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사는 삶 1

[아빠의 유산] 03

by 정원에

사랑하는 비니에게


지금 이곳 일요일 새벽 4시 10분. 한 시간 여 뒤면 공항에 도착하겠구나. 네가 밤새 태평양을 날아가는 동안에도 뒤척이는 엄마를 느끼면서 보니, 헤어짐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그들처럼 우리도 서로 그저 한참을 안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두 손을 한참 맞잡고 손등을 쓸어내리면서 짐짓 익숙한 척할 뿐이지. 그래도 잘 헤어지고 잘 만나는 연습이 인생이기에 마주 앉은 어젯밤.



"스물셋이 되는 동안 진심으로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_<비니>


너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이미 표현했듯이 참 많이 기뻤단다. 몇 날 며칠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햇살이 눈부시게 넘치는 파란 가을 하늘을 만난 듯했어. 게다가 울컥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같이 눈물짓던 엄마와 동생을 보면서 더욱 말이야.


아빠는 네 말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사는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일까? 하고 자꾸 (내 안으로) 묻고 물었어.



벌써, 고독을 느끼기 시작했구나!

열여덟부터 5년간. 자퇴하고, 다시 입학하고, 처음으로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전과를 한 뒤 지금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일련의 과정에서 너의 '의식적 지분'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네 스스로만 알 수 있을 거야.


그것이 단 1%였더라도 그건 너의 선택이었던 거란다. 나아가려고, 좋아지려고, 행복하려고 여러 길(선택)을 놓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데에는 '나쁘고 가짜'인 옵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덩그러니 놓인 상황에서 가능했던 조합의 결과였을 뿐이거든.


돌아보니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고독하게 느껴져서 그렇지 싶어.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른 것이거든. 후자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전자는 '홀로 흘러넘치는' 사유와 관련이 있거든.


외로움에는 짙은 그리움이 묻어 있어. 떠나 온 사람과 집, 익숙함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고, 추억이 가득한 시공간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일 수도 있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돌이켜 보면 외로움만으로는 성장의 경험을 할 수는 없던 것 같구나.


성장-어떤 형태, 내용이건 어제의 너와 비교해 (무엇이건) 나아진 오늘의 너라면 성장한 거니까-에는 반드시 '고독'이 필요하더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수없이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고독.


'진심으로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내뱉은 너의 자문이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기 위해 내던진 질문인 것이지. 질문을 고쳐 다시 묻고, 거기에 스스로 대답을 하지. 그러다 일상에 빠져 있다가 문득 자기 답을 수정하고, 다음날 잠에서 깨어 그 대답 자체를 철회하기도 하고.



고독은 네 삶의 실시간 추적 장치란다

아빠는 지금, 네가 탄 비행기가 어디쯤을 날고 있나 왼쪽 화면에 띄어 놓고 보고 있어. 어디에서 언제 출발해서 어디를 지나는데 얼마나 걸렸고,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지가 다 보여.


순간순간 업데이트 되는 화면만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도 네가 느껴져. 그렇게 너는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아주 잘 날고 있었어. 어! 방금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면서 '곧 도착'이라고 바뀌더니, 이내 '9분 전에 착륙함. 터미널 M(으)로 택시 중'이라고 바뀌었다.


이게 외로움과는 다른 '고독'이란다. 너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자다 먹다 조금씩 움직이다 하지만 비행기 밖에서 보면 여전히 지구의 어디쯤에서 어디쯤으로 일정 기간, 일정 시간을 이동하고 있는 거지.


너의 5년도 그런 비행 중의 하나란다. 그래. '고독'은 바로 비행기 밖에서 (네가 탄) 비행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힘, 그 비행기 안에 안전하게 머물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는 힘이야.


그 상황에서 자신(의 것들)을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힘. 출발지와 경유지, 목적지를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힘. 다음 비행을 준비하는 노하우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힘. 그 힘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 그게 모두 제대로 한 '고독'의 경험에서 나오는 거란다.


그런데 중요한 건 말이지. 비행을 하는 동안에는 '네가 뭘 어쩌지 못하는 상태, 타인에게 오로지 내맡겨진 상태'가 한참 지속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단다. 이 말은 곧 비행을 하기 전과 비행이 끝난 후에 그 상태를 위한 준비와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미완성의 너를 즐겨라!

어때? 인생의 항로도 실시간 추적(확인)이 가능한 사이트를 갖고 있다면 정말 유용하겠지? 그런데 사실 이런 사이트(같은 자기만의 장치) 하나 갖는 게 그렇게 전혀 불가능하진 않아. 아마 알랭드 보통도 벌써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의 평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완성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의레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고민을 피하게 된다." _ <알랭드 보통(철학의 위안)>



내면에서 흘러넘치는 고독(이란 비행)의 과정을 메모, 일기 등으로 남겨 놓는다면 자신의 고독을 스스로 다시 확인하기에 더없이 좋아. 그래서 읽는 것만큼 쓰는 게 중요하단다. 조만간 그 즐거운 고독을 너도 흠뻑 느껴보렴.


KakaoTalk_20250105_053256930.png


네 인생 또 한번의 비행을 잘 마쳤다는 연락을 받으니 오늘은 더욱 마음 뭉클한 게 그저 그만이란다. 이제 아빠도 고독을 즐기기만 하면 될 테니까. 너도 그곳에서 마음껏 미완성의 고독을 즐기거라.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하며 세 번째 편지를 쓴다.


(2025년 1월 5일)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래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