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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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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20. 2023

창가에서 - 은둔자는 행간을 걷는 자

 은둔자


  사람이 은둔자 인지 아닌지 아는가.  사람이 은둔자인 것을 알려면  사람이 읽는 책을 보면 알게 된다. 그가 읽는 책에 기쁨과 탄성이 가득한 책이 아니라, 기쁨과 탄성이 가득한  안에도 괴로움이 있는 , 괴로움을 안고 책을 읽는 사람, 괴로움을 아는 사람, 괴로움을 책을 놓아도 세상에  가득인 것을 알아채는 사람, 그래서,  괴로움을 평생 안고 다니는 사람, 어디에라도 안고 있는 사람, 일상의 만남에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 사람, 그러나 은연중에 불쑥  던지는  한마디에, 세상에 대해  저편에 대해 그리고 발아래 풀에 대해 연민하고 괴로워하는 말을 하는 사람,  사람이 은둔자이다. 그는 자랑할 만한  없고,  세울 만한  없으며, 밥벌이 전전긍긍하면서도 오로지 밥벌이에만 미쳐 있지도 않으며, 돈이 궁하지만 돈에 굴복하지 않으며, 사람에 대해 연민하지만 사람에 굴욕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소설의 인물을 구상하는 사람이며 세상을 긍정과 행복의 미담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은둔한다.  이유는 세상을 위해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은둔하면서 세상을 치유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학대하고 이웃을 경멸하면서 은둔하는 자는 은둔자가 아니라 도피자이다. 은둔자는 스스로를 '가치' 감금하고, 스스로를 '언어적 질량'으로 억누르는 사람이다. 그는 새집을 짓고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다락을 만나면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겨울 벌판에 허허롭게 걸으면서 존재의 해방을 느끼는 사람이다.  땅이든 삭풍이든 질퍽거리는 토탄지대이든 상관없이 그는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에 더없이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러나 사물의 이해와 타자의 괴로움을  살피는 사람이다. 그가 은둔자이다. 그는  때문에 강박증을 앓고  때문에 여자와 헤어지고  때문에 이웃에 힐난받는 사람이다. 그는 형제에게도 친지에게도 친구에게도 의혹의 눈초리를 받아내는 사람이다. 그는 조용하지 않다. 그는 힐난을 받아내면서도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은둔자를 판단하고 세속적 잣대로 힐난하지 마라. 그가 세속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세상에 깊이 들어가 바라보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보는 세계의 본질을 어떻게 언어로 구사하는지 들어줄  없다면 차라리 헤어져라, 그러나 힐난하지 마라, 그는 실수 투썽이고 오류를 범하는 용과 같다, 그는 커다란 가치에 사소한 것들을 함부로 받아넘기는 용과 같다. 은둔자, 그를 함부로 가치 판단하지 마라. 그가 누구이든 함부로 막대하지 마라. 쓰고 버리는 연장 대하듯 선악의 판단으로 함부로 대하지 마라. 무엇보다 그를 연민하지 말라. 그는 언어를 다루는 자이다. 은둔의 언어는  안에 언제나 용광로처럼 들끓고 얼음처럼 차갑다.  언어로 그는 스스로를 식히고  달군다. 간간 그가 내놓는 언어로써만 그를 바라보라. 그의 언어로 그를 보는  외에 달리 그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은둔자. 그를 만나거든 그에게  한잔과 장미  송이. 그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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