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주는 것

[읽고 쓰는 일요일] 10_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by 정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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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한국의 한 여성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등받이가 뒤로 젖혀질 수 있는 최대한 젖히고 누웠다. 이내 뒷자리 승객이 항의했고, 운전기사가 나서 '조금만' 세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만큼' 젖혀지게 만들어 놓았으니 최대한 그 기능을 이용하겠다고 끝까지 버텼다. 젖혔던 의자를 조금 세우고, 뒷자리 승객이 비어 있는 다른 자리로 옮기자는 기사의 중재안을 받아들여졌다.


1955년 12월, 미국. 하루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한 여성 역시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 백인이 버스에 올랐다. 운전기사가 나서 그 여성에게 자리를 백인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이유는 그 여성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양보하지 않은 여성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지역에서는 1년에 걸친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고, 마침내 공중 교통에서 인종 차별을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것이 다른 상황의 두 이야기가 오버랩되는 건 순전히 나의 입장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버스라는 장소가 동일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맞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무의식적 차별 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어서다. 위 두 사건(?)을 알려 내는 기록의 심해에는 인간의 모든 것 - 종, 성, 역할, 역량 등 - 에 대한 차별 의식이 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약 70년 전에 출간된《앵무새 죽이기》. 2015년 속편인 <파수꾼>이 출간되기는 했지만, 하퍼 리의 유일한 작품이다. 아홉 살의 어린 소녀가 어른들로부터 강요받는 ‘선입견’과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꾸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물론 그 과정에 동행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역시 어른들이기 때문에. 이는 특정한 시간과 지리적 공간 속에서 세대 간에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문화적 답습 또는 의도적 교육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기로 강렬하게 비친다는 느낌을 받는 건 나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주인공 스카웃이 제도 내의 교육을 거부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큰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스카웃에게 학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것 - 논픽션 세상에서 우리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픽션 속 그 어른들 역시 사실 물려받은, 또는 몸과 마음에 내재화되어 버린 것들이지만 - 들을 비판하지 않고, 전해주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강제된 곳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강제는 가족 내 또는 마을공동체 안에서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밖 공간은 스카웃에게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세속적인 내용의 책중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앵무새 죽이기》. 70년이 다 되어가는 문학작품이지만, 2023년 지금의 사회구조에 플롯 그대로 투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팩트인 것 같다. 또 하나의 팩트는 지금도 수많은 스카웃들에게, 여전히 가혹하리만치 강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주 점잖고, 스마트하고, 저속한 방식으로.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불행과 공존한다. 가장 다행인 점은 지금의 수많은 스카웃에게는 학교 밖 세상을 접할 수 있는 물리적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의 스카웃들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스카웃 주변에 있는 어른들의 몫이다. 의자를 그만큼 젖혀지게 만든 것도 어른이다. 의자 간격이나 사람들의 체격을 연구해서 수정해야 하는 것도 어른이다. 징징거리기만 하는 스카웃들을 고쳐내기 위해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도 어른이다.


제도권에서 나를 지나쳐 간 수많은 스카웃들도 이제는, 구조화된 세상속에서 어른이 되었다. 그중에는 직접 스카웃을 실천한 아이들도 여럿이다.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스카웃 추종자들에게는 수많은 어른들의 앵무새 흉내 -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하고, 또하고, 어제 했던 말 또 하는 - 만 내는 무기력한 존재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썩어 가는 뿌리는 그대로 둔 채, 눈에 보이는 곁가지만, 이파리만 쳐내는 그런 어른들로.


다만《앵무새 죽이기》속 스카웃이 사람 사는 진리를 알아가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 지금의 스카웃들은 풍요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풍요롭게,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만을 고민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가장 큰 차이점을 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적절한 결핍'의 경험치이니 말이다. 스카웃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안내자 역할을 맡았던 어른들. 오늘날의 수많은 애티커스 핀치, 헨리 라파예트 듀보스, 모디 앳킨스, 알렉산드라,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처녀작이 퓰리쳐상을 받은, 평생 유일한 작품이 된 그녀에게 누군가가 다음 작품을 왜 쓰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의 대답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만이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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