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즈피자

이 생이라는 춤의 끝

돌이 돌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by 일뤼미나시옹




https://youtu.be/uCcSDPlRhQA

거제에서 지심도 가는 뱃머리에 나는 서 있었다. 지심도는 일명 동백섬이라고 해서 섬 전체가 동백나무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천에 널브러진 동백꽃을 상상하며 뱃머리에서 멀리 지심 도를 보고 있자니, 뱃머리를 스치며 똑딱선 한 척이 지나갔다. 어질러진 어구들 사이에서 사내둘이 해풍에 씻기고 짠물에 쩐, 까매진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똑딱선은 위태위태하게 남해의 파고를 넘어 뭍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 똑딱선 따라 갈매기 떼들도 날개를 저으며 똑딱선에서 풍기는 비린내를 따랐다. 희고 번쩍이는 날개들이 사내들의 머리 위에서 춤추었다. 어구들 사이에 앉은 사내들 표정 보다 만 배나 기쁘고 즐거운 춤이었다. 그래, 그 즐거운 갈매기들 춤은 배에서 틀어놓은 뽕짝 음악 리듬 때문이었다. 배는 바다 위가 외로워서 파도가 필요하고, 사내들은 바다 위가 외로워서 뽕짝 가락이라도 들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갈매기 떼 몰고 가는 배들을 ‘뽕짝船’이라 부르기로 했다. 뽕짝선 따라 갈매기들 삐뚤삐뚤 날개를 저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 똑딱선 뱃길 따라가면 성진이가 양소유로 변해 갔던 꿈길로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팔 낭자와 함께 허무를 보기 직전의 가을빛 완연한 전망대에서 옥피리 소리 내며 음주가무 하던 곳. 그 꿈길로 가는 뽕짝선 나도 한 번 탈 수 있을까, 생각했다. 허울 허울 날아가는 갈매기 몸짓에서 양소유와 팔선녀들 춤추고 놀았을 장면 생각했다. 허무가 오리라 생각지도 않았을 춤. 모든 춤 속에 숨어 있는 허무를, 춤이 멎고 나면 찾아오는 허무를, 생각했다. 이 생이라는 춤의 끝을.



물가에 앉았다 온다. 물가에 앉아서 봄물 내려가는 소리 듣고 온다. 사람들 발길 없는 봄산 봄물 흐르는 얕은 계곡 잠입하듯 스며든다. 거기서 아무도 모르게 물을 읽는다. 돌을 스치는 물. 돌에 엉겨 붙는 물. 돌 속에 사나흘 유숙하다 떠나는 물. 돌의 엉덩이를 핥는 물. 돌의 자궁에서 흘러나온 물. 눈으로 읽고, 귀로 읽고, 손끝으로 읽는다. 바람이 번역해준 봄물을 읽는다. 나뭇가지가 번역한 봄물도 읽는다. 지난 가을 떡잎이 내려앉아 종이장판처럼 같은 바닥 훤히 들여다보이는 봄물. 내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오래된 책을 닮은 봄물. 복사꽃 한그루 흠칫 흠칫 봄꽃을 내놓는다. 봄물을 먹고 물을 번역하고 있다. 봄물에 담근 손, 손금으로 들어오는 식물의 시간. 나도 봄물을 번역하는 시간.

봄물은 절제한다. 봄물은 흐르다 잠적한다. 봄물의 여행은 짧다. 당신이 어디선가 봄물에 손 담그고 있다면, 내 손금을 빠져나간 봄물이다. 봄물이 내 생의 일부를 해독하고 당신에게로 갔다. 내가 누구에게 생의 일부를 해독하게 하리. 누구에게 내 마음을 풀어놓으리. 나도 번역할 수 없는 생. 이 비밀이 당신에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봄물에게 번역을 허용했다. 흔쾌히 내 생의 번역을 허락했다.


https://youtu.be/pMRmCAiC5TM



자정 넘은 24시간 영업하는 뼈다귀 해장국집에는 회색 일복 입은 청년 둘 말 없이 없었다. 태레비 안에는 천연색으로 웃고 떠드는 연예인들. 거기로 가끔 고개나 돌리면서 말이 없었다. 뚝배기 안에는 붉은 고추기름의 푹 익은 돼지등뼈. 그들은 뼈다귀에 달라붙은 살점을 발라내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살점을 살살 달래며 발라내고 있었다. 술도 없었고 말도 없었다. 천연색으로 웃고 떠드는 태레비 속으로 고개나 돌려줄 뿐이었다. 큰 길 건너는 불 꺼지지 않는 공단. 작동하는 기계들 틈에서 막 빠져나온 그들. 그들은 기계들 틈에서 체득한 침묵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살이 없어 보이는 마른 어깨뼈 들썩이면서 살점 발라내고 있었다. 그들 침묵에는 폐유 같은 끈적거리는 괴로움이 있었다. 태레비 안에는 마르지 않는 천연색 웃음. 들끓는 웃음을 흘끔거리며 깍두기 두 접시 비워내며, 울먹거리는 어개동작을 등뼈의 살점 발라먹는 야식. 누구나 그런 야식 한적 있다. 자리 뜨고 일어난 식탁에는 살점 없는 그들 어깨뼈 수북이 내려놓고 갔다. 희고 환한 침묵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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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 코리아의 1970년 앨범『 Circulus』를 듣는다. 맑은 날이다. 마당을 쓸고 황사 낀 유리창에 물을 끼얹고 나뭇가지에서 반짝거리는 새소리를 듣고 살비듬 같은 살구꽃들 마당에 흩어지는 것 보면서 첫곡「Drone」을 듣는다.

베리 알출의 퍼커션과 데이브 홀랜드의 베이스로 시작한다. 간헐적이면서 암시적적인 베이스의 짧은 신호. 장식적이면서도 청자의 내면에 금속성의 의식을 자극하는 퍼커션은 도입부에서 이미 청자를 정지와 몰두의 자세를 취하게 한다. 베이스의 묵시록적 암시와 어두운 배경으로 피아노가 등장한다. 피아노 또한 반복적인 중얼거림을 연속으로 읊는다. 조용하고 간결하지만 긴장된 내면의 울림을 반복한다. 말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수화를 상상하게 한다. 살짝 살짝 꼬리만 내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피아노는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끝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베이스는 완전한 침묵과 베일을 보여준다. 퍼커션은 피아노의 주술 뒤에서 달과 꿩의 깃털을 흔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마음먹은 이야기는 애초부터 할 의양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 같이 내면에 두꺼운 층위의 말이 들어 있다. 말이 아니라, 주술언어다. 각각의 주술들은 청자의 자세와 청자의 시간. 청자의 침묵의 강도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이다. 술에 취한 자들의 간헐적인 이야기. 그렇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 절실한 말들이 취기의 언어로 바뀐 것과 같다. 피아노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격렬한 몸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덩달아 퍼커션과 베이스도 함께 격한 반응을 드러낸다. 어느 것 하나가 주인공이 아니며 각각의 악기들은 각각의 취기와 광기를 드러낸다. 개개의 악기들은 자기만의 광기와 언어를 토해낸다. 교감의 언어는 기대할 수 없다. 어느 한 악기도 주인공이 아니고 조연도 아니다. 그렇다고 관객의 입장 또한 아니다. 전체가 하나의 공기 속에서 하나 같이 자기만의 시적, 접신의 상태에 빠져 있다. 마치 명절날 가족 친지들이 모였지만 유독 말수가 적은 우리 집안 식구들. 큰방 제사 직전의 말 없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듯이. 모두들 마음에 들어 있는 말을 선뜻 내 놓지 않듯이. 피아노와 베이스 퍼커션은 서로에게 소통하거나 말 걸기, 또는 앙숙처럼 대립적이지도 않다. 전체 연주 시간은 22분. 베리 알출의 드럼과 퍼커션 연주에서 나는 새로운 재즈 언어를 읽는다. 연주는 70년 식 재즈 언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적이고 강박적이며 일정한 거리 이상 접근을 불허하는 아우라를 드러낸다. 말을 시작 전에 이미 내재된 언어를 가지고 있는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할까. 칙 코리아의 피아노는 이 앨범에서 독특한 위상을 드러내진 않는다. 마치 글쓰기 강박관념에 시달리면 써내려 가는 글쓰기라고 할까. <Chick Corea/ Circulus/ Drone>


https://youtu.be/RwvJPi8yCQ4


제비꽃이 왔다. 마당으로 나가는 현관 앞 돌 틈에 제비꽃이 왔다. 봄볕을 쬐며 괭이잠을 자고 있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살게 될 봄꽃으로 왔다. 남국의 어느 집 툇마루에서 풀피리 불어 보낸 사랑노래로 왔다. 남풍을 타고 오는 사이 이틀 봄비를 맞고 왔다. 어느 집 툇마루에서 보낸 자줏빛 사랑의 징표. 그러나 바람배달이 잘못 된 사랑의 징표.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가까이 보고 있는 사랑의 징표. 바람배달이 잘못된 줄 알지만 내 눈에 심어 뿌리내리게 하고 싶은 제비꽃. 풀피리 연주를 멈추고 허공에 길게 한 호흡 흘려보낸 장탄식 그대로 마당 돌 틈에 앉아 있는 제비꽃. 유일한 한 사람에게 유일한 은유가 되어야 할 제비꽃. 지문처럼 드러나지 않는 심중의 은유를 내 눈은 보고 있다. 제비꽃의 주인은 누구인지. 어떻게 돌려보낼 방법도 없는, 잘못 배달된 줄 알지만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제비꽃.


https://youtu.be/ALNMtWY7pRY


우륵박물관 마당에 유치원생들 봄 소풍 왔다. 고것들 중에 분홍과 파란 음료수병 들고 있는 여자아이 둘. 서로가 서로를 뾰족 뾰족 갓 핀 봄꽃으로 바라보며 발그레하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어찌 그리 뾰족족하니 싱그러우냐. 한 애가 제 병 뚜껑을 뒤집어 내밀자 앞에 애가 분홍색 음료수를 채워준다. 그리곤 저도 병뚜껑 속을 보여주자 이내 파란색 음료수 몇 방울 채워진다. 고것들 앞에서 내 입안도 새콤달콤 침이 괸다. 봄물 오른 수양버드나무 맛이다. 어른이 되면 잃어버리는 맛. 어른이 되면 가까이 하지 않는 맛. 새콤달콤. 매일 만나도 뾰족족하니 싱그러운 새콤달콤한 눈빛. 어른이 되면 사라지는 눈빛. 고것들 얼굴이 새콤달콤한 봄날. 세상의 봄꽃들이 받아 마시는 햇살의 맛도 새콤달콤한 맛이다. 할아버지가 손녀딸 바라보는 눈빛의 맛도 새콤달콤이다. 어린손목뎅이 잡고 산책 나가서 만나는 얼레지와 손녀딸이 들판으로 내뱉는 옹알이도 새콤달콤이다. 어른이 되서 잃어버린 새콤달콤. 우륵박물관 들어가서도 내내 입안이 환했다.


https://youtu.be/sxz9eZ1Aons


그 집이 사라졌다 논 팔고 집 팔고 중병의 아버지를 데리고 자식들은 고향을 떠났다. 어릴 적 하늘에서 쌀가루 같은 눈이 나릴 때 빙빙 돌며 눈 받아먹었던 마당에 지금은 동네 쓰레기들 모여들고 잡풀이 쓰레기들을 감추고 지린내가 나고 밤고양이들 교미 장소로 바뀌었다. 남향의 기와집은 포클레인에 내려앉았고 덤프트럭에 실려 사라졌다. 그렇게. 동네의 혐오스런 장소가 되는 동안, 도시로 떠난 일가족 중에 나 보다 네 살 많은 형은 우울증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중병의 어른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겹쳤다. 기억 속 그 집 마당엔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가 있었고, 가을이면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가득한 참 부러운 마당이었다. 언제였던가! 내가 그 집 막내의 대빗자루를 빼앗아 말끔히 쓸어주었던 황금빛 마당. 묵언 수행자가 입을 열어 읊조린 경전처럼 평화롭고 따뜻했던 마당. 또 하나 기억난다. 마당의 북쪽에는 석류나무를 목마르지 않게 키우던 돌우물도 있었는데.



https://youtu.be/NWmCbEbMmeU


가을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전신에 가을 햇살 칭칭 감고 있는 가을나무 밑으로 갔다. 나무가 고향이고 나무가 성소이며 나무의 신자인 새들이 반짝거리는 성가를 부르는 가을나무 밑으로 갔다. 잎잎마다 금도금을 한, 종이창문처럼 바람에 떠는 가을나무 밑으로 갔다. 올려다보면 페가수스 천정을 한 가을나무 밑으로 갔다. 나무 밑에 멈춰서면 나무만이 알고 있는 나의 잠적. 향피리 불며 페루나 안달루시아 골란고원으로 달그림자 끌며 도보여행하고 온 가을나무 밑으로 갔다. 피로와 인식 그리고 어떤 해탈의 모습으로 서 있는 가을나무 밑으로 갔다.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의 발치에 내려놓는 가을나무의 말들은 페루나 안달루시아 골란고원의 발음처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스미는 나무의 말은 오후가 다 가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안다, 사랑이 뭔지 당신은 아는가? 하고 묻는 이의 마음이 가을나무 안에 있다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돌이 돌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이파리들 바람여행을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에서 사라지는 감정들. 우리들 마음 속 페가수스 무한 별무리 닮은 세세한 감정들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세월과 일상과 밥벌이에 빼앗기는 은밀하고 사소하며 내밀한 감정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어떤 물길 우리 옆을 흘러가며 우리를 아프게 하듯, 어떤 노래는 따라 부리지 않아도 우리 입술에 묻어 바르르 떨듯. 어찌하겠는가, 돌이 돌의 여행을 하며 깎여나가는 제 부위를 알아챌 수 없듯,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그 무엇. 그것이 그리워 내가 가을나무 밑으로 걸어간다는 것을. < Keith Jarrett / Radiance >


https://youtu.be/LnzREknbg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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