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초콜렛
- 김정용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어요 나일론 양말에 넣고 주목의 가지 속에 하룻밤 묵히고 딱딱하게 얼은 초콜렛을 뚝뚝 끊어 혀 끝에 녹이고 싶었어요 내가 내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란게 뭔가요 물으면 뭔가 확실히 말을 못 해요 그냥 설탕 맛이 나요 달달한 만찬을 하세요 라고 말할 밖에요
달달해요 아버지 영정에 놓고 절했어요 술이나 담배 연기는 피우지 못해요 그 세계에도 술이랑 담배는 금기예요 생전 우리 사이 예술을 논한 게 딱 한 번이었어요 병맥주를 비우며 초콜렛을 끊었어요 가족을 건사하지 못한 평생의 콤플렉스가 말년에 몰아쳤어요 달달한 반성이었어요 씁쓰레한 과거 기억이 초콜렛으로 달래졌어요
아 올라와요 당 수치는 말할 수 없어요 초콜렛을 빙자한 설탕 중독증이에요 달달한 가족사 거나 밀월 같거나 귓속말이 녹아든 초콜렛은 없어요 혈당치가 혀 끝에서 혈관을 타고 번졌어요 졸음이 엄습했어요 엄습한 잠을 단잠이라 하죠 초콜릿 백 그램으로 녹아드는 성탄절의 낮잠 자고 나면 까마득히 멀어져 버린 노을 진 성축일이에요
두툼한 입술에 초콜렛을 묻히고 시를 읽었어요 유미주의였고 꽃이 떨어지는 중이었고 시인의 짧은 생이 스며든 시였어요 입술이 달달 한데 시어가 쓰라렸어요 초콜렛이잖아 이건 달고 쓰라린 달콤한 고통이잖아 자동차 앞 유리창 햇살에 맨 발을 내밀고 가나 초콜렛으로 잠을 불렀어요 잠(꿈) 끝내고 나면 생은 또 어찌 해석되겠지요 우리 생의 유미주처럼 말이죠
술 취한 목소리 전화 왔어요 혼자 사는 이가 혼자 사는 이가 생각 난 밤이었어요 단박에 뭣 때문에 전화했는지 알아챘어요 술로 자기를 달래는 이에게 운동 중이라고 끊었어요 손에 가나 초콜렛을 들고 찾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난 씁쓰레함을 삭혀버렸기에 성탄 전야의 서러움이 북받쳤던 그를 미학적으로 느끼기만 했어요 가방에 손을 넣고 가나 초콜렛을 더듬었어요 초콜렛을 빙자한 설탕 알갱이가 씹히는 엄동의 나날 속에 낀 하루 빨간 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