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is Picabia - Transparence [c.1926-28]
흐린 날
인생이란 사랑에 담보 잡히는 것 아니겠나
한 번도 아니고 골백번
일생을 홀라당 다 갖다 바쳐 버리고도 더 갖다 바치게 되는
얼빠진 듯이 혹독한 사기를 당하는 것처럼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골백번 인생이란
사랑에 탕진되고 나서야 참 인생을 알게 되는
흐린 날 다음에 또 흐린 날이 찾아오는 것처럼
인생이란 사랑에 의해 사랑의 부재를 실감하고
부재한 사랑에 충만한 사랑을 실감하게 되는 거 아니겠나
몸서리치면서 쓰라린 생을 가진 이는 사랑하는 이가 아니겠는가
그러려고 태어났는 거 아니겠는가,
흐린 날 다음에 또 흐린 날 그다음 날에도
흐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