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를 심어 놓고

by 일뤼미나시옹



호두나무를 심어 놓고

- 김정용



심어 놓고 석벽 귀퉁이 색 바랜 파라솔 의자라니

심어 놓고 여름 그늘에서 녹슨 톱날의 날만 세우다니

심어 놓고 기우제랑 돌밭이라니

심어 놓고 북쪽 울타리를 허물고 흰 비둘기를 잡아먹다니

심어 놓고 마술 지팡이를 기다리다니

심어 놓고 냇물을 굴러가던 돌멩이를 불러오다니


심어 놓고 그늘 속에서 희고 언덕이 있는 희열 한 번 없다니

심어 놓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또 뒤적거리고 뒤적거리다 멎고 다시

심어 놓고 목수는 어부 귀향은 더 멀어진 생계 장롱은 황무지


그나마, 잔가지에 파랑새들 파랑 놀이 파랑 이파리 놀이

그나마, 봄이 호두나무에 봄의 호두나무 놀이 파리한 놀이


심어 놓고 이주민의 말 없는 시집 살이 칠 년 이라니

심어 놓고 치매 아버지를 싣고 가는 아들의 호두나무 그늘 창 그림자라니

심어 놓고 파라솔 의자에서 까무룩 해지고 북향으로 늙는 순서라니


그나마, 악력에 안긴 알맹이를 둥글게 마감하는 감각이라니

그나마, 시퍼런 돌멩이를 구분하는 초록 감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