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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23. 2021

어제오늘


 어제오늘

 -김정용


 어제는 수정리 국도변 마른 떡갈나무 층 위로 다리 저는 어린 길고양이 할딱거리는 숨결이었다 먹어서 힘내라고 던져준 수분기 없는 퍽퍽한 카스테라 같은 오늘은 전깃줄에 까마귀의 득의양양한 검정 빌로드 빛 몸을 비추는 늦가을 숨결이었다


   어제는 안나 카레니나가 뛰어내린 기차가 지나갔다 책을 무릎에서 떨궜다 고향의 간이역은 이제 어울리는 기차가 오지 않는다  연애를 예감하고 연애를 종식시키는 기차는 어딜 달리고 있을까


  어제는 피망을 씹고 오늘은 라벤더 향이 나는 담배를 찾았다 세상에 없는 조합이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 볼 계획 없는 즉흥이었다 피우지 않는 담배 맛이 뇌에 까지 다다랐다 오지 않는 내일의 맛이려니


 어제는 달려가는 기차를 위해 흰 종이에 느린 곡선을 그렸다 오늘 곡선은 외로운 곡선이었다 사과나무를 그렸다 침이 고이는 붉은 홍옥이 기차의 유리창에 얼비쳤다 외롭지 않은 기차와 사과나무와 유리창이 되었다


 땀을 흘리고 싶어 어제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달렸다 땀이 나질 않는 몸을 느끼는 중이다 가오리  같았다 겨울 공중에  끊어져 감나무 잔가지에 매달려    


 성인용품 스팸 메일이 잔뜩 들어 있는 다음 메일 비워낼게 한 가득이다 멧비둘기들 낱알갱이 쪼는 수확이 끝난 들판을 서성거리는 산책 자주 하면 느낌이 덜해서 일주일 한 번 서성거리는 중에 오늘 메일의 제목이 외워졌다. '오빠, 수현이에요'

 

 문 앞에 벗어놓은 밤 사이 꽝꽝 언 신발 드라이기를 꽂아 데운다 번갈아 하나를 데우고 다른 하나를 데우는 사이 이내 하나가 식는다 지난밤 이불 위 전신에 힘을 빼고 모든 걸 부려놓고도 더 부려놓고 싶었던 몸을 신발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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