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일요일] 11_우리집문제(오쿠다 히데오)
또 한 번 가을비가 꼭대기 구멍으로 빨려 들어와 땅속으로 이어진 파이프를 통통 치면서 떨어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리드미컬한 그 소리에 내 마음도 흘러내린다. 그러면서 약속이 떠오른다. 이 비가 씻어낸 가을이 온 대지를 타고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짙은 겨울을 깨워 흔들 거라는 익숙한 약속.
익숙한 스물두 번의 약속은 그해 가을, 지하철 옆 2층 카페 창가에서 시작되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처겅처겅 처겅처겅 퍼버벅촤아 하는 기계음이 꼬옥 잡은 우리 둘의 손등을 지나 각자의 가슴에 고스란히 와닿았다. 그렇게 이어진 온몸의 혈관, 신경, 근육이 온기와 시선이 되어 서로에게 가 닿아 위대한 약속 중이었다.
#서른두 살의 남편은 신혼인데 집에 들어가기 싫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소소한 자기 시간과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다. 야근을 핑계로 회사 동료들이나 혼자 시간을 쓰다 귀가한다. 전업주부인 아내는 남편 돌봄. 특히 식사준비에 애면글면한다. 남편은 그런 모습이 더욱 적응이 안 돼 한다. 시간이 아깝지 않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 같이 있을 땐 아내에게 정성을 다해 응한다. 배불러도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고 집안일도 같이 하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음식을 사다 놓고 대응이 뚱하다. 그러다 서로 결혼 후 처음으로 진심 어린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 못살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참으면서 대면대면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 결과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모두 지인들에게 결혼 생활에 관해 조언을 구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중 아내의 결혼 전 직장 상사인 부장에게 들은 조언을 실천하기로 한다. 신혼부부는 얘기 도중에 제대로 부부싸움을 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둘은 결혼식 피로연에 대한 의견 차이부터 토해낸다. 그러다 보니 둘 다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낀다.
사람도 기계도 장소도 시간도 때가 끼기 마련이다. 오랜 세월 속에서 그렇지 않다는 게 이상하겠지. 그 때를 때맞춰 벗겨내줘야 한다. 그래야 제 기능들을 발휘한다. 커다란 불이 날 위험도 줄어든다. 그냥 보기에도 좋다. 지나고 나서 돌아 보면 기회비용도, 감가상각비도 저렴해진다.
커다란 케이크가 하나 있다. 이 케이크를 거기에 모인 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려 한다. 어떻게 나눠주는 게 가장 공평할까. 그럼, 때맞춰 때를 벗겨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두 질문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다 안다. 그 공통점을.
다 알지만 가장 하기 쉬운 실수다. 누군가가 짜잔 하고 나서서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심리적 기대기. 케이크를 가장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 그 방법을 거기에 모여 있는 구성원에게 묻는 절차. 이 절차를 건너뛰기 쉽다.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다. 나누는 방식보다는 그 결정에 나의 의견이 반영되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여야 들린다. 커플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타인이라도. 당연히 세상의 존재하는 어떤 형태의 커플이라면 더욱. 오쿠다 히데오는 소설 속에서 아마 이런 메시지를 남기려고 한 건 아닐까. 부부는 서로 솔직하게 대하면서 평생 맞춰가는 남이라고.
남처럼 살지 말고 나처럼 사는 시간을 늘리는 거, 부모 세대처럼 살지 말고 우리처럼 사는 시간을 더 늘리는 거, 그게 어떤 케이크도 기분 좋게 마음으로 나눠 먹고 더 건강해지는 비결이 아닐까. 세상 모든 커플들이 매 순간 해결해 나가야 할 인류의 과제다. 커플로 시작해 부부가 되고 능숙한 파트너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오늘 같은 휴일. 능숙한 파트너가 되는 연습하기, 딱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