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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3. 2019

고흐 : 밤의 카페, 구월



구월의 밤. 사나흘 뜬 눈으로 지새워도 잠이 오지 않는 구월의 밤. 밤새 카페에 앉아서 나는 마지막까지 자리에 죽치고 있다. 옆 테이블에 늦깎이 연인은 밤새 마시고 이야기하며 떨어질 줄 모르고, 건너편 두 사내는 초저녁부터 부어라 마셔라, 떠들고 욕지기를 남발하더니  이내 머리를 주억대며 졸고 있다. 그리고 방금 막 카페에 들어온 흰옷의  중년,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당구대 앞에서 어떤 생각에 붙들려 있다. 구월의 밤, 만월 같은 가스등  불빛 아래  나는 턱을 괴고 엎드려  오랜 망상에 빠져 있다. 내면의 우울을 고스란히 닮은 카페의 공기는 망각과 일락의 농도를 짙게 한다.  구월의 밤은 누구나 술에 취하거나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 해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밤의 카페엔 사람보다 먼저 의자가 술에 취해 삐걱거리고 사람보다 먼저 사랑을 알아채는 가스등이  있다. 혹여 카페 앞을 지나다 가스 불빛이 당신을 부르거든 조용히 내가 앉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만 씁쓰레한 포도주나 한 잔 따르고 가시길, 그러면 나는 아무 말 없이 빙긋이 달처럼 당신 뒷모습을 잠깐 쫒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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