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투 버튼

[일나쓰] 5 ... 사진(hellot)

by 정원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잘 모른다. 그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것도 역시 잘 모른다. 지금,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건 물어보면 안 되는 거다.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서 있는 저 신전의 수많은 기둥. 그 옆에 다소 불안하게 기대어 서서 다음 기둥으로 옮겨 갈 타이밍조차도 잡기가 쉽지 않은 나이기 때문에. 마구 쑤셔 넣는 법만 배우다 꾸준하게 비워내는, 게워내는 법을 놓쳤구나, 하고 이제야 조금씩 알아갈 뿐인 나이기 때문이다. 어찌어찌하다 여기 있는 이게 나이기 때문에. 밀림 속 어느 부족이면 차라리 더 나아졌을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는 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데 어, 나도 사람인데. 그럼, 사람은 바뀔 수 있는 건가. 그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도? 하지만 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에세이,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이 꾸준하게 지금도 팔리고 있는 거라는 것을. 그렇게 변했다면, 세상의 수많은 어찌어찌족들은 읽지는 않고 다 쓰고만 있을 테니까. 숨이 끊어지기 전에 얼른 써놔야 할 테니까. 그것보다 먼저 찰나라도, 순간이라도 조금 변했다고 확신하고 자기 내면을 직면하는 환희 속에 머무는 인간을 주변에서 훨씬 더 자주 접할 수 있을 테니까.


며칠 전. 서울에서 심야시간에 자율주행버스 운행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동량이 거의 없는 시간대에, 짧은 구간을. 나는 괜찮지만 우리는 안된다는 인간의 본능을 고려한 시도다. 짧은 기사를 접한 뒤 내내 기사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찍힌 사진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나 자신에게 자꾸 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기계한테 벌 받는 인간의 모습이 느껴져서인가. 오래전 비행기처럼 버스도 이제 자율주행을 시작하는가 보다.


그런데 자율 주행인데, 왜 운전자가 필요한 걸까. 운전대에 앉아 있는 운전자가 없어야 완전한 자율주행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너와 우리라는 정체성을 같이 꾸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은데 우리는 괜찮지 않은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밀어내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결국, 어찌어찌족은 언제나 돌발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이 돌발 상황인 것을 판단해야 하는 영역에 머무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행기보다, 버스보다 그것들을 만들어 낸 인간은 이미 벌써 스스로의 시간을 자율주행 모드에 맞춰 두고 있었던 거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정해진 수치대로, 계획된 방식대로, 기계적으로. 하드코어 자율주행모드다. 한마디로 너무나도 힘든 자율주행모드의 삶이다. 기계적(물리적) 반복을 우리 인간에게 적용하면 습관이다. 몸과 마음을 살리는 거건, 갉아먹는 것이건 모든 게 습관이다.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검증의 타이밍은 잘 잡지 못한 채. 신전의 기둥이 언제 무너질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 생각하는 기계인가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맞춰놓은 수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데 혈안이 되어 온 것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어찌어찌족에서 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주변 언저리에서 머물면서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야 조금씩 마음과 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엄격하게 기계적인 갑을관계라는 것에 직면한다. 자기 정체성 밖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관계다. 내면으로 들어와 보면 나의 몸이 내 마음에 하는 짓, 그것이 바로 근본적인 자율주행모드 버튼, 갑질이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습관적으로 몸이 마음의 자율주행 모드를 컨트롤하게 세팅해 놓은 것이다.


유년기의 집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군대에서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배운 것으로 살아냈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은 몸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자율주행 모드는 어떻게 충전되는가. 동력은 무엇인가. 내 옆에 있는 이들을 돌아보자. 나의 자율 주행 모드에 돌발 상황을 일어나는지를 두 손 벌려 지켜봐 주는 이들이 있다. 내 서재 속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익숙한 타인들이 그들이다. 아침마다 생사를 확인하는 가족들이 그들이다. 아주 오랜만에 봐도 조금 전에 헤어진 것 같은 친구들이 그들이다.


이제부터라도 서서히 나의 하드코어 자율주행 모드의 버튼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할 때다. 적어도 투 버튼으로. 그러고 나서 원래의 버튼과 새로 만든 버튼이 함께 작동해야 더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나의 자율 주행 모드 조정방법을 변경해야 한다. 자율과 타율이 아름답게 뒤섞일 수 있도록 그렇게 내가 나에게 허락해야 한다. 오락실에 널브러져 있던 기계조차도 버튼이 두 개, 세 개였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 저런 미친 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