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2013, 민음사) ◔
에스트라공_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_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_ 그리고 또 모레도.
블라디미르_ 그래야겠지.
에스트라공_ 그 뒤에도 죽.
블라디미르_ 결국……………….
에스트라공_ 그자가 올 때까지.
#1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매일 같이 고도를 기다린다. 어차피 침묵은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며 서로 끊임없이 지껄여댄다. 무의미한 행동들 사이로 대화는 단절되고 반복된다. 그러면서도 사람이면 기다리는 게 맞다며 희망을 갖지만, 절망감에 스며든다.
베케트는 세상의 질문에 자신도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작품에 썼을 거라고 답한다. 고도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선언이다. 그게 누구고 무엇이건 우리는 또 기다릴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대상이 각자마다 , 인생 구간마다 다를 뿐이다.
출생을, 입학을, 졸업을, 합격을, 취업을, 결혼을, 승진을, 은퇴를, 재취업을, 만남을, 헤어짐을, 사랑을, 행복을 그리고 고도를! 하지만 되돌아보면 고도가 기다렸던 고도인지도 모호해지고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고도를 만들어 낸다.
재미를 찾고 의미를 더하면서.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자주 잊는다. 재미만 좇으면 의미 없는 시간이 늘어나고, 의미만 추구하면 그 시간 내내 재미없게 살게 된다는 사실을. 그러면서 되내인다. 고도보다는 기다림 자체를 음미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2
인생은 짧다. 그러나 기다리는 상황에 놓인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그 긴 시간 동안 온갖 짓거리를 다 해야 시간을 메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기다림은 그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내 안의 기다림과 내 밖의 기다림이 불일치한다. 나의 기다림과 세상의 기다림이 어긋난다. 부조리함에 고독하고 불확실성에 불안하다. 무의미함의 풍랑에 수시로 휩쓸린다. 내가 탄 배의 항로가 확실하지 않다.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한 가지는 나 일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불행도, 행복도, 희망도, 절망도 영원하지 않다도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것을 나의 기다림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확신할 수 없는 삶이기에 기다리는 가운데 매번 결론을 내려야 한다. 멀리만 내다볼 것인가, 지금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3
연속된 기다림이 즐겁지만 지친다. 기대되지만 바쁘다. 설레지만 애매하다. 기다림조차 비교한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은 고사하고 엊그제 점심때 무슨 일로 울고, 웃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의 기다림을 왜 포기했었는지는 이미 망각했다.
어느 날 럭키처럼 벙어리가 되고, 포조와 같이 장님으로 한참을 살아 내는 나를 발견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른 기다림에 희망을 건다. 다시 세운 희망 속에서도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과거에게 지금의 거실을 다 내어주고 작은 쪽방에 웅크리기 일쑤다.
나의 유한성이 모든 한계의 출발점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더욱 기다림의 유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기다림 자체를 음미하면서 지금에 집중할 내 것이 필요하다고 흐느낀다. 온갖 짓거리 속에서 연속되는 기다림이 모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외친다!
베케트는 고도를 통해 나에게 묻고 또 묻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당신의 고도를
'어떻게' 잘 기다리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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