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하다
산과 산 사이 달서 저수지의 11월은 구름 한 점 없는 늦가을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산의 중심부에는 떡갈나무들의 물든 바스락거림. 만추의 산기운에는 제법 차가운 바람이 골을 타고 내려와 수면에 잔주름 같은 물결을 만들어낸다. 저수지 둑 위에는 슈퍼마켓에 산 자리에 굿 상이 차려져 있었다. 과일과 백설기 돼지머리가 차려진 굿상은 단출했다. 돼지머리를 앞에 두고는 서른 중반이나 마흔에 가까워 보이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뒤축이 닳은 운동화를 벗어두고 앉아 있었다. 그 남자 옆에는 작은 징을 엎어놓은 무당이 바람 안에 사내의 바람을 축원하는 기도를 하고 신을 부르고 있었다. 벗어 놓은 신발의 뒤축을 일그러져 있었다. 일상의 대부분이 한 켤레 운동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신발의 경우처럼 사내의 삶도 꼭 그러하다. 더는 지탱할 세상의 밑바닥이 없는 상태이다. 물결에라도 빌어야 하고 공기와 하늘에라도 빌어야 하며 나무의 흔들림에게라도 빌어야 하는 처지다. 늦가을의 저수지는 누구라도 와서 멀리서 혹은 물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잠시 자기를 잊고 가는 곳이다. 멍하게 자기를 물결에 비쳐 보고 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 와서 사내는 무얼 축원하려는 건가. 가족의 누군가를 잃은 건가. 아니면 지병이 있는가. 그러나 비천하기란 하늘만큼이나 할까. 빈천하기 하늘만큼이나 깊을까. 하늘도 저의 빈천함을 저수지에 내맡기고 싶은 만추가 아닌가.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돼지머리는 먼 하늘을 향해 히죽거리고 있고 콧구멍 귓구멍 어디에도 지폐 한 장 꽂혀 있지 않는 빈천한 처지로도 히죽대며 웃기만 한다. 어느 산중이거나, 한갓진 곳도 아닌 대낮의 저수지 둑 위에 뭇사람들 지나가면서 쳐다보는 가운데 징과 바람과 돼지머리와 합장한 남자와 알아들을 수 없는 무당의 중얼거림. 어느 것 하나 빈천하지 않은 게 없는 만추. 바람에 물어볼까. 수면 물결에 물어볼까. 저수지 앞 높다란 황학산 앞에 무릎 꿇고 내가 빙의가 들어 그 남자에게 심경을 읽어 준다면 *“그 잡히지 않으며 태어난 가문이 없고 계급도 없으며 눈, 귀도 없으며 손발도 없는 영원하며 수없이 많은 생명체이며 어디든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아무런 특징도 들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세밀하며 변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인 그를 현명한 사람은 어디서든 보리라.”
*문다까 우파니사드 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