은 조만간 잘라버릴 심상이라 감지도 이틀 째 감지도 않았다. 문제는 지금 이 햇살과 바깥의 공기이다. 나와 무관한 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게서 마음의 산문을 읽고 있다. 나는 일반적인 인간인가? 특별한 인간인가? 내 근저에 떠도는 공기의 따뜻한 질감 같은 진실은 있는가. 내가 떠나온 그 먼 곳에 대해 나는 일말의 회환도 없다. 다만 이 자리에 나를 밀어낼 듯 부드러운 소파와 우울한 실내의 조명을 밀어내는 햇살만이 유일한 진리처럼 창 언저리를 비춘다. 나의 두 손은 나의 의식과 무관하게 어떤 조급함과 긴장된 내면의 상태를 드러낸다. 창 밖에 어떤 사건의 실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가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가. 내가 묵은 거처의 인근은 배도, 물결도, 바다나 사막도 없다.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창 아래서 올라온다. 입담이 거칠고 욕지기가 섞여 있고 담배 냄새가 올라온다. 그래도 좋다. 인간 생활의 냄새들이다. 나와 무관하나 나의 피부에 닿는 인상들이다. 창 밖은 오랫동안 수 없이 반복되고 중첩된 인간 생활의 현장들이 만들어낸 아수라장이며 광경이고 풍경이다. 어디까지 이러한 생각은 햇살 오전 열 한시에만 한정된다. 일어나서 옷 가지를 입고 문을 열고 나가면 나는 나를 어디로 몰고 갈지 알수 없다. 지금은 다만 열 한 시, 오전의 햇살이 닿는 피부로만 존재하는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