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돌담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기대고 있었습니다. 오고 가는 이 없는 산간벽지. 돌담은 무너져 퍼렇게 이끼가 끼고 나무는 혼자 돌담에 기댄 채 봄날을 맞았습니다. 어느 날 하얀 드레스에 광택이 나는 검은 구두를 신은 소녀가 손가방을 들고 지나다 말고 무너진 돌담에 걸터 앉았습니다. 들풀이 우거진 군데군데 야생화가 피었고. 파랑새가 지저귀는 반대 방향으로 복숭아빛 얼굴의 소녀가 문득 고개 돌렸을 때, 복숭아나무는 그만 저도 모르게 연분홍 복사꽃 망울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설렘이란 사람의 것만은 아니어서, 사람이 봄날에 설레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설레이듯 산간벽지 돌보는 이 없는 복숭아나무도 때론 사람이게 이리 설레는 마음을 터트리나 봅니다. 어느 날 당신이 문득 어느 꽃나무에게 고개 돌려주면 꽃나무는, 바깥의 성스러움을 뒤틀린 가지끝에 꽃을 내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