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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정원 Dec 29. 2020

시골쥐와 서울쥐

나의 살던 변두리는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서울의 변두리 중에 상 변두리 공항동이라는 동네였다. 대부분의 공항이 그렇듯이 공항은 대도시로의 관문이니 서울이 시작되는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넓은 활주로가 있으려면 아무래도 허허벌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곳은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시골일 테고, 동시에 도시와의 접근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도 나름 잘 발달되어 있어야 했다. 내가 살던 변두리, 공항동은 시골이긴 시골이지만 엄연한 서울이었고 나 역시 그러한 장소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시골쥐와 서울쥐의 두 환경, 두 가치관, 두 정체성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고 번민하며 살아온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김포 공항 전경 - 분수대는 아무리 찾아봐도 사진자료가 없다

놀 때도 이렇게 시골과 도시를 넘나 들었는데, 예를 들어 여름이면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서 놀기보다는 공항 안에 있는 분수대에 가서 첨벙첨벙 발을 담그며 놀았고, 한편 겨울이면 실내 아이스링크는 커녕 텅텅 빈 논바닥에 물을 대어 얼린 스케이트장에서 얼음을 지치곤 했다.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처음 보게 되는 어린이들이 바로 분수대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던 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원 달라 원 달라, 기브 미 쪼코렛 하던 전쟁 고아들과 별 차이도 안 느껴지는 가난한 나라의 남루한 어린이 모습으로 보이지나 않았을까 싶다.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괜스레 나라 얼굴에 먹칠한 것 같아 미안해지려고 하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급스러운 워커힐 야외 수영장

때로는  종점이었던 김포공항에서 또 다른 서울 시내의 종점인 워커힐 호텔까지 공항버스를 타고 간만의 나들이를 즐기곤 했는데. 세련되고 화려했던 워커힐 호텔 야외 수영장을 어떻게 알아 내었는지 거기까지 동네 애들끼리 도시락까지 싸 갖고 가서 놀다 오곤 했다. 이것이 과연 도시의 아이들의 면모였던 것인데 그 이면에는 엄마가 정성껏 싸 주신 도시락을 누구라도 훔쳐 갈까 봐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망을 보며 놀던 기억이 웃프게 난다. 도시골의 아이들이었던 우리는 겨울에도 가끔 실내 수영장에 가서 첨벙첨벙 수영을 하기도 했는데, 때는 바야흐로 88 올림픽을 눈 앞에 둔 대한민국이었고, 이에 발맞추어 국민 체육 증진에 최선을 다한 덕택에 나름 변두리 중산층(?)이었던 우리 집도 겨울에도 실내 수영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쟤들이 신고 있는 것이 롱 스케이트! 나 진정 저러고 놀았단 말이냐? 

겨울이면 집 근처 논에 물을 대 놓고 비닐하우스로 개장한 스케이트장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케이트를 탔는데 한 번 들어가는데  입장료는 500원이었다. 지금이야 500원이 아이스크림 하나 값도 안 되지만, 그 당시로는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한 번 들어갈 때 아침 일찍 문 열 때 들어가고 ‘문 닫는다 나가라’ 할 때까지 타고 돌아와야 보람찬 겨울방학의 일기장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

추수가 끝난 벌판에서 지푸라기나 잔가지들을 모아다 불을 피워 쬐어 가며 놀았고,  벌판 넘어 야산에 띄엄띄엄한 무덤가를 탐험하며 떨어진 솔방울을 수류탄 삼아 던지며 놀다 오곤 했다.  







우리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절대 따라다니지 않으셨다. 나는 두 살 위 언니와 연년생 남동생이 있다. 거의 쪼르륵 연년생인 삼 남매였으니 놀 때는 정말 죽이 잘 맞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엄마 역시 우리 셋을 어디다 내어 놓아도 그다지 불안해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둘이면 좀 불안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셋이니까, 게다가 드센 계집애 둘이 첫째, 둘째이니 막내아들 내미 챙기는 것도 눈 딱 감고 맡기셨던 거 같다. 물론 항상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도 생각해 보면 겨울이면 스케이트 탈 생각에 여름이면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수영할 생각에 언제나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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