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오래된 내가 만든 기준일 뿐

[다들 그렇게 살아요. 뻔한 이유로 행복하게] 18

by 정원에

['다 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당신이고 나이다.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뻔한 이유로 뭉근한 행복을 바라는 당신의 가슴이 나의 등을 밀어주고 나의 가슴이 당신 눈이 되어 주면서.]



별일 없는 데, 아무래도 별일 없는 데 힘이 빠지는 날이 있다.

재미는 고사하고 모든 것들이 의미 없어 보이고

그저 드러누워 있고만 싶어지는 그런 날.



그날이 기회다.

긍정이라는 핑계로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떠다니는 수많은 '기대'.

그것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내게 주어지겠지. 그 돈이 내게 주어지겠지.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되어주겠지. 그 사람이 내게 와주겠지. 이 정도면 저렇게 되겠지. 그래도 잘 되겠지. 노력한 만큼 되겠지. 되겠지. 될 거야. 돼야 해.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간 했던 수많은 '기대'는

먼지 가득한 마음의 창고 속 거미줄처럼

오래된 내가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힘없는 기준일 뿐이었다.



음침하게 얻어걸리기만을 바라면서도

정작 세상 속으로는 내세우지 못하는

허망하게 나약한 욕망들 말이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한 바퀴 걸으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벚나무가

한 바퀴 더 걸으면 빨간 열매로 웅크린 철쭉이 다시 한 바퀴 더 걸으면

노르스름하게 늘어진 능소화가 일러 준다.

숨겨서 기대하지 말고 드러내고 희망하라고.



희망은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나무들이 생애 내내 우주와 동고동락하는 방법이었다.

스스로의 기준에서 벗어난 순수한 응원이었다.

겨울 속에서 봄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염원이었다.



희망은

'오늘도 안녕'만 할 수는 없는 삶이기 때문에 서로 안부를 묻고,

'꽃길'만 존재할 수 없는 삶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염려를 나누고,

자신의 것을 버리고 사랑한다 표현하며 서로 어깨에 기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그 상태에서 멈추는 것.

나를 너에게 품위있게 강요하지 않는 것.

지극히 평범한 나를 달콤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 한 해가 지나 벚꽃을 다시 찍고 철쭉과 다시 어깨 동무를 하고 능소화 앞에 다시 나란히 서서 겨우내 별일 없는 날 희망하는 힘을 키웠노라고, 희망의 열매를 키웠노라고 나불거리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미소만 머금고 존재하면 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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