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넘치지 않는 삶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9

by 정원에

나는 아침마다 닭알을 삶는다. 아침 식사다. 반숙을 좋아한다. 7분에서 8분 사이(나는 7분을 더 선호한다)를 삶는다. 여기에 이번 연말에 밴쿠버에 사는 식구들 캐리어 하나 가득 실어 보낸 올바른 김 팩을 하나 부셔 넣어 섞어 먹으면 오전 11시 정도까지는 진한 커피 한 잔으로도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


나에게 닭알은 여러모로 힘이 된다. 한두 알에 배가 부르게 해주는 착한 식재료다. 물 한 모금, 두유 한 모금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포만감에 기분마져 좋아진다. 게다가 항상 생생하다, 는 느낌을 매일 아침 전해주는 기분 좋은 메신저다. 가만히 쥐고만 있어도. 집에 있는 식재료 중 유통 기한을 언제나 지키지 싶어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아침에 서두르지 않아 좋다. 닭알을 내가 좋아하는 말캉거리는 상태의 반숙으로 삶는데 7분. 그 시간 동안 펄펄 끓는 냄비를 들여다보면서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왼쪽, 오른쪽 대각선으로 다리 벌리기를 한다. 인덕션 부위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한다. 스쿼트도 한다. 팔 굽혀 펴기를 서른 개에서 쉰 개는 할 수 있다. 이 다섯가지 동작을 1분씩만 해도 시간이 담는다.


나에게 닭알을 삶는다는 건 오늘도 평화롭게, 생생하게,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시그널이다. 그래서 알 하나 삶은 일이 언제나 행복하다. 닭알 몇 알 삶는 시간이 무심한 듯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침에 닭알을 깔끔하게 삶고 식탁에 앉아 먹는 15분 남짓한 시간이 매일 이어가지 못할 이유만도 살다 보면 수십가지는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보통 닭알은 냉장고(또는 겨울에는 자주 베란다)에 있다. 냉장고에 있던 알을 미리 꺼내 놓는 게 좋다. 차가운 곳에서 웅크려 뭉쳐 있던 닭알이 갑작스럽게 펄펄 끓는 냄비 속으로 느닷없이 투하될 때 금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순서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알 하나 깔끔하게 삶지 못하는 수십가지 이유 중 가장 첫 번째 이유다.


그럴 때는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꺼내자마자 펄펄 끓는 물에 넣어야 한다. 물론 집게를 이용해서 살짝 넣지만, 거의 어김없이 닭알 표면에 금이 간다. 그러면 순식간에 그 금이 간 틈으로 흰자가 스며 나온다. 물이 점점 끓는 온도가 높아지면서 오면서 미끄덩하게 허연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 냄비 속을 온통 하얀 거품으로 몽글하게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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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냄비의 테두리 제일 위쪽까지 차오른다. 얼른 끓는 온도를 낮춘다. 9에서 7, 다시 5, 4로.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냄비를 넘칠 듯 한 하얀 거품 바깥으로 막이 형성된다. 몽글해진 거품 안쪽과 냄비 바깥쪽 공기의 온도차이 때문에 생긴 막이다. 자세히 보면 안쪽 뜨거운 거품보다 훨씬 진해진 흰색이다. 눈사람 배에 묻은 흙 때 같다.


이제 반숙이 되기 전, 차가운 물에 온몸을 담그기까지 4분 남았다. 뒤꿈치를 내리면서 한번, 올리면서 한번 그 막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앉았다 일어나면서 그 막을 한번 더 쳐다본다. 신기하게도 계속 안에서 바깥으로 벌렁거리면서도 넘칠 듯 넘치지 않는다. 안쪽 뜨거운 김이 막을 마구 흔들어 되면서 금세 찢어질 듯 한데도. 까무리하게까지 보이면서 막은 뜨거운 수분이 터져 나오는 것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안아본다.


마치 내 가슴은 너무 뜨거워 찢어질 것 같은데, 두 눈 질끈 감고 양팔을 빙 둘러 차분히 냉정하게 다 안아내 주고 있는 그대 같다. 화가 나고, 힘들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나를 무심하게 감싸 안은 그 사람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다그쳤던 그때 같다. 먼 산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살며시 가라앉아 있는 듯 없는 듯 한 보조개 옆, 제철 자두 같았던 앙담은 입술로.


그 얇은 막의 힘은 무얼까 생각해 본다. 나를 찢어지지 않게, 터지지 않게, 흘러넘쳐 볼품 사나워지지 않게 막아서는 그 얇디얇은 막. 닭알 하나 깔끔하게 삶는 일을, 유한하게 반복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나는, 오늘 아침에도 어제처럼 닭알을 삶는다. 그러면서 위태로움과 평화로움 사이의 그 막의 힘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 스스로의 온도를 조절해서 나 바깥의 온도를 조금 더 비슷하게 맞춰 나가는 지혜를 가지라고 일러준다. 내 것과 네 것이 옳고 그름만으로 나뉘어 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려는 듯 것처럼. 내 눈으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들리는 듯 하다. 폭폭폭. 서로의 온도안에 각자의 향기가, 촉감이, 삶이 익어가고 있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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