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즈피자

소리, 마음의 물질

by 일뤼미나시옹

" 하나만 사 주이소 밥 사묵구로, 하나만 사 주이소 밥 사묵구로"

-갓바위 입구에서 감 팔던 노인의 말



새벽 3시의 대구역 앞 택시들 줄 서 있고, 껄렁껄렁한 자세의 택시 기사들 한 잔에 오백 원 하는 커피 마시며, 한 달에 만 킬로미터 달린 차에 대해, 각자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길 건너편 주황색 가로등 불빛 받는 거리의 여자들. 찰랑찰랑 머릿다발 흔들며 질주하는 승용차들 손들어 세워도 보지만 멈추는 차 한 대 없어, 허연 달만 길 끝에 세워두고 놓아주지 않는다. 떠나고 싶은 달을 놓아주지 않는다.

롯데백화점 통유리 속 ‘루이 뷔통’ 가죽 가방의 탄력보다 못한 몸들. 가로등 불빛 받으며 서 있을 때 나는 그들이 해바라기로 변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그것뿐인가, 혀 꼬부라진 사내들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노래 부르다 고음에 이르자 핏대 세우며 부르던 노래 그만 죽어버리고, 다시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 나무 그늘 아래 술꾼들. 큰 물에 휩쓸려 온 돌덩이 닮을 자들. 먼 지방의 말투들 서로 충돌하는 새벽 세 시. 달도 어디 갈 곳 없이 웅크린 새벽 세 시 (Orbit/ Tore Brunborg)


https://youtu.be/54FjAvJ39xs



재즈를 듣기 전에 오랫동안 락을 들었다. 한참 락 음악을 들을 땐 걸어다니며 락 그룹들의 계보를 줄줄 외웠다. 그 시기엔 락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락의 흥미는 사라졌다. 특별한 동기 없이 자연스럽게 락에서 재즈로 넘어왔다. 아마 시를 공부하면서 재즈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락을 들을 땐 재즈가 좀체 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면 락과 재즈의 차이는 무엇일까. 락은 재즈 연주보다 더 많은 주제부의 약속이 정해진다. 재즈는 흐물흐물해지는 듯한 느낌의 유연성과 청자를 무력화시키는 이완을 강조하는 반면, 락은 강렬함과 일정한 질서를 유지한 채 진행된다. 재즈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움직임이 장점이라면, 락은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장점이다. 락이나 재즈는 모두 흑인 음악의 뿌리인 가스펠에서 출발하지만, 재즈는 보컬의 비중이 적은 반면 락은 보컬의 비중이 아주 크다. 락 음악이나 펑그 음악이 대중의 선호도가 높다면 재즈는 개인의 음악이고, 소수의 음악이다. 1970년대 재즈에도 락의 수용과 함께 재즈-락이 태동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재즈사의 신화적인 인물이 된 베이스기타리스트 자코 패스토리우스가 있다. (Jaco Pastorius/ Jaco Pastorius


https://youtu.be/pvjHT8Lepz8


다른 은행나무가 모두 물들어 가을의 진수를 보여주는 동안, 여전히 파란 이파리를 달고 있는 담 너머 은행나무 보며 저 나무 겨울이 되도록 물들지 않고 퍼렇게 내 입술을 시리게 할 것이라 생각했더니, 겨울 초입의 어느 날 낮잠 자고 일어난 사이 퍼런 기운 모두 벗고 노랑물 들어 여러 날 황금비늘의 몸으로 번쩍이더니, 무릎 시린 찬바람이 불어 이파리 일제히 바람에 휩쓸려 어디로 쫓겨가듯 굴러가는 동안, 바싹 마른 몸들에서 얕은 비명 소리 흘러나오고 몸 속 비명 모두 쏟아내고 나면 그때서여 하나 둘 새가 되어 날 것 같다. 하나 둘 겨우 하오의 햇빛 속으로 날아갈 것 같다. 지상의 이파리들, 봄 앞에 온데 간데 없는 건 모두 새가 되어 어디 먼 데로 날아 간 것이다. (Pure Joy/ Jens Thomas & Christof Lauer)


https://youtu.be/8CLcut06d5U


“그는 언제나 피아노가 지칠 때까지 쳤다.” 라는 말이 따라 다닌 버드 파웰은 텔로니스 몽크나 찰리 파커와 함께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다. 버드 파웰의 삶도 찰리 파커만큼 파란만장해서, 1945년 경찰에 맞은 충격에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고, 병의 악화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명반 「The Amazing Bud Powell. Vol 1)이 나왔다. 버드 파웰의 피아노 기법은 왼손으로 코드를 이루어 베이스 음계를 치면서 싱코페이션을 넣어 오른손의 긴 단일 라인을 도와주는 연주 기법을 처음 만들었다. 이후 20년 년 동안 재즈 연주법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피아노가 지치도록 쳤다.”라는 말은 과연 어떤 은유일까.


https://youtu.be/dwYLj-hMNQY


시골 농가 마당의 백철 냄비를 보면 어쩐지 전날 그 집에 심한 부부싸움이 일어난 것 같고, 큰바람이 그 집을 들쑤셔 놓은 것 같고, 리어카 끌고 양동이 이고 간 엄마 아직 난전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고, 집에 기르던 개를 전날 술꾼 아버지와 난봉꾼들이 잡아먹은 것 같다. 술 취한 아버지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아이들의 어깨는 바깥의 바람 소리에도 소스라치고, 백철 냄비는 눈뜨고 차마 볼 수 없는 어미의 통곡처럼 바람에 마당을 구르고, 어디 구석에 처박혀 오랫동안 집아 식구들 눈에 안 띄고 싶은 백철 냄비. 오줌보 가득 찬 아버지 술 덜 깬 발길질에 으스러지는 백철 냄비. 더운 손으로 만지면 쩍 들러붙는 한겨울 마당의 백철 냄비.(Changing Places/ Tord Gustavsen Trio)


https://youtu.be/uIUhplFZYhA


망가진 트럭


나는 지난 우기부터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망가져 곤혹스러워 하면서/거기에 그렇게 서 있습니다./그리고 이제 거기에서 싹이 나고 있습니다// 나는 보고 있습니다./ 한 자그마한 덩굴이/핸들을 향해 뻗어가고 있습니다./한 자그마한 잎이/경적을 울리고 싶은 듯이/그 옆에 구부리고 있습니다/아주 섬세하고 들리지 않는 듯한 한 두들김/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트럭 전체에./어떤 나사는 풀려지고 있습니다./어떤 쇠줄은 죄여지고 있습니다./망가진 트럭은/잡초의 두 손에./완전히 넘기워져 있습니다./그리고 타이어를 바꾸는 것을/잡초는 걱정하고 있습니다//내일 아침까지 모두 수리되어/내가 일어날 때/갑자기 경적 소리를 듣게 되고/부르릉 부르릉 소리를 내며/띤수까야나 보까잔을 향하여 트럭이 떠난다고/생각는 것이/내겐 얼마나 기쁨인지 모릅니다.//밤이 되고 있습니다./망가진 트럭은 그냥 그렇게 서서/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지금 그 트럭이 거기에 없다면/나의 도시./나의 사람들/그리고 저기에, 저기에/나의 집을/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나는 생각합니다.(Ghazal/Shujaar)


Bissière (Roger), Composition Rouge (Composition 344), 1957, coll part


즉흥 연주는 다르게 보면 소멸의 연속이다. 즉흥의 의미는 순간이미 음악가의 삶과 일맥 상통한다. 즉흥은 소멸을 위해 태어나는 음악이다. 소멸의 맛.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음악. 그것이 재즈다. 재즈의 즉흥 연주를 깊이 들어보면 글쓰기처럼, 한 곡의 연주 뒤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한 편의 시를 쓰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은 어지럼을 느끼고, 자기의 괴로움과 과능과 사유를 찾아낸다. 그 유목의 시간이 끝나면 마음은 자기 안의 숱한 선들, 얽힌 실타래 같은 선들이 모두 제거되었음을 느낀다. 우리는 바란다. 무엇이든 마음에 들어와 오래 남길. 풍경이든, 당신이든, 증오이든, 사랑이든, 마음은 차곡차곡 채워놓고 밖으로 내 놓질 못한다. 마음은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다. 이럴 때 마음을 어디 왈칵 쏟아내어 버리고 싶다. (the inkling/Nels Cline)


https://youtu.be/3w3RFqPRw7k


기도하며 등을 보이는 그는 젊은 시절에 나병이 찾아왔다. 그때, 그는 사귀던 약혼녀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고는 떠나라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철길 위에 자신의 팔 하나를 올려놓고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 찾아와 자신도 병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아카시아 울창한 동네. 나환자 정착촌에서 양계업을 하며 살았다. 아들은 자랐고 양계업은 번창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는 죽었고, 성인이 된 외아들도 겨울 밤 자동차 과속으로 죽었다. 나의 기억에 그의 아들은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약간은 불량스러워 보였지만 부모로부터 오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다. 어쩌면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더 밝게 살았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 청년의 연애는 어땠을까. 과속을 하게 만든 연애. 기필코 실패하고 말 연애.

지금 기도하는 저 손은 잔가지 모두 잘려나간 부위처럼 손가락 모두 빠지고 없다. 잃어버린 아들과 부인의 빈자리처럼 손바닥뿐인 손으로 기도하고 있다. 미사 끝나고 한참을 기도하고 있다. 아무도 흔들어 깨울 수 없는 기도. 이 현실에서 무엇을 더 바라지도 않을 기도. 봄 물 올라 잘리 나무에 새순이 돋아 오르겠지만, 그의 빠져버린 손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손바닥뿐인 손으로 만지던 아침 계란의 따뜻한 온기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Ghosts/ David Liebman)


https://youtu.be/voh5VGGkf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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