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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우리 동네 갤러리] 09

by 정원에

연말연시의 어수선한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아 오랜만에 다같이 모인 가족들이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다가 스물, 스물셋 남매, 아내와 함께 선택한 것이 '평범한' 영화 관람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가족이 다 모여 영화관을 간 게 한 해가 넘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 중 셋이 선택한 영화는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 의사의 활동을 다룬 <하얼빈>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너무도 아픈 12월이었기에 영화를 핑계 삼아 마음껏 마음을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아늑한 어둠 속에서 시민들의 외침에 조용히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1. 누구나 '아는' 안중근 : '의사'의 시대적 역할을 위하여

사람을 '안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입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다 알지 못하는데도 그렇다고 스스로 판단한 후의 언행이 갈등을 유발하는 시발점이 되는 게 일반적인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실존하지 않는 역사적인 인물은 더욱 그렇지요. 의사 안중근은 더욱 그런 편입니다. 단지(斷指)로 상징되는 굳건한 의지와 반드시 해내고 마는 투쟁성을 강조하는 게 그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접근 방법이니까요.


평범한 나는 (절대) 못해 내지만 그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강하게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대한제국 독립군 대장' 안중근의 굳건한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우리 과연 누가 죄인인가"_영화 <영웅>에서




2. 우리가 '모르는' 안중근 : '사람'의 인간적 갈망에 대하여

영화 내내 강조되는 부분은 안중근의 '고뇌'입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둑한 안가에서 웅크리면서 절규하는 모습, 모친 조마리아가 등장하지 않는 것, 일본 법정에서 논쟁을 벌이는 (일반적인) 장면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이지 싶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를 빼앗겨 박탈된 자유를 찾아 싸워야 하지만, 힘에 부친다고 (표정으로) 외칩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싸워야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고 외치고, 또 외칩니다. 그 외침은 자신을 밀어붙이기 위한 것임을 잘 알게 됩니다. 그의 외침이 우리의 대한민국, 12월의 아픔을 관통하는 것은 우연히 아닐 겁니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_영화 <하얼빈>에서





3. 다시, 안중근 :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하여

대한민국은 지금 다시 온 나라 사람들이 자유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살뿐만 아니라 영혼을 찢어내는 두만강 살얼음 같은 불안의 어둠을 걷어 내고자 수많은 이들이 묵묵히 그 안으로 불을 밝혀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일상 구석구석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게 자유입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손을 잡고 한참 거리를 평화롭게 걷고, 잠 좀 푹 자고, 도란도란 모여 오늘을 나눌 수 있는 상태. 그 상태 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의 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점검하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언제나 가능한 실천의 가치.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_영화 <하얼빈>중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




# 미래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영화 한 편이 주는 힘은 의외로 큽니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특정한 장면 하나, 대사 한 줄이 가슴속에 박혀 영원히 떠나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린 영혼이 담긴 육체의 삶을 흔들어 버릴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꿀수는 없을지라도 '나'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다시, 새해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다짐한 '100년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힘을 다 함께 또 발휘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볼 것 못 볼 것 다 보여 준 덕분에 다음 세대들에게 이제는 무엇을 남겨줘야 할지가 더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열살이 넘는 맑은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미리 고민하는 대신 오랜만에 함께했던 한여름 가족 캠핑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추억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미소만 짓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까레 아우라'를 다시 외칠 필요가 없는 미래 시민들의 세상을 위해서 말입니다.


"큰 아빠, 법꾸라지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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