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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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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20. 2023

창가에서 - 눈의 즉문, 눈의 즉답

  눈의 즉문, 눈의 즉답

 

  눈이 내리고 있다. 즉문즉답의 눈이다. 즉각적인 반응을 하자면 길이 미끄러워 울테니지, 즉각적인 물음을 하자면 그 사람 어깨의 눈은 녹지 않을 테지, 즉각적인 반응을 하자면 나뭇가지는 기필코 눈을 껴안은 자살을 생각하겠지, 즉각적인 답을 하자면 나의 자살은 서른 즈음에 끝을 냈으니까, 눈이 내리고 있으니까, 서러운 바람의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니까,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는 눈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비의 이야기가 실려 있을 거니까, 눈이 내리고 있다. 발이 흰 고양이가 새초롬히 새벽 눈을 깜짝일 테니까, 흰 눈의 무게를 빈 들은 받아서 천근무게로 마실테니까, 즉각적인 물음을 하자면 새들은 눈이 내리면 날개를 어떻게 비워낼까 눈을 껴안은 하늘은 은 언제 가슴을 쓸어내릴까 즉각적인 답을 하자면 쓸어낸 가슴에 눈의 기록은 나일론빗자루의 흔적이라도 될까 몇 해전에 헤어진 이별이 다시 찾아오는 눈의 기억을 차장의 와이프 흔들리듯 휙 쓸어버릴 테니까, 눈은 그렇게 아프게 오는 거니까 그러려고 눈을 맞는 거니까 눈이 내리고 있다. 아침에 그늘은 가진 새와 함께 눈은 저녁의 그늘에서 풀려나지 않는 언덕진 그늘에서 겨울 내내 얇은 포대기 마냥 펼쳐져 있을 테니까, 그러면 즉문처럼 사람의 발걸음이 조용히 그 위를 지나가고 즉답처럼 미끄러운 몸의 흔들림에서 나비가 태어나기도 할 테니까. 아직도 눈은 그 사람의 어깨에서 내리고 있을까 난 말이야, 정말 너에게 내 첫눈을 주었단 말이지. 그걸로도 충분한단 말이지. 그러나 사막에 기록물처럼 눈은 왜 내 혀끝을 단단히 메마르게 할까 말이지. 눈이 이렇게도 내리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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