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아시죠? 한 분야에 1만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였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이론이죠. 맞아요. 삶이란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이죠.
과정이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아요. 누구 건, 어떤 일을 하건 관계없이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장소와 거주 공간을 반복적으로 이동하면서 어떤 일을 '하루'라는 규칙화된 루틴 속에서 꾸준하게 하고 또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의 총합인 것이죠.
그러는 동안 각자는 자신의 방식-의식 및 무의식적 측면에서 누적되는 생활, 행동, 생각, 업무(일처리), 관계 습관. 그리고 가치관 등-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영역-구체적인 직업 또는 관심 분야에 대한 경험 획득 및 그 시도를 위한 도전 과정의 반복 등-에 대한 경력을 쌓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학술과 기예에 통달한 사람, 널리 사물의 도리에 통한 사람, 인생을 달관한 사람. 영어권에서는 Master, Expert, Pro. 이런 표현에 어울리는 사람을 우리는 '달인'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문화권에 따라서는 '예술가', '장인', '명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요. 스물다섯 해를 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본 수많은 '고3'들도 이런 표현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봐 왔기 때문이에요.
[고3]. 100세 시대에 어리면 어리다고 볼 수 있는 나이지요. 하지만 어리기 때문에, 아직 본격적으로 삶을 시작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더욱 '달인'의 표현이 어울린다고 봐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원하지 않은 역할인데도 말입니다.
'달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들을 맛보기로 충분히 연습하는 아주 훌륭한 [고3]들의 시간들을 한번 구체적으로 들여다볼까요? 자기 분야의 '달인'이 될 출발점에 서는 이들은 어떤 능력을 이미 갖추기 시작했을까요?
반복의 달인으로 살기로 한 겁니다.
어제는 종업식이었습니다. 종업식은 (일정 기간의) 학업을 (잠시) 마친 것을 기념하는 학교의 중요한 행사입니다. 행정적으로도 종업식이 진행되어야 다음 학년이 시작될 수 있잖아요.
고3은 그런 의미를 가진 종업식을 무려 11년간 반복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으로 일을 하면서 살다 보면 그렇게 심플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어요. '사는 거 별거 없네.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라고 느껴질 때 말이에요.
어른으로 살아보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는 게 결코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직 어른도 아닌 고3은 그 시간들을 아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체화-몸과 마음이 기억하도록-하려는 시도를 온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이죠.
11년 동안 한 직장에 다닌다는 게 쉽지 만은 않은 겁니다.
인과의 달인으로 살기로 한 겁니다.
꽃이 폈다, 바람이 분다, 몸이 건강해졌다는 것은 다 결과입니다. 흔히 이런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그 원인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집니다.
고3은 이런 면에서는 더 어른입니다. 아주 순수하게 인과 관계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공부는 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명제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과에 대해 아쉬워 하지만 결코 부정하지는 않거든요.
그 속에는 제대로 준비된 원인을 만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기 신뢰가 바탕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아주 건강하고, 건전한 자기 긍정이죠. 적절하게 좋은 스트레스를 스스로 가지는 연습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알게 되죠. 공부, 성적만 인과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11년 동안 인과 관계의 연습을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닙니다.
자기 돌봄의 달인으로 살기로 한 겁니다.
대학 입학시험이라는 상징적인 활동이 마무리된 이후 고3이 하고 싶어 하는 것들 중 단연 하나는 운전 면허증에 도전하는 겁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다 보면 고3은 운전 실력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운전을 법적으로 허가받은 면허증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안전 운전, 방어 운전의 실력이 쌓이는 건 아니죠? 운전의 목적에 맞게 안전하게, 꾸준하게 실제 도로 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만 쌓일 수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예요. 11년 동안 자신이 일정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자동차가 그렇듯 정기 검사도 받고, 필요한 소모품들도 제때에 교환해 주고, 영양도 챙기면서 말이죠.
11년 동안 자신을 고장 나지 않게 관리하면서 다닌다는 게 쉽지 만은 않은 겁니다.
눈치의 달인으로 살기로 한 겁니다.
사람은 보통 태어나고 고작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몇 명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연습을 시작해죠. 고3은 그런 관계 맺는 생활의 정점에 있는 겁니다.
스무 살이 되기 전. 관계 맺는 방식에서 얻게 되는 다양한 시행착오는 어른다운 어른스로 성장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고3이 되었다는 것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 '눈치'를 키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눈치'는 상황 파악 능력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감각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 의도, 분위기 등을 빠르게 이해하고 이에 적절히 반응하는-대화나 행동에서 예의와 분위기를 잘 맞추는-능력이죠. 성공하려면, 좀 더 편하려면 눈치를 잘 봐야 하는 것이랍니다.
11년 동안 자기 생각과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허들링의 달인으로 살기로 한 겁니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일정 기간 안에 가시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생산성.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충분한 경험을 통해 의식적으로 잘 알고 있어도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자주 내려놓고 싶어 질 때가 종종, 아니 꽤나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하물며 고3은 이런 것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해내어야 하는 상황에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요. 졸업식날 친구들과 학사모를 하늘로 마음껏 날리면서 세상 아름다운 표정들을 보다 보면 알게 돼요.
살다 보면 멈추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크고 작은 상황들은 언제나 '오늘'안에서 다 일어납니다. 하루하루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수많은 '하루'들은 또 수많은 허들에 해당했을 겁니다. 달리기 싫고, 넘기 싫고, 밟고 넘고 싶고, 돌아가고 싶었던.
하지만 결국은 넘었죠. 흡족하지 못할지라도 허들링Huddling-자신 스스로 또는 타인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을 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어디에 묶어 두어야 하는지도 조금씩 깨달아 온 것입니다.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고,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했을 뿐이었던 겁니다.
11년간 부족한데도 끊임없이 허들링을 한다는 것은 분명 기적 중의 하나입니다.
#시작
유형무형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시작'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일 수 있고, 상황일 수 있고, 특정한 장소나 사건일 수도 있죠. 하지만 무엇이 되었건 '시작'이라는 건 언제나 낯설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들로 자기 삶의 장면들이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 또한 없죠. 결국 이 말은 낯설고 어색하지만, 우리 삶에서 '시작'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삶이란 '시작'의 연속입니다. 어떤 시작이 되었건 '1일'인 그 시작. 흔한 말로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겠죠.
그런 삶을 원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자기 삶 속에는 수많은 '1일'들이 존재하는 겁니다. 마치 한 칸, 한 칸 끊어 쓰다 보면 언젠가는 사라지는 화장실 벽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안 쓸 수 없지만, 아껴 써야 하는 소중한 우리 매일의 '1일' 말입니다.
[고3]을 잘 맞친다는 것은 어쩌면 대학 수학 능력이 (월등히) 향상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더 커다란 능력, 바로 새로운 '시작'을, 소중한 '1일'을 주저하지 않는'인생 수업'을 잘 받을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 겁니다.
오늘도 잘 살기가 삶의 전부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랍니다!
[한 줄 실천]
12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다면 이미 달인의 자격을 갖춘 겁니다. 잘 살기로 한 이상, 오늘 할 리스트를 적어 보세요. 더 잘 살고 싶어질겁니다.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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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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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