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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25. 2021

가나 초콜렛


  가나 초콜렛

  - 김정용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어요 나일론 양말에 넣고 주목의 가지 속에 하룻밤 묵히고 딱딱하게 얼은 초콜렛을 뚝뚝 끊어 혀 끝에 녹이고 싶었어요 내가 내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란게 뭔가요 물으면 뭔가 확실히 말을 못 해요 그냥 설탕 맛이 나요 달달한 만찬을 하세요 라고 말할 밖에요


  달달해요 아버지 영정에 놓고 절했어요 술이나 담배 연기는 피우지 못해요 그 세계에도 술이랑 담배는 금기예요 생전 우리 사이 예술을 논한 게 딱 한 번이었어요 병맥주를 비우며 초콜렛을 끊었어요 가족을 건사하지 못한 평생의 콤플렉스가 말년에 몰아쳤어요 달달한 반성이었어요 씁쓰레한 과거 기억이 초콜렛으로 달래졌어요


  올라와요  수치는 말할  없어요 초콜렛을 빙자한 설탕 중독증이에요 달달한 가족사 거나 밀월 같거나 귓속말이 녹아든 초콜렛은 없어요 혈당치가  끝에서 혈관을 타고 번졌어요 졸음이 엄습했어요 엄습한 잠을 단잠이라 하죠 초콜릿  그램으로 녹아드는 성탄절의 낮잠 자고 나면 까마득히 멀어져 버린 노을  성축일이에요


 두툼한 입술에 초콜렛을 묻히고 시를 읽었어요 유미주의였고 꽃이 떨어지는 중이었고 시인의 짧은 생이 스며든 시였어요 입술이 달달 한데 시어가 쓰라렸어요 초콜렛이잖아 이건 달고 쓰라린 달콤한 고통이잖아 자동차 앞 유리창 햇살에 맨 발을 내밀고 가나 초콜렛으로 잠을 불렀어요 잠(꿈) 끝내고 나면 생은 또 어찌 해석되겠지요 우리 생의 유미주처럼 말이죠


  술 취한 목소리 전화 왔어요 혼자 사는 이가 혼자 사는 이가 생각 난 밤이었어요 단박에 뭣 때문에 전화했는지 알아챘어요 술로 자기를 달래는 이에게 운동 중이라고 끊었어요 손에 가나 초콜렛을 들고 찾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난 씁쓰레함을 삭혀버렸기에 성탄 전야의 서러움이 북받쳤던 그를 미학적으로 느끼기만 했어요 가방에 손을 넣고 가나 초콜렛을 더듬었어요 초콜렛을 빙자한 설탕 알갱이가 씹히는 엄동의 나날 속에 낀 하루 빨간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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