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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Sep 18. 2022

물리학과 신비주의

관련된 도서 <블립> 

 



양자물리학


입자는 동시에 둘이나 그 이상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 또 한 장소에 위치하는 ‘물체’는 입자로도 나타났다가 파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퍼져 나가기도 한다.

 또 한 장소에 위치하는 ‘물체’는 입자로도 나타났다가 파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퍼져 나가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빛 보다 빠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양자 물리학에서 아원자 입자들은 공간 속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동시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고전 물리학은 결정론적이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그것이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 양자 물리학은 확률론적이다. 특정 물체가 어떻게 변할지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고전 물리학은 환원론적이다. 각각의 부분들을 안다고 전제하면 결국 전체까지 이해할 수 있다. 양자물리학은 좀 더 유기적이고 홀로그램적이다. 양자 물리학이 그려내는 우주는 모든 부분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는 통일된 우주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양자물리학에서는 400년 동안 과학을 지배해 온 데카르트식 주체와 객체,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양자 물리학에서 관찰자는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물질 우주에서 독립된 관찰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참여하고 있다.


 빈 공간


 물질 우주가 딱딱한 입자라고 보는 뉴턴 물리학에 양자 물리학이 가하는 첫 번째 일격은 원자의 대부분이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얼마나 비어 있을까? 수소 원자의 핵을 농구공 크기로 놓고 보면 전자들은 약 32킬로미터 주변에서 그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그 핵과 전자 사이는 빈 공간이다. 우리 주변의 물질은 사실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빈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진실은 아니다.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곳도 실제로는 전혀 비어 있지 않다. 그 공간은 미묘하고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로 꽉 차 있다. 물질의 미세한 부분은 내려갈수록 에너지의 야은 증가한다. 핵에너지는 화학 에너지보다 백만 배 더 강력하다. 1 센티미터의 구슬 크기에 존재하는 빈 공간의 에너지는 전 우주의 모든 물질의 에너지보다 더 크다 과학자들은 아직 까지 이 에너지를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이 무한한 에너지 효력은 알고 있다. 



 입자, 파동, 파립자


 과학자들이 원자 속으로 깊이 들어가 발견한 것은 입자들 사이의 ‘공간’ 뿐만 아니다. 원자의 구성물인 아원자 입자는 전혀 고체의 성질을 띠지 않으며 두 가지 성질로 나타난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원자 입자들은 입자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파동의 성질을 띠기도 한다. 입자는 공간에 특정 위치를 점하는 분리된 고형의 물질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반면 파동은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고, 고체의 성질을 갖지 않으며 음파나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파동으로 나타나는 전자나 광자(빛 입자)는 특정한 장소에 점하지 않고 ‘확률의 장’으로 존재한다. 입자로 관찰될 때 그런 확률의 장은 ‘붕괴되어’ 특정 위치와 시간 속에서 위치를 점하게 된다. 놀랍게도 파동과 입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관찰이나 측정 행위이다. 측정하거나 관찰되지 않으면 전재는 파동처럼 움직인다. 실험을 통해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그 파동은 ‘붕괴하여’ 특정한 입자로 변해 특정 위치를 점한다.


 어떻게 한 물체가 고형의 입자의 성질과 부드럽고 물과 같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모순은 앞에서 말한 것을 상기함으로써 해결될 수도 있다. 입자는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띤다. 하지만 ‘파동’이란 말은 단지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입자’란 말 역시 우리 일상생활에서 쓰는 비유이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파립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자 도약과 확률 


 원자를 연구하면서 과학자들은 전자가 원자핵 주위의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전자들은 일반적인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궤도 사이의 공간을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이동한다. 즉 하나의 장소, 궤도에서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양자 도약이라고 부른다. 이것만으로도 상식적인 물리법칙을 깨뜨리기에는 충분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도약의 과정에서 언제 어디서 전자가 나타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새로운 전자 위치의 확률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사티노바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이 확률의 바닷속에서 매 순간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신비는 그러한 개연성으로부터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이 물리적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것을 일으키는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 양자적 사건을 이 우주에서 진정한 의미의 무작위 사건들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고전 물리학에서 모든 물체의 속성은 그 위치와 운동량을 포함해서 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자 차원에서는 어떤 물체의 고유한 성질, 예를 들어 속도를 측정하려고 하면 다른 특징들, 위치 것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즉 어떤 사물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 수 없어지고, 그 물체의 속도를 알고 있다면 그것의 위치를 알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섬세하고 진보된 기술로도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 물리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베르너 하이젠베르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물체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하나에 초점을 맞출수록 다른 하나의 불확정성은 더욱 증가한다. 


 비 국소성, 전자 상자 공명, 벨의 정리, 양자 얽힘 현상


 아인슈타인은 양자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위에서 이야기한 무작위성에 대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에 닐스 보어는 아인슈타인에게 응수했다. “신에게 명령은 하지 마시라.”

 양자물리학을 꺾기 위한 노력으로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 로젠은 양자 물리학의 모순점을 보여 주기 위해 사고 실험을 통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양자의 성질을 논문에서 지적했다. 우선 같은 시간에 만들어진 두 개의 입자를 준비했다. 이때 두 입자는 얽힘 상태에 있거나 중첩 상태에 있게 된다. 하나의 입자를 아주 먼 거리를 두고 (우주의 반대쪽까지) 이 상태에서 하나의 입자에 자극을 주어 그 상태를 변화시키자 멀리 떨어져 있던 입자 역시 동시에 자극에 반응했다. 

 이 개념은 너무 기묘해서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을 ‘도깨비 같은 원격 작용’이라고 불렀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전자의 속도는 무한하다. 더구나 전자가 우주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전자로부터 끊임없이 정보를 얻어 낸다는 개념은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린 것이었다. 

 1964년 존 벨은 이 실험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즉 모든 것은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국소성(non-local)의 성질을 가지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벨의 정리가 발표된 후, 이 개념은 연구실에서 수 없이 검증되었다. 잠시 생각해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기반은 시간과 공간이다. 하지만 양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이 시공간의 개념을 앞선다. 아인슈타인이 이 개념을 양자 역학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법칙처럼 보인다. 사실 슈뢰딩거는 이러한 얽힘 현상이 양자의 흥미로운 한 부분이 아니라 양자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물리학과 신비주의가 서로 만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떨어져 있는 사물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비국소성) 전자는 A라는 위치에서 B라는 위치로 이동하지만 그 중간에는 머물지 않는다. 물질은 파동으로 존재하지만 관찰되면 그 성질이 무너지고 특정한 위치를 점한다. 

 신비주의에서는 이러한 개념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양자 물리학의 선구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부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닐스 보어는 태극의 음양을 그의 문장(紋章)에 사용했다. 데이브드 봄은 인도의 성자인 크리슈나무르티 오랫동안 교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윈 슈뢰딩거는 우파니사드에 대한 강의를 했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이 신비적인 세계관을 증명하는 것일까? 극단적인 물질주의자들을 제처 두면 선(禪)과 양자 물리학이 비슷하다는 것에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는 것 같다. 선과 양자 물리학의 공통점은 모순된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딘 박자의 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 그것이 양자역학이 가리키는 세계관이다.”

 존 휠러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독립된 ‘저 밖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실용적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휠러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단순히 우주라는 무대의 구경꾼이 아니라 그 속에 참여하면서 우주를 다듬는 창조자들이다.” 

 물리학자 아밋 고스와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주변의 것들이 자신의 관여나 선택과는 무관하게 이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양자 물리학이 발견한 것들을 근거로 충실히 대답하면, “우리는 그런 생각을 없애야만 한다. 대신 우리 주변의 물질세계, 즉 의자나 탁자, 방, 카펫과 같은 것들을 의식의 가능한 흐름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매 순간순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선택을 통해 나의 실제 경험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

 이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원론의 종말이다. 마음이 물질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곧 물질이다. 의식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현실인 것이다. 


의식 / 물리적 현실

마음 / 물질

영혼 / 과학

초월적 자아 / 자연

신 / 사물


 누가 무엇의 원인이 되는가? 연결되어 있는가, 아니면 분리되어 있는가? 누가 분리를 만들었고 두 영역에 양발을 딛고 앉아 있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이다. 


  이런 이원론이 사라진 지금, 두 영역을 잇는 것도 인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영역은 같은 것이다. 모든 것들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의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스와미는 우리 일상의 경험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사고방식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하고도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너무 어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우리의 경험과 독립하며 이미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양자 물리학은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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