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게 맡겨진 이 삶을 사랑한다.
맨발로 들어야 한다. 빈 방에서 들어야 한다. 심한 감기 몸살을 앓거나 몇 날을 죽이나 물을 마신 위장을 한 채 들어야 한다. 지쳐 쓰러질 듯 한 육체를 서늘한 벽에 기대고 들어야 한다.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들어야 한다. 하루 종일 집 밖을 나가지 않아야 한다. 전화 코드를 뽑아야 한다. 휴대전화기도 꺼야 한다. 남루한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온 오래된 면바지를 입고 들어야 한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수국이나 한 송이 키우면서 들어야 한다. 까뮈의 문장을 읽으며 들어야 한다. 잿빛을 생각해야 한다. 까뮈의 문장을 읽으며 들어야 한다. 창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 먼지가 햇살 타는 걸 보아야 한다. 가슴에 무언가를 심고 들어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들어야 한다. 찬물에 발을 씻고 들어야 한다. 희고 고운 봄꽃들을 생각하며 들어야 한다. 아침부터 밤이 올 때까지 들어야 한다. 밤을 꼬박 세며 들어야 한다. 절벽, 절벽을 생각하며 들어야 한다. 새벽이 파랗게 오는 걸 만나야 한다. 귀 안에 눈을 품어야 한다. 귓속에 눈을 넣어야 한다. 귓속의 눈이 마음에게 가도록 들어야 한다. 괴로움과 거북스러움이 밀려오더라도 참고 들어야 한다. 어떤 비명이나 괴로움의 탄식이 흘러나오도록 들어야 한다. 나무의 수액이 나무 밖으로 흘러나오는 듯 한 탄식. 괴로움이나 탄식이, 혹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온 몸에 흘러내리도록 들어야 한다. (Paris Concert/ Keith Jarret/ ECM)
농협 365코너 앞 뻥튀기 쌀과자를 산더미로 쌓아놓은 트럭이 있다. 희고 부품한 뻥튀기 쌀과자들 봄꽃처럼 화사하다. 혀끝을 갖다 대면 금세 녹아버릴 희고 부품한 쌀과자를 보자니 내 마음 몹시도 부풀어 오른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 한 번도 흥얼거리지 못한 가락, 혹은 마음의 탄식이 일어난다. 봄밤에 희고 가벼운 것들을 보자니 마음이 몹시 아리고, 털썩 주저앉으면 봄밤이 끝나도록 일어나질 못하겠다.
아까부터 트럭의 주인은 커다랗게 트로트를 틀어놓고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며 노점 앞을 어슬렁거린다. 나의 귀는 세상의 노래란 노래 모두에 관심이 있는 터라, 남자의 노래를 몰래 귀담아 들어본다.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 탓에 노랫가락에 물기라곤 찾아 볼 수 없이 몹시 탁하고 까칠까칠하여, 키득키득 웃음이 나올 것도 같지만. 그래도 노래는 노래인 것. 희고 고운 목련꽃잎 닮은 쌀과자들 들썩들썩 일어나 꽃잎처럼 날아갈 트로트. 내 마음도 그렇게 희고 가볍게 따라 불러 들썩거릴 트로트. 희고 가벼운 것들 모두 이 봄밤 어디 멀리로 사라지게 할 트로트. (One on One/ Clark Terry/ Chesky)
말함의 본질적 가능성의 하나인 침묵함도 동일한 실존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서로 함께 말하는 가운데 침묵하고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보다 더 본래적으로 ‘이해하게끔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해를 형성할 수 있다. 어떤 것에 대하여 말을 한다고 해서 이해가 증진된다는 보장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장황하게 말함은 이해된 것을 은폐하고 거짓 명료성 속으로, 다시 말해서 진부함의 몰이해로 이끈다. 그렇지만 침묵함이 벙어리로 있는 것은 아니다. 벙어리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벙어리는 그가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애당초 그런 것을 증명할 가능성조차 없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말수가 적은 사람도, 벙어리와 마찬가지로, 그가 침묵하고 있고 침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주어진(결정적) 순간에 침묵할 줄도 모른다. 오직 진정한 말함에서만 본래적으로 침묵함도 가능한 것이다. 현 존재는 침묵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본래적으로 풍부하게 열어 밝힐 처지에 있어야 한다. 그때에 침묵하고 있음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잡담’을 눌러버린다.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노란 버스가 두 아이를 내려놓고 갔다. 자궁을 빠져 나온 짐승이 처음 발 디딘 세계의 딱딱함에 놀란 듯, 둘의 몸은 이내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눈앞의 길과 통유리창의 건물들 속의 내용물들이 흔들린다. 둘은 서로의 비척거리는 몸을, 정신과는 무관하게 놀아나는 걸음을, 서로의 손으로 결박하듯 강한 유대로 맞잡고 걸어간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잇몸이 드러나게 히히닥거리며, 백치의 얼굴을 사방에 번쩍거리면서, 나무들이 가지 끝에 꽃송이 매달 듯 꺾인 손을 빙빙 돌리며, 내장이 덜컹거리는 몸들이 거리를 걸어간다. 비틀거리는 몸 바로잡으려는 걸음 죽을 때까지 해야 하기에, 평생을 몸부림치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기에, 신발 앞이 닳고 닳는 걸음 평생을 걸어야 하기에, 한 번도 비관 없이 히히닥거리며 가는 두 아이의 산책. 아주 뜨거운 산책을 나는 보았다. (Pithecanthropus Erecdtus/ Charles/ Charles Mingus/ Atlantic)
강태환의 『Tokebi』앨범을 듣는다. 프리재즈는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듣기 힘들다는 프리재즈를 왜 연주하고, 왜 그것에 마니아들은 미치고 열광하는가. 듣기 힘들다는 점의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프리재는 매우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순수함은 바로 직관이다. 의도와 약속 없는 연주는 단순한 기교와 난해한 텍스쳐의 문제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수한 의도며 발화이다. 앞선 문장이 뒷문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시 쓰기와 닮았다고 할까. 재즈는 이성의 배제에 다름 아니다. 무슨 의미를 발견할 것도 없이 순수한 안식에 빠진다고 할까. 순수하게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귀에 들리는 소리를 그냥 소리로 받아낸다면 프리재즈의 미학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재즈는 그 어느 음악보다 휴식의 음악이고, 안식의 음 악이다. 어린아이들이 편견 없이 사물을 받아들이고 사물에 관심을 가지듯이, 자기를 풀어버리는 것. 자기에게 치우쳐진 관심을 버리는 것. 수수방관하는 것. 자기의 의식을 버리는 것. 그것을 듣는 것. 그것이 재즈 듣기가 아닐까. (Tokebi/ Kang. Tae Hwan/ Victor Music Entertainment)
커다란 고무통에 돼지머리들이 쌓여 있다. 몸뚱이를 버린 머리들이, 안면 면도가 깨끗이 된 머리들이 뒤엉켜서 서로의 코를 맞대고 웃고들 있다. 몸뚱이가 붙어 있었을 때 머리들은 꽥꽥거리기만 했다. 나날이 울부짖는 날들이었다. 비대해지는 몸뚱이들이 서로를 경멸했다. 아가리가 아가리를 물고 거품을 흘렸다. 먹어도 배가 고팠다. 커다란 고무통의 머리들 배고픈 기억을 버린 머리들이 서로를 깔아뭉개면서 웃고들 있다. 저희를 먹고 있는 식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웃고 있는 머리를 먹고도 바깥에 나가면 웃지 않는 자들을 돼지머리들이 바라보고 있다. 시퍼런 칼날이 웃고 있는 머리 하나의 귀를 자르고 있다. (Prima o Poi/ Giovanni mirabassi/ Minitum)
꽃나무
-이상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가 하나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 (Legendes/ Renaud GarciaFons/ Enja)
커피 전문점 앞 입구에 놓인 동백. 굵은 철사가 칭칭 감고 있는 동백. 그래도 제 몸의 붉은 살점 도려낸 듯 붉은 꽃 하나 매달아 놓은 동백. 내가 한 아이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했을 때, 오래도록 받질 않아 끊으려고 할 때, 멀리서 촉수 낮은 알전구 켜지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곤한 잠에서 겨우 일으킨 몸에서 나온 음성. 밤 새워 공장일 하고 돌아와 하오의 잠을 자는 여인의 몸이 만들어낸 말. 커피전문점 앞 동백나무 화분 밑에는 힘없이 제 빛을 잃어가는 꽃망울 하나 떨어져 있다.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시름시름 색과 향기를 잃어가는 동백. 괴테는 죽어가면서 빛을 달라고 했다는데, 가지 끝에서 한 철 지나자마사 싯누렇게 앓고 있는 동백의 하오여. 핏기 없는 안색을 하고 돌아와 잠이라는 가지 끝에 매달린 동백꽃 한 송이 같은 몸이여. (Hidden History/ Eric Vloeimans/ challenge
덱스터 고든의 색소폰은 언제 들어도 그 질감이 솜옷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안색이 좋지 않거나, 사랑하며 사는 일에 힘이 들거나, 잡다한 직무에 휘둘려 지친 몸에게 더 없이 좋은 보약과 같다. 그의 색소폰을 들으면 재즈의 본래적인 맛이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그의 색소폰에는 생소하거나 낯선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색소폰은 시골의 한가로운 들길 같으며, 봄날의 바람과 나비를 보여준다. 오래 신어 낡았지만, 아늑하고 편안하기 그지 없는 구두 같은 느낌이다. 하릴없이, 안일하게, 게으르고, 목적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것. 무엇을 보고자 하는 의지도 없이, 느끼려는 의도도 없이, 밤을 배회해 보는 것. 덱스터 고든의 색소폰은 우리에게 삶을 사랑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정열적이거나 미치도록 삶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이 삶을 사랑하게 하는 에너지.(Dexter Gordon/ Our Man In Paris/ Blue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